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저에게 교육과정 중에서 딱 하나만 가르치라고 한다면, 바로 타일러의 합리적 모형입니다. 왜냐하면, 현대 교육과정은 타일러의 모형에서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 개만 더 가르치라고 한다면, 두 번째는 바로 잠재적 교육과정입니다. 잠재적 교육과정은 정말 중요합니다. 교육과정의 패러다임을 바꾼 개념이며, 교육과정 재개념주의의 근저이기 때문입니다.
--- p.10
조선 시대 어느 한 마을에 호랑이가 출몰해서 피해가 컸습니다. 그런데 호랑이는 불을 무서워합니다. 그래서 조정에서 ‘불로 호랑이 대처법’을 만들어서 서당에서 대대적으로 교육하였습니다. 그러다가, 호랑이가 멸종되고 이번에는 곰이 출몰했습니다. 근데 곰은 불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서당에서는 여전히 ‘불로 호랑이 대처법’만 가르칩니다. 참다못해 젊은 훈장 한 사람이 조정에다 호소합니다. “호랑이는 이제 없는데, 왜 호랑이 대처법만 가르칩니까?” “자네가 뭘 모르는군. 호랑이 대처법을 배우면 고상한 용기가 생겨서 곰을 상대할 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말이야.”
--- p.36~37
아프리카의 오지 마을에 어떤 교사가 부임했는데 그 학교에는 10살 전후의 어린이가 스무 명 정도 있습니다. 교사는 자기밖에 없는데, 교장은 교사에게 알아서 3년간 뭐든지 가르치라고 한다면 과연 이 교사는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요?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결정하기 이전에 먼저 결정해야 하는 게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학생들을 어떤 학생으로 만들지를 먼저 결정해야 합니다. 수렵 채집인으로 자연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칠지, 문명인으로 만들 건지, 그 지역이 전쟁지역이면 군인으로 만들건 지 이런 목표를 먼저 정해야 합니다.
--- p.123
의사 결정을 위한 어떤 회의에 참여한다고 가정해보십시오. 자리에 앉자마자 바로 본론을 꺼내어 찬반 토론하는 게 아닙니다. 옆 사람과 인사도 하고 커피도 한잔 마시고, 사회자는 회의 취지와 회의 진행 방향을 이야기합니다. 회의가 길어질 것 같으면 저녁 식사 장소도 미리 공지합니다. 그런 다음에 본론에 들어가겠죠? 그리고 어느 정도 회의가 마무리되어도 바로 해산하고 자리에서 뜨는 게 아닙니다. 회의에서 나온 내용을 향후 어떻게 할 건지 이야기하면서 다음 일정을 논의합니다. 수고했다고 인사도 하겠죠. 이런 일반적인 회의 절차를 워커는 강령, 숙의, 설계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 p.145
학생들이 모차르트 음악을 잘 이해했는지 어떻게 평가하면 될까요? ‘모차르트 음악의 특징을 기술하시오’라고 주관식 문제를 내면 될까요? 주관식 문제를 잘 쓴 학생이라면 모차르트 음악을 잘 이해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베토벤이나 슈베르트 음악을 같이 들려주고 모차르트 음악을 고르게 하면 될까요? 베토벤이나 슈베르트 음악과 잘 구분한다고 해서 모차르트 음악을 잘 이해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모차르트 음악을 잘 이해했는지 확인할 수 있을까요?
--- p.154
팔사오를 먼저 알아두면 좋습니다. 팔사오란 ‘80년대에는 4차와 5차가 있었다’라는 뜻입니다. 그 외의 시기는 교육과정이 10년에 한 번 바뀌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산수 문제가 됩니다. 80년대 4차와 5차가 있었으면 70년대는 몇 차일까요? 3차입니다. 60년대는요? 2차입니다. 50년대는 당연히 1차입니다. 이번에는 90년대로 가보겠습니다. 90년대는 몇 차일까요? 네, 6차입니다. 2000년대는 7차가 됩니다. 물론 교육과정의 각 시작년도는 조금씩 다릅니다. 그래도 일단 이렇게 큰 틀에서 교육과정의 시기를 알아두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교육과정 변천사의 전체 윤곽을 알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팔사오’를 ‘저팔계와 사오정’으로 외웠습니다.
--- p.314
성취기준이 달성되면 핵심역량이 성취된 것으로 봅니다. 핵심역량이 성취되면 추구하는 인간상에 도달된 것으로 봅니다. 추구하는 인간상에 도달되면 교육의 목표가 달성된 것으로 봅니다. 결국, 성취기준이 달성되면 교육의 목표가 달성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취기준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같이 성취기준 중심으로 교육과정, 수업, 평가, 기록이 돌아가며, 성취기준이 달성되면 교육목표가 달성된 것으로 보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것이 바로 역량 중심 교육과정 모형의 구조이며, 한마디로 압축하면 ‘성취기준을 중심으로 핵심역량을 성취하여 교육의 목표에 도달하려는 교육과정’입니다.
--- p.344
교육과정 총론을 보면 ‘좋은 말 대잔치’와 같은 느낌이 들어서 혼란스러울 수가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좋은 단어를 나열한 느낌입니다. 모두 다 외우자니 끝이 없는 것 같고, 그게 그것 같아서 혼란스럽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줄거리를 파악해야 하고, 그중에서 특히 강조하는 것을 찾아서 연결해 두어야 합니다.
--- p.348
영어에 cascading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폭포에서 물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모습을 말합니다. 기업에서는 최고 경영자의 이념이나 경영 철학이 갓 들어온 신입직원까지 차례대로 내려오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경영계획을 수립할 때 비전, 목표, 전략, 세부 계획 등과 같이 추상적인 큰 개념에서 실천 가능한 세부 계획으로 내려오는 것을 말합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교육과정 총론 또한 이런 식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왜’에서 시작해서 ‘무엇’을 ‘어떻게’ 할지, 마치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서사적 관점에서 교육과정을 이해해야 ‘좋은 말 대잔치’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교육과정이 한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 p.348
이러한 인공지능의 발달이 의미하는 것은 바로 미래의 불확실성입니다. 앞으로 많은 직업이 사라질 수 있다고 전망합니다. 지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열심히 배운 지식이 5년 후에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10년 후에는 우리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지식을 배워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요? 교육부가 제시한 그 해답은 바로 학생이 스스로 공부할 수 있도록 자기 주도성을 키우도록 하는 것입니다.
--- p.353~354
코로나를 겪으면서 사람들은 한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이런 일이 생기면 이건 한 사람의 힘이나 한 국가가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서로 협력하여 돕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지구온난화나 환경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두 나라가 나서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미래는 더 협력적 소통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 p.3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