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 나이로 아홉 살 때부터 수업을 들었다. 자연을 누비며 한참을 뛰놀고 게임보이를 하며 포켓몬을 잡으러 다녔지만, 놀다 보니 새로운 것이 배우고 싶어졌다. 나는 몇몇 수업에 마음 내킬 때마다 한 번씩 들어가기 시작했고, 하다 보니 재미있어서 계속 수업을 들었다.
물론 모두가 나처럼 아홉 살에 수업을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 훨씬 일찍 혹은 늦게 시작하는 이들도 많고, 다들 듣는 과목과 양이 다르다. 무엇보다 누구도 수업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렇게 내버려두면 대개의 아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스스로 배우려고 노력한다. 각자 자기 시기가 있고, 그 시기가 되면 알아서 열심히 하기 때문에 오히려 억지로 일찍 시작한 경우보다 더 공부를 잘할 때가 많다.
서머힐에서는 학생 수가 적어 반이 크지 않기 때문에 선생님들이 개개인에 맞춰줄 수 있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밀접한 거리에서 보기 때문에 맞춤형 교육이 가능하고, 따라서 늦게 배우기 시작하더라도 진도가 빨리 진행되곤 한다. 늦은 것이 결코 늦은 것이 아니다.
- [1장: 아이들은 노는 것만큼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 중에서
서머힐은 노는 걸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파티도 많다. 서머힐은 3학기제로, 봄 학기(1월 초~3월 말)·여름 학기(4월 말~7월 말)·가을 학기(9월 중순~12월 초)로 나뉘는데 매 학기 중간과 마지막 날에는 어김없이 파티가 열린다. 특히 나는 학기가 끝나 전교생이 집으로 떠나기 전날 밤새도록 열리는 EOT(End of Term) 파티를 좋아했다.
일주일 동안 라운지에 콕 박혀 있으면서 그림만 그리며 생활하는 게 행복했다. 폐쇄한 라운지는 우리만의 공간이었다. 우리 일곱 명은 상상력이 닿는 대로, 우리가 원하는 대로 마음껏 공간을 꾸밀 수 있었다.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밤늦도록 음악을 틀어놓고 넓은 벽을 종이로 도배하며 수다를 떨고 장난을 쳤다. 마감 날짜를 지켜야 한다는 명분으로 잠도 안 자고 그림을 그리고 상자를 자르고 붙이고 매달면서 즐거워했다. 신문지, 상자, 붓, 페인트 등이 널려 있는 난장판 속에서 벽을 뒤덮은 흰 종이 위로 팔을 휘두르며 선을 긋고 색을 칠하는 쾌감은 무엇과도 비교가 안 됐다. - [1장: 파티, 교실 밖 또 하나의 세상] 중에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라는 말은 성장하는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나이는 개개인이 성장해야 하는 속도를 예상하는 데 도움은 주지만 모두 그 숫자에 맞춰 성장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이는 같아도 사람마다 성숙하는 시간이 다르다. 김치도 총각김치냐 배추김치냐 물김치냐에 따라 같은 날 담가도 숙성 기간이 다르고 익고 나면 맛도 다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남들의 속도가 아니라 자기 속도로 성장하는 것이 가능한 곳, 서머힐은 그런 곳이라고 생각한다. - [1장: 나이? 무슨 상관!] 중에서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온 후 패션에 처음 관심이 생겼을 때 역시 나는 레너드에게 달려갔다. 레너드는 나만을 위해 수업시간을 정하고 내게 패션 디자인을 가르쳤다. 패션 디자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패션과는 제일 거리를 두고 사는 레너드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할지 몰라 하는 나를 위해 다양한 서적들을 구입했다. 우리는 책에 나온 대로 과제를 하며 패션 수업을 진행했다.
그러던 어느 날 레너드가 아나와 나를 런던에 있는 빅토리아 앨버트 뮤지엄의 한 전시에 데려갔다. “아주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의 전시야.” 런던으로 향하며 레너드가 말할 때까지도 나는 그 전시가 내 생애 가장 인상적인 전시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 전시 이후 나는 패션 디자인에 심취해 더 이상 레너드에게 의지하지 않고 개인 프로젝트들을 실행했다. 패션 잡지를 구독하고, 인터넷으로 정보를 검색하고, 레너드가 구입해 놓은 서적들을 탐독했다. 이런 식으로, 관심사가 생기면 레너드의 도움으로 시작했다가 조금씩 혼자 주도적으로 해나갔다. - [2장: 패션을 모르는 선생님에게 패션을 배우다] 중에서
파리의 아파트에서 페이스북을 하고 있는데, 제이슨이 채팅으로 말을 걸어왔다. 패션 디자인을 접었다는 페이스북 글을 본 모양이었다.
“이다음엔 뭘 할거야?”
“몰라.”
“난 네가 네 길을 찾아갈 거라고 확신해. 넌 특별한 능력을 가진 특별한 사람이야.”
“그런데 내가 예전부터 패션 디자인을 한다고 했을 때 어떻게 생각했어?”
“너랑 그림 그리는 게 정말 좋았어. 너는 감각도 있고 현명한 아이야. 그때 네가 패션 디자인을 하고 싶은 마음을 지금까지 따라온 건 옳았던 것 같아. 안 그랬으면 아마 쉰 살이 됐을 때 ‘만일 내가’를 연발했을 거야.”
제이슨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쩐지 안심이 되었다. 제이슨은 저녁밥을 하러 가야 한다면서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남겼다.
“과거를 돌아보며 너무 자책하지 마. 너의 능력과 가능성을 상기시켜 줄 누군가가 필요하면 내게 연락해. 그리고 잊지 마, 나는 네가 특별하다고 생각하다는 것을!”
- [2장: 제이슨과 함께 인생과 예술을] 중에서
방학 때마다 사람들이 가져오는 비디오 게임과 갖가지 오락기들 때문에 서머힐에서도 많은 토론이 있었다. 게임 제한에 반대하는 의견들은 대개 다음과 같았다.
- 게임을 하는 것 역시 개인의 선택이자 자유여야 한다.
- 게임을 왜 나쁜 것으로 간주하고 제한하려 하는가. 만일 책에 중독되어 하루 종일 책만 읽는다면 문제가 안 될 것이다. 교육적인 비디오 게임들이 많아 게임으로부터 배우는 것도 있다.
- 수업은 우리의 선택에 따라 들을 수도 듣지 않을 수도 있는데 왜 게임 때문에 수업에 어가지 않으면 문제가 되는가. 이는 우리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는 것이 아니라 압박을 가하는 규칙이다.
게임에 대해 반감이 있는 나로서도 게임 제한은 지나친 사생활 침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조이가 해준 말이 내 생각을 바꿔주었다. 오래전 서머힐에 텔레비전이 처음 들어왔을 때, 텔레비전 시청 규제를 두고 토론이 벌어졌다. 그때 한 여학생이 의견을 내놓았다.
“혼자 조용히 텔레비전만 보는 것이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방에서 텔레비전만 본다면 내게도 영향을 미치게 돼. 모두가 텔레비전에 묶여 방에서 나오지도 않는다면 삶의 재미가 덜해지고 공동체 생활에 큰 지장을 주니 제한해야 한다고 생각해.”
게임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아질수록 서머힐은 재미가 없어진다. 함께 학교를 이끌어나가고 서로 어울리며 살아가는 공동체 활동은 서머힐을 숨 쉬게 하는 심장과도 같기 때문이다.
- [3장: ‘철창에 갇힌 컵’? 벌칙도 창의적으로] 중에서
교장선생님 조이가 보관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회의록은 1946년에 작성된 것인데, 회의록을 보면 당시도 지금과 똑같았다고 한다. 소소한 일상들은 70년 가까이 지나도록 변함이 없다.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의 삶은 바뀌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서머힐에서도, 서머힐 밖에서도.
서머힐 방문객들이 조이에게 하는 단골 질문이 있다.
“서머힐에서 아이들은 자유, 어른과의 동등한 위치 등 바깥세상에서는 흔히 주어지지 않는 것들을 누립니다. 그러다가 서머힐을 졸업하고 진짜 세상에 나가면 어떻게 될까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조이는 똑같이 대답했다.
“이곳이 진짜 세상입니다.”
- [3장: “이곳이 진짜 세상입니다”] 중에서
“네가 싫어하는 일은 하지 않으면 돼. 넌 성인인데 왜 부모님이 하라는 대로 해야 해?”
“내가 영국에서 공부하느라 드는 거액의 비용을 부모님이 부담하시니까. 그리고 난 더 이상 나 하고 싶은 걸 하자고 부모님을 실망시키기는 싫어. 내가 조금만 참고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친구들의 이야기를 하면 우리 부모님은 매번 놀라며 묻는다. “서머힐 학부모들도 그래?”
서머힐에 자식을 보낸 것은 서머힐의 교육철학에 동의해서일 텐데, 가끔은 그 친구의 부모님 같은 학부모들을 볼 수 있다. 서머힐 학부모도 자녀에게 수업을 들으라고 요구하거나 진로를 정해놓고 압박을 가하곤 한다.
나는 서머힐이 사람을 있는 그대로, 내가 나일 수 있도록 허용하는 곳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서머힐에서는 모든 사람이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게 된다고 생각했다. 서머힐이 많은 다른 학교들처럼 학부모들을 학교생활에 가까이 두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은 이런 부모들 때문이 아닌가 싶다. - [4장: “서머힐 학부모들도 그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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