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캐릭터라고 하더라도 핵 사용을 공언하면서 전면 침략 전쟁을 자행하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러시아의 성숙한 시민들이 그런 푸틴을 용납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독재자 한 사람이나 그 권력 주변 소수 집단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러시아의 지식인과 평화와 정의를 사랑하는 언론인과 곧은 군인들은 다 어디 갔던가? 푸틴의 러시아에는 전쟁 억지 장치가 너무나 허약했다. 정녕 러시아 시민사회의 수준이 이 정도에 불과한가.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푸시킨, 차이코프스키 등 러시아가 배출한 거장들이 지하에서 통탄할 일이다. 이 전쟁으로 우크라이나의 무고한 국민들이 참화를 당하였고, 러시아 병사 6만 명 이상이 전사했다는 보도가 나온 지 오래다. 전쟁의 여파로 세계적으로 식량 위기, 에너지 위기, 교역 위기가 덮쳤다. 어려운 삶을 더 힘들게 하고 있다. 그런데도 중국의 시진핑은 푸틴을 지지하고, 북한의 김정은은 앞장서서 푸틴이 하는 짓에 동조하고 있다. 푸·시·킴(Pu·Xi·Kim) 연대 체제의 등장이다.
동천은,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 때부터 미국의 패권 시대가 기울어져 가고 있다는 국제정치학자들의 주장에 동의하고 있었다. 푸틴은 이 세력 변화를 기회로 삼고 우크라이나를 침략해 세계적 규모의 난세의 문을 열었다고 나름 분석했다. 냉혹한 북방의 여우 푸틴은 현상타파를 선택했구나. 21세기 러시아 차르의 음험한 실눈이 떠올랐다.
--- pp.26-27 「제1부 난세(亂世) - 푸·시·킴(Pu·Xi·Kim)」 중에서
동천은 이 역사적 인물들의 공통점을 찾아냈다. 먼저, 이들은 동북아 지역에서 국제질서가 요동칠 때, 흔한 수사로 하면 천하대란의 시기에 활약했다. 다음 이들은 모두 국내외 질서를 정립하는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전쟁 지도자였다. 그리고 이들은 살아있는 동안 견디기 어려운 간난고초를 겪었으나, 그들의 뜻과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 끝으로, 이들 지도자들은 그들 시대에서 늘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고 강력한 배척 세력이 존재했으며 모함과 음해에 시달렸다.
동천은 자신의 능력 한계를 깨닫고, 최종적으로 삼국통일이라는 성공역사를 기록하게 한 김춘추를 한반도 역사상 최적의 멘토로 삼기로 했다.
--- p.54 「제2부 동북아의 최적 슈퍼 멘토를 찾아 - 역사 현장 답사」 중에서
“한 교수님, 김 원장, 나는 우리나라가 더 나은 미래를 이루기 위해서는 통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통일 문제에 대해 연구·조사를 해 왔습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 정치권이나 사회 분위기에는 통일 담론이 사라지고 오로지 정쟁이나 사회분열만 격화되고 있으며, 통일 정책은 실종됐고, 전쟁 위험만 가중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북아 정세도 날로 험악해져 당장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더라도 이상할 것 없다고 할만한 상황에 있습니다. 이런 때, 현재 한반도 정세에서 이를 극복하고 통일과 번영을 이룰 수 있는 방책에 대해 우리 선각에게 지혜를 구하고 싶습니다. 그 선각 중에서 나는 김춘추를 먼저 선정했습니다. 이후 때가 되면 이순신 제독과도 대화하고 싶습니다. 부디 길을 만들어 주세요.”
--- pp.65-66 「제3부 춘추(春秋)는 이렇게 말했다 - 경주 백률사(栢栗寺)의 인연」 중에서
이 사람은 신라가 자체의 힘을 키우고 백제·고구려에 대응하려면 시간이 걸리는데 시간은 신라 편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선존속·후융성이라는 대전략 개념을 택하고 장기 전략을 구상했다네. 최종 전략목표는 삼한일통. 후융성은 삼한일통과 같지만, 대외적으로는 융성이라고 했다. 이 전략은 적어도 20년은 걸린다고 보고, 이 사람 당대에 성취하리라는 과욕을 버리고 대를 이어 줄기차게 추진할 인재와 세력을 육성하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보았다오.
이 사람은 신라의 존속을 담보하는 구체 방책은 다른 나라와 연맹에 있다고 보았소. 그 아이디어는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합종·연횡책에서 나왔다. 그 시대에 활약한 세객(說客)들에 대한 연구를 했다오. 중국의 첫 통일 국가인 진(秦)은 장의(張儀)의 연횡책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을거요. 진의 연횡책에 의해 소진(蘇秦)의 합종책이 진의 동진을 막지 못했다. 그래서 전국시대 여러 제후국이 하나하나 진에 각개격파되었지. 원교근공(遠交近攻)은 그 세부 전술이다.
--- pp.91-92 「제3부 춘추(春秋)는 이렇게 말했다 - 제1회 대화: 김춘추는 불세출의 영웅인가?」 중에서
춘추는 제1훈을 이렇게 말했다.
제1훈: 납간배아(納諫排阿) 간언을 받아들이고 아부를 배척하라.
“교언영색(巧言令色)으로 언행 불일치하는 자들은 유해 식품이자, 해조(害鳥)다.
상품 광고도 진정성이 있어야 하는데 정치인들의 구호·선전·발언이나 정책이 야바위 같더군. 선거 캠페인을 마치 백성 속이기 놀음으로 아는 자들이 많더구나. 하긴 대한민국의 IT 기술과 디지털화가 최첨단이라고 하니 백성들도 헷갈려 옥석 구분하기 어렵겠지. 그러니, 언론이 제 역할을 해야하지 않겠나. 그런데, 언론조차 보수네 진보네 하며 어느 한쪽으로 기우니 이거는 바로 잡아야 하네. 누가 하느냐, 우 기자 같은 참 언론인들이 해야겠지. 권력이나 힘 있는 자를 비판하지 않고 감싸는 언론인은 사이비 언론이다. 내가 왕일 때도 왕을 비판하도록 간관(諫官)을 두었고, 그의 간언을 배척하지 않았다.
--- pp.139-140 「제3부 춘추(春秋)는 이렇게 말했다 - 제2회 대화: 춘추에게 묻고, 그가 말했다(Ⅰ)」 중에서
제2훈: 화이불분(和而不分) 화합을 도모하고 분열하지 말라.
“분란과 분열에 능하고 모든 잘못과 실패는 상대방에게 돌려 비방하고, 쟁취한 권력에 똬리를 틀고 성역화하는 세력들에게 기회를 주지 말라.
사람 사는 곳에는 언제나 다툼이 있기 마련이다. 다툼은 사회 구성원들이 보다 나은 사회나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있는 과정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그런데 분란과 다툼, 갈등과 분열 그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 이런 일들을 기회 삼아 경제적·정치적 이익이나 권리를 도모하려는 인간들이 더러 있다. 문제는 이런 자들이 득세하는 세상은 망조가 들어 모두가 불행하게 된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여기서는 삼한일통을 이룬 나로서 엄중히 경고하는 말을 하고 싶다.”
--- pp.141-142 「제3부 춘추(春秋)는 이렇게 말했다 - 제2회 대화: 춘추에게 묻고, 그가 말했다(Ⅰ)」 중에서
이 장어집 바로 옆에 조선조 명신(名臣) 황희(黃喜, 1363-1452) 정승의 은거처가 있고 은거처의 약간 높은 언덕에 반구정(伴鷗亭)이 서 있다. 반구는 갈매기와 벗한다는 뜻이니 압구정보다 월등 정취가 묻어나는 이름이다. 황희 정승은 사헌부의 탄핵을 받고 이곳으로 와서 갈매기를 벗으로 삼고 유유자적했을 것이다. 그는 다시 복직되어 세종 임금 조정에서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로 18년 동안 국정을 맡았다. 좌의정, 우의정을 합하면 24년을 정승의 자리에 있었다. 태종·세종의 치세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조선조의 기틀을 다졌다.
반구정 곁에서 춘추공의 말씀을 듣는다면, 조선의 명신인 황희 정승은 그가 모신 세종과 비교하여 춘추공을 어떻게 평가할는지. 동천은 흥미로운 상상을 해보았다.
--- pp.153-154 「제3부 춘추(春秋)는 이렇게 말했다 - 제3회 대화: 춘추에게 묻고, 그가 말했다(Ⅱ)」 중에서
횟집에 마련된 별채에서 동천 일행은 ‘21세기 동북아 평화와 번영을 위한 모임’ 결성식을 가졌다. 한글 약칭은 ‘동평단(東平?)’이고, 영문자로는 DPP Team(DongBukA Peace & Prosperity)으로 정했다.
DPP 팀의 유사(有司)는 동천이 맡았고, 진행은 한 교수가 하기로 이심전심 합의했다. 모임은 1년 중 춘추공을 기리는 뜻에서 봄과 가을에 갖기로 했다. 이날 DPP 팀 결성식 및 제1차 모임을 한 것이다. 동천이 그간 DPP 팀의 의견을 종합하여 새 시대를 열기 위한 동평(東平) 플랜을 발표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동평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압축한 명칭이고, 한반도가 그 중심에 있음은 당연했다. 중국의 대(對)항공모함 미사일의 이름이 동풍(東風)이고, 중국 발음은 ‘동펑’이어서 혼란의 소지가 있기는 하나, 동평(東平)의 중국 발음은 ‘동핑’이니 중국인 사이에는 혼동의 여지가 없어서 그대로 쓰기로 했다. 동천은 이름이 주는 마력을 누구보다도 절감하고 있다. 선전·선동의 요체는 ‘이름표 달기(naming)’이다. 묘하고 음산한 이름을 붙여주면, 상대는 그 이름표라는 그물에 걸려 벗어나기 어렵다. 대상을 신격화하기도 악마화하기도 하는 묘술이 ‘naming’이고 그 배경에는 프레임(frame) 짜기가 깔려있어 대중 정치 기술자들은 재주껏 애용 내지 악용하고 있다.
--- pp.210-211 「제4부 새 시대를 열기 위해 - 화진포(花津浦)의 이승만 별장과 김일성 별장」 중에서
동천은 해금강 주변의 하얀 파도 포말을 바라보며, 몇 년 전에 세상을 뜨신 어머니 생각을 했다. 어머니는 강원도 통천군 금강산 자락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이름도 강옥(江玉)으로 지었다고 했다. (…) 동천은 통일전망대에서 어머니를 불러본다. 언젠가 어머니를 가슴에 품고 당당히 금강산 통천 고향으로 가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의지의 힘은 낙수 물방울로 바위에 구멍을 낸다는 니체의 말이 떠올랐다. 뒤이어 동천이 좌우명으로 삼았던 사자성어 우공이산(愚公移山)이 니체의 말을 지웠다.
--- pp.235-237 「제4부 새 시대를 열기 위해 - 통일전망대에서 금강산 해금강을 바라보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