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깨어있는 행동의 세 가지 방식
깨어있는 행동의 세 가지 방식은 받아들임, 즐거움, 열정이다. 이들은 인간의 깨어있는 의식의 특정한 진동주파수를 대표하는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가장 단순한 일에서부터 매우 복잡한 일에 이르기까지 어떤 행동을 할 때마다 그 셋 중 하나가 작동하도록 특별히 깨어 있어야 한다.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깨어있기 상태’가 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는 상태일까! 에크하르트 톨레(Eckhart Tolle 2005)는 이에 대하여 아래에 언급될 세 가지 길을 제시하였다. 여기서 깨어있다는 의미는 우리의 삶을 우주의 창조적 힘과 연결시키는 삶이다. 쉽게 말하면, 일상에서 우리가 하는 다양한 상황과 일들이 있는데, 이것들이 순조롭게 잘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주변의 ‘좋은’ 에너지가 함께 협조를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런 에너지를 ‘우주의 힘’, ‘창조의 힘’이라고 생각하면 좋다. 우주의 에너지가 흘러들어오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의식적으로 깨어있는 ‘질 좋은 주파수’가 되어야 한다. 기기(器機)의 주파수가 맞지 앉으면 이 세상에 널려있는 좋은 음악이나 프로그램을 감상할 수 없듯이, 주파수가 정확하게 맞아야 모든 일들이 협조적으로 순조롭게 풀려나간다는 뜻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깨어있는 행동이 필요하고, 그를 위한 구체적인 방식이 요구된다.
여기서 제시하는 세 가지 방식 중 어느 하나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기능장애’라고 톨레는 표현하였다. 물론 이 세 방식은 그때그때마다 변할 수 있고,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는 셋 중 한 가지가 더 중요할 수 있으며, 한두 가지로 집중되는 상태일 수도 있다. 깨어있는 행동의 세 가지 방식은 받아들임, 즐거움, 열정이다. 이들은 인간의 깨어있는 의식의 특정한 진동주파수를 대표하는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가장 단순한 일에서부터 매우 복잡한 일에 이르기까지 어떤 행동을 할 때마다 그 셋 중 하나가 작동하도록 특별히 의식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이 세 가지 즉 받아들임, 즐거움, 열정의 어느 상태에도 있지 않다면, 우리는 스스로와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첫째, 받아들임이다. 받아들임이란 지금 이 상황, 이 순간의 현실이 나에게 그 일을 하라고 요구하므로 기꺼이 그것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익이 되거나 즐거워서 당연히 받아들이는 것도 있겠지만, 별로 이익이 되거나 즐겁지도 않은데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을 받아들이는 것도 포함된다. 예컨대, 늘 해야 할 것이 많은 잡다한 집안 살림을 어느 누구의 도움 없이 하루도 빠짐없이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즐겁게 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 일을 받아들일 수는 있다. 받아들임의 상태에서 집안일을 해 보라! 놀랍게도 그 일을 하는 동안 평화로운 마음으로 할 수 있다. 그 평화로움은 미묘한 에너지 파동으로 우리가 하는 일 속으로 흘러든다. 걱정과 불안이 많은 사람은 얼른 이렇게 질문한다. “세상에 좋은 것도 많은데, 왜 하기 싫은 일까지 받아들여서 해야 하나요?”, “그건 적극적으로 사는 것이 아니잖아요.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은 수동적인 삶이잖아요!”라고 말이다. 부정적인 관점으로 받아들임을 해석하는 순간이다.
겉으로 볼 때, 받아들임은 매우 수동적인 상태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적극적이고 창조적이다.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 아니라, 그냥 해야 할 일을 마땅히 하는 적극적인 자세이다. 받아들이고 난 뒤 오는 평화, 그 미묘한 에너지는 살아 숨쉬는 ‘그냥 하는 것, 그냥 있는 것’, ‘저항하지 않고 현실을 수용하는 것’이 되어, 처음에는 싫은 것처럼 느껴졌으나 왠지 모를 뿌듯함이 다가온다. 하기 싫었으나 해야 할 일을 책임 있게 하고 난 뒤의 안정감과 성취감을 한번 느껴보라! 이렇게 수용은 받아들임의 한 측면이다. 만약 우리가 하는 일을 즐길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다면 중단하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정말로 책임져야 할 유일한 것, 또한 진정으로 중요한 유일한 것에 책임을 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나에게 닥친 현실의 상태, 우리의 의식 상태에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은 삶에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다. 자신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나는 나에게 닥친 현실을 받아들이고 살고 있는가!’라고.
둘째, 즐거움이다. 우리가 하는 일을 실제로 즐겁게 할 때, 저항하지 않고 수용함으로써 오는 평화는 ‘살아있음’의 느낌으로 바뀐다. 즐거움은, 우리 내면의 결핍감을 채워나가는 소중한 과정이다. 결핍감은, 자신의 존재가 전체적인 우주의 힘으로부터 단절되고 분리된 조각이라는 에고의 망상으로부터 일어난다. 즐거움을 통해 우리는 우주의 창조적인 힘과 연결되므로 즐거움과 흐뭇함, 만족감은 결핍감을 극복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과거나 미래 대신 현재의 순간을 삶의 중심점으로 삼을 때, 자신의 하는 일을 즐겁게 하는 능력은 극대화된다. 삶의 질도 높아진다. 즐거움은 ‘순수한 있음’의 역동적인 측면이다.
스스로가 우주의 한 축으로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의식할 때, 그것은 완전한 기쁨이요 즐거움이 된다. 많은 사람들은 ‘의미 있는 일’이 스스로에게 다가오기를 기다린다. 기다린다! 늘 기다린다! 더 나은 삶을 위하여 ‘기다리는’ 것은, 보통 사람들의 가장 공통된 망상 중의 하나이다. ‘기다리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을 즐겁게 하는 것이 우리 삶 속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훨씬 많다. ‘앞으로 즐거워야 할 텐데, 앞으로 잘 살아야 할 텐데’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지금 즐기면 안 되는 이유를 산더미처럼 얻게 될 것이다. ‘지금은 안 돼. 할 일이 많아서...’, ‘지금은 바빠서요. 다음에 할게요.’라고 하면, 결코 그 내일은 오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즐거움은 바로 이 순간을 사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을 살펴보자. “무엇 때문에 내가 즐겁지?”라고 자문해 보라.
누군가가 “나는 이것 또는 저것을 하기 때문에 사는 것이 즐겁다.”라고 말한다고 하자. 이 말 자체는 잘못된 것이다. 사실 그렇지 않다. 기쁨은 우리가 하는 일로부터 오지 않는다. 기쁨은 우리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우리가 하는 일 속으로 흘러 들어간다.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기쁨은 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내면이 기쁘기 때문에 하는 일이 기쁜 것이다. 기쁨이 자신이 하는 일로부터 온다는 생각은 정상적인 것 같지만 오해이다. 그 이유는 기쁨이 어떤 행위나 사물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믿음은, 결국 이 세상이 우리에게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주기를 기대한다는 뜻이다. 결코 세상이 그렇게 해 줄 수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끝없는 좌절 속에서 살아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 우리 내면이 기뻐야 한다. 즐거워야 한다. 세상이 나를 채워주어서 기쁘고 즐거우면, 우리 자신은 결국 세상의 눈치를 보고 세상살이 자체가 우리의 행불행(幸不幸)을 가져다주게 되므로 늘 노심초사하고 불안하며 두렵다.
결국, 우리는 현재의 순간에 온전히 존재하면서 그 행위를 할 때, 그리고 그 행위가 단지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닐 때, 그것이 어떤 일이든 즐거울 것이다. 그냥 이 순간 살아있음의 느낌이면 충분하다. 그냥 그 순간의 일이 내 자신이고, 그냥 내 삶이 그 일인 것이다. ‘순수한 있음’ 자체가 바로 삶이다. 우리의 하루 일과를 하나하나 체크해 보라. 좋은 일이건 싫은 일이건 모든 일들을 할 때마다, 그 모든 것을 ‘깨어있음’의 도구로 삼아보라. 온전히 ‘지금 이 순간 살아있음’이라는 자각으로 일을 하고 있는지를 느껴보라. 순수한 ‘있음’을 어떤 이는 ‘하느님’이라고 부르고, ‘신’이라고 부르고, ‘무(無)’라고 부르기도 하고, ‘우주’라고 부르기도 하고, ‘해탈한 부처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금 이 순간 살아있음’으로 살고 있다면, 지루하지도 짜증스럽지도 않으며, 실제로 모든 것들이 즐거워할 만한 일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즐거워하고 있는 것은 실제로 외부적인 행위가 아니라, 그 행위 속으로 흘러들어 오는 내면의 의식 차원이다. 이것은 우리가 행하고 있는 일 속에서 순수한 ‘있음’의 기쁨을 발견하는 일이다. 순수한 있음의 기쁨은 의식이 깨어있는 기쁨이다. 이 의식은 에고로부터 움직이는 복잡한 것들을 통제하는, 우리의 삶을 운영하는 좋은 도구가 되어, 전 인생을 확장시키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이런 행위를 통해 많은 이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사람들은 그 행위를 통해 무엇인가를 달성하거나 무엇인가 되려는 바람 없이 단순히 자신들이 가장 즐겁게 하는 일을 할 뿐이다. 이들이 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은, 언뜻 보아서는 미미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서서히 혹은 갑자기 강력한 창조적인 힘의 물결이 그들이 하는 일 속으로 흘러들어 마침내는 그들이 상상할 수 있었던 것 이상으로 넓어지고, 무수히 많은 사람들에게 가 닿을 것이다. 그때 그들이 하는 일에는 즐거움에 강렬함이 더해져서 일반 사람들이 성취할 수 있는 것을 훨씬 뛰어넘는 창조성이 따라온다. 자만하지 않고, 어딘가에 숨어있는 에고의 잔재를 의식하려는 겸손함을 가지기만 한다면, 우리 모두는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