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시대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이야기를 추리고 추렸다. 영화를 통해 세계정세를 전하고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를 다룬다는 칼럼의 기본 콘셉트만 가져왔을 뿐 모든 이야기는 새로 썼다. 그때그때 벌어지는 일에 초점을 맞춰 쓴 칼럼 모음집이 아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조금 더 거시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돕는 교양서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영화 중에서도 언젠가 시간을 들여 챙겨 봐도 아깝지 않을 작품을 고르려 애를 썼다. 오늘의 안위를 지켜내느라 녹초가 되어 버린 어느 날, 생의 환기를 위해 당신이 재생 버튼을 누른 영화가 이 책 속 작품이라면 더없이 영광일 것이다.
--- 「세상에 ‘남의 일’은 없다」 중에서
수백 년 이어진 노예제도의 상흔을 딛고 선 미국은 현재도 인종 차별이 뿌리 깊다. 그런 나라에서 ‘PC가 지나치다’, ‘흑인 배우가 시도 때도 없이 너무 많이 나온다’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는 건, 이제 인종 차별 문제가 퍽 개선됐다는 뜻일까. 미국에서 흑인을 비롯한 비백인의 삶은 그런 말을 들을 정도로 괜찮아진 것일까. 고민은 자연히 영화 〈겟 아웃〉(2017, 조던 필Jordan Peele 감독)으로 가닿았다. 무명 감독을 단번에 세계적인 스타로 만든 이 작품은 공포영화라면 질색인 나도 몇 번이나 봤을 정도로 수작이다.
--- 「인종은 없다. 인종주의가 있을 뿐」 중에서
유럽은 예전 같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유럽’이란 이상에 목청만 높이는 대신, 분열의 속도를 늦추고 연대의 방식과 형태를 달리하며 나아갈 수는 있을 것이다. 그것이 지금 EU가 그 어떤 것보다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일 거라고, 두 편의 영화를 보며 생각했다. 〈나의 사랑, 그리스〉는 비극적이되 비극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이야기를 매듭짓는다. 세 편의 드라마 중 60대의 사랑을 다룬 마지막 편. 소중한 이를 잃어 삶이 완전히 산산조각 났다고 믿었던 마리아는 기적처럼 세바스찬을 다시 만나게 된다. 우연히 만나 남몰래 사랑을 키웠던 둘은,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변함없이 따뜻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사랑이 불가능할 것 같은 시대에도 사랑은 여전히 가능하다. 형태는 바뀌어도 삶은 계속된다.
--- 「분열하는 유럽, ‘번영과 통합’의 상징 EU는 계속될 수 있을까」 중에서
두 시간 내내 난민에 털끝만큼의 관심도 보이지 않던 〈비거 스플래쉬〉의 연인 마리안과 폴은 탐욕과 질투가 빚어낸 어떤 비극이 벌어지고 나서야, 난민을 떠올린다. 그리고 이용한다. 난민을 이용한 일까지야 모르겠지만 대부분 우리의 현실은 〈비거 스플래쉬〉와 가깝다. 관련된 뉴스는 그저 흘러가고, 흘러간다. 수없이 많은 난민 영화 중에서도 유독 이 작품이 떠오르는 건 그래서인 것 같다. 난민의 비참함이 아니라, 우리의 태도에 이토록 세련된 한 방을 먹이는 작품은 흔치 않으니까. 난민 문제를 해결하는 첫걸음이 관심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 묵직한 한 방이다.
--- 「그때 누군가는 죽어가고 있었다」 중에서
이 모든 일에 있어 우리는 구경꾼이 아니다. 미국은 중국과 싸우며 모든 부문에 동맹을 끌어들이고 있다. 그 동맹, 바로 우리다. 가령 미국 정부는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들이 중국에서 사업을 더 키우지 못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를 피해 갈 방법은 없다. 또 중국이 기술 자립에 속도를 내고 있어, 그간 열심히 중간재를 수출해 온 우리 기업들은 중국 기업에 언제 밀려날지 몰라 당황스러운 처지다. 물론 두 나라의 갈등은 냉전 때와는 다르게 흘러갈 것으로 보인다. 미?중이 경제적으로 너무나 깊이 얽혀 있는 탓이다. 중국 경제가 확 꺾일 경우 글로벌 시장에 미치는 파장은 어마어마할 게 뻔하다. 당연히 미국도 이를 안다. 경쟁은 하되 서로 ‘죽이는’ 싸움은 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까닭이다. 확실한 것은, 그렇다고 우리가 마음을 놓을 상황은 아니란 점이다.
--- 「미국 vs 중국, 지구는 누가 구할까」 중에서
아이카의 현실은, 그녀가 잠시 일하게 된 동물병원의 강아지보다 못하지만 그녀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돌아가고 싶어도 “모스크바에는 거대하고 특별한 엄청난 기회들이 있다”는 누군가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영화가 끝날 무렵 우리는 아이카가 왜 아이를 버렸는지 알게 된다. 그녀의 선택을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 결말의 반전은 그래서 더 울림이 있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간 후에도 나는 한참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아이카가 ‘러시안 드림’이 아닌 다른 꿈을 꾸는 세상이 올 수 있을까. 희망을 말하기란 어렵지만, 아이카가 품에 꼭 안은 그 책을 떠올린다. 아이카는 떠밀려 오지 않았다. 그녀는 “난 나만의 인생이 있다고, 하고 싶은 사업이 있어”라고 고함을 지를 줄 아는 여성이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비정한 세계지만 때로는 약자에게도 기회가 온다.
--- 「이제 ‘밀당’의 달인을 꿈꾸는 이곳」 중에서
그리고 지금, 여기의 우리를 본다. 모두가 르웰린처럼 개인의 욕망을 위해 미친 듯이 달린다. 어떻게든 내가 든 돈가방을 움켜쥐고 놓치지 않으려 애를 쓴다. 그러나 르웰린이 안톤을 피하지 못하듯 우리 역시 이 시대의 굴레, 세상의 광기, 공동의 운명을 피할 길이 없다. 밀려드는 난민, 인종차별, 끊이지 않는 전쟁…. 너무나 먼 남의 이야기 같지만 사실은 누구도 완벽하게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성실히 계획을 짠다고 해도 우리는 지금 이곳에 함께 던져졌다. 동전 던지기에서 운이 좋아 살아남는다 해도 결국 모두, 같은 굴레 안에 있는 것이다. 원칙 따위 없고 예측이 불가한 세상. 이 책에 쓴 모든 이야기는 어쩌면 나와 당신의 이야기다.
--- 「우리 모두의 영화로운 세계를 위하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