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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의 건축술

구름의 건축술

[ 양장 ] 황금알 시인선-291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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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6월 27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136쪽 | 128*188*20mm
ISBN13 9791168150805
ISBN10 116815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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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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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사랑해’라고 말하는 혀보다 낮다

당신의 오른손은 지팡이를 잡고 있다

북한산 둘레길을 끼고 있는 공원 길을 걷는다

당신에게 왼손을 잡아 달라고 한다

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하라고 손을 잡아 주지 않는다

어쩌면 나는 변명을 하려고 혀를 준비하는 중인지 모른다

의자는 혀가 없어, 다행이다
--- 「1부 다행이다, 의자」중에서

명찰을 달고 들어와야 하는 방입니다
색깔과 모양은 하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강사의 혀끝에서 방을 허물거나 색을 입혀서
먼저 존재하던 방의 공기는
새로운 공기로 갈아입었습니다
혀끝에서 녹아내리는
말의 부표를 떠돌던 희끄무레한 몽돌에
바다의 아가미를 꿰기 위한
엄지와 검지의 손놀림은
갯지렁이처럼 미끄럽거나
생각의 마디로 선명합니다
마디 사이로 보이는 날것이 꿈틀거립니다
셜록 홈스도 눈치채지 못한 절벽에서
파도가 철썩 일 때마다
붉은 마디가 떨리고 물컹거립니다
혀는 습기를 다 뱉어내고 허물만 남는 뱀처럼
문장을 삼키거나 문장을 뱉어냅니다
그때마다 눈금을 키워가는 슬픔
맹그로브 나무처럼 또 다른 항해에 나섭니다
--- 「1부 맹그로브 숲」중에서

말은 우리 밖에 있을 때 살아있다.
말 우리에 있을 때 말은 자유롭지가 않다.

TV에서는 “LTV, DTI 규제 완화” 추진 이야기를 한다.
말에 붙들린 집에 관한 이해를 말하고 있다.

집 속에 들어있는 것은 말뿐이 아니다.
상자 속의 귤, 흙으로 만든 토끼, 비속의 우산도 틀을 벗어나지 않은 것이다.

끈으로 묶여 있는 상자를 깨울 때 오렌지는 잠에서 풀려난다.
토기장이가 빚고 있는 토끼의 입이 열 개의 손가락에서 분리되어 나올 때,
비 오는 거리에서 젖은 우산이 어깨를 접고
잠시 뼈대에서 빠져나와 스타벅스의 새가 되어 커피를 함께 마실 때
그것들은 비한정적이다.

저녁 무렵
왜가리는 날갯죽지를 이동하는 것이다.
해가 있는 방향에서 해가 지는 방향으로

흰 이빨만을 반짝이며
말라리아를 앓고 있는 아프리카 아이는
그늘의 말 우리에 살고 있다.

거친 숨소리, 기타처럼 뼈를 들어내고
호수에 빠진 말은
지금, 말 밖으로 나와야 한다.

말은 생물이니까
--- 「1부 말을 생각하는 방식」중에서

혀가 사라졌어요
밤이면 혀를 찾기 위해 사막을 걷고 또 걸어요
때로는 주문을 외우기도 해요

어디서부터 주문을 외워야 하는지
당신은 거울을 보고 연습을 해요
입을 크게 벌리고 갈급한 심정으로 애원하고 말해요
혀를 돌려 달라고

거울은 가시로 변해요
가시가 말하기 시작해요
주문을 더 외우라고, 아직도 멀었다고
가시 돋친 잎으로 말해요

당신은
천둥 번개 치는 밤에도 주문을 외워요,
이불을 뒤집어쓰고 주문을 온몸으로 말해요
마술을 풀어 달라고,

백조 한 마리 꽃 한 송이 입에 물고 와
당신에게 건네주지요,

거울아 이 세상에서 네가 제일 예뻐,
백조는 재빠르게 말하면서, 붉은 꽃잎
한 장 가슴 한편에 놓고 가요

당신이 서서히 말을 하기 시작하네요

당신은 생각과 마음의 이야기를 하게 되었어요
눈물도 얼굴 위로 또르르 흘러내렸고요
초록색 이파리도 더욱 잘 자라게 되었고요

* 마밀라리아: 멕시코 원산지 선인장
--- 「1부 마밀라리아*」중에서

1
유리병 속에 a가 들어있다 자신의 몸을 조금씩 버린다 a는 엄지손가락을 병에 대었을 때 차갑고 매끄럽게 흘려 내린다

그의 몸에 빨대를 꽂아서 먹었을 때 막히지 않아서 빨대 속으로 녹아 있는 액체가 거부하지 않고 잘 올라온다 막히지 않은 사이에서는 스스로 경계가 없기 때문이다

유리병 속에는 a는 또 다른 a와 바로 옆에 닿아 경계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조금 더 자신을 버린 a와 아직은 조금 내려놓은 a와 많은 생각의 차이가 있고 마음의 거리가 있다

또 어떤 a는 흔적도 없이 변해서 고체가 액체가 되어 버려진 것처럼 원래의 속성에서 조금씩 멀어진다 속성은 속성끼리 어울려야 하는데 딴은 속성에서 멀어져야 존재의 의미를 더 연장할 수 있다

2
얼음이 녹지 않고 병 속에 그대로 있다면 빨대로 빤 아이스아메리카노는 시원하지도 않고 커피는 쓰고 모리의 탁상에서는 얼음 깨는 소리로 시끄러운 하모니를 이룰 것이다

얼음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더 이상 녹지 않는다면 얼음 속에 얼굴을 파묻힌 나뭇잎이 마른 줄 모르고 촉촉한 잎이기를 당신은 갈망할지도 모른다

고양이의 발톱이 부드러워서 비 젖은 마음을 깨워 자음과 모음으로 랩을 비처럼 쏟아낼 것이다 또 고양이가 막고 있는 빛이 두려워 길을 구불구불하게 구부려 나뭇잎이 계곡 선화를 꿈꾸는 것이다

3
a가 꿈꾸는 것은 이외의 것과 같이 쉬고 생각하고 느껴서 한 무리가 되는 종족을 꿈꾸는 또 다른 a의 그림자인 것이다

이것과 저것의 구별이 안 될 때 나뭇잎과 나무, 닿아 있지만 또 구분되지 않는 것, 얼음과 컵처럼 방바닥에 놓여서 돌아가는 선풍기의 날개와 방바닥은 거실이라는 경계에 속하고

밤하늘의 상현달은 밤이라는 것과 달이 가는 경계에 놓여있다

5
유리병 속 얼음을 꺼내 상현달을 만드는 당신의 혀에 매달린 손가락이 연어가 되돌아온 강물을 흘러간다
--- 「1부 사이, 흐르다」중에서

젖은 잎들 찢어지고 갈라져, 비늘처럼 붙어있다

금방 물방울을 그린 위에 푸른빛을 버린 것들을 그려 놓았다

그림 위를 오가는 사람들의 신발 밑창에 달라붙기도 하고,

때로는 젖은 몸으로

이미 빛깔을 버린 상태로 시간 속으로 걸어왔어도,

시절이 그리 멀리 왔나,

젖은 입으로 새를 불러도 소리 나지 않는

당신, 한쪽 귀퉁이만 남아

바람이 구멍 난 귀를 건드릴 때마다

가지 끝에 매달린 고요를 운행한다
--- 「1부 목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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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듯이, 노자은의 시편들은 탄탄하고 야물면서, 공간적인 상상력으로 시를 구축하는 힘이 독특한 강점이다. 특히, 흩어진 헛것들과 불규칙하게 직조한 대상들은 동일시화를 이루며, 서로가 회통하면서 잘 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면모는 오랫동안 시를 제련한 장인의 여정을 엿볼 만큼, 감동의 상처를 남긴다.
- 김영탁 (시인,『문학청춘』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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