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관련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오토하의 오랜 꿈이었다. 대학에서는 문학을 전공했고, 근현대문학 세미나에 들어가 다자이 오사무를 주제로 졸업 논문도 썼다. 국어 교원 자격증과 서예 교사 자격증도 땄다. 사실은 도서관 사서 자격증도 따고 싶었는데, 지방에서 혼자 도쿄에 와서 생활하는 사정상 거기까지는 손을 댈 수 없었다. 학자금 대출은 받지 않았으나, 부모님이 빠듯한 가계에서 학비를 보태주었기에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어야만 했다. 고향의 교원 채용 시험에 떨어진 뒤로 출판사, 에이전시 회사, 대형 서점…… 생각나는 대로 ‘책과 관련 있는 일’을 하려고 취업 활동을 했으나 전부 떨어졌다. 대학에서 소개해 준 제조사 채용에 합격했으나, 어떻게든 책 다루는 일을 하고 싶어서 아르바이트라도 좋다는 생각에 입사를 거절했다. 결국 고향으로 돌아와 계약사원으로 서점에 들어갔다.
--- p.22
오토하가 오기 전까지 제일 젊은 직원이 미나미였다. 그래서 직장의 ‘막내’ 같은 태도가 몸에 뱄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한참 위인 마사코와 아코, 차분한 사사이, 오빠 같은 도카이(도쿠다는 미나미가 입사할 때는 아직 없었다)였으니 ‘언제나 밝고 장난기 있는 막내’가 필요할 것 같았다. 아니, 생각하기에 앞서 몸이 먼저 반응했다. 밝고 장난기 있게 지내다가도 이렇게 제멋대로인 이용자의 메일에 답을 쓰다 보면, 자기 본성이 드러날 것 같아서 두렵다.
이 도서관에서 일하는 다른 사람과 자신은 전혀 다르다…….
나중에 들어온 도쿠다도, 어제 들어온 오토하도 “책을 좋아해요!” “소설을 특히 좋아해요!”라는 감정을 전혀 감추려 하지 않는다. 미나미는 사실 일할 때 필요한 책만 읽고 그 이상은 책을 더 찾아서 읽거나 공부하지 않는다. 다만 도서관 업무 특성상 필요한 책이 많으니까 독서가처럼 보일 뿐이다. 언젠가 이 가면이 벗겨지지 않을까……. 미나미는 늘 두려워했다.
--- pp.111~112
나는, 책을, 읽지 못한다. 이렇게 일할 때만 그런 것이 아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커피를 내릴 때, 커피를 마실 때, 여기 와서 젊은 사람들과 대화하며 무심코 폭소할 때도. 나는, 책을, 읽지 못한다. 나는, 책을, 읽지 못한다. 이제는, 읽지 못한다. 앞으로 쭉, 읽지 못한다. 단 한시라도 잊을 수 없다. 이제는 책을 읽지 못한다는 것을. 오로지 책에 푹 빠져서 읽고, 주변의 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열중해서 다른 세계로 끌려갔다가 끝까지 다 읽었을 때 그 세계에서 휙 쫓겨나는 듯한 그…… 쓸쓸하고도 충실한 한때를, 나는 두 번 다시는 맛보지 못한다.
글자를 읽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글자는 읽을 수 있다. 꼼꼼히 읽고 이해할 수도 있다. 그저 예전처럼 열중해서 몸과 마음을 전부 바치는 것처럼 책을 읽지 못한다. 읽어도 첫 몇 페이지 정도다. 며칠에 걸쳐 간신히 한 권을 읽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기쁨은 거의 느끼지 못한다. 그저 피로할 뿐이다. 그저 노력하면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안도감만 얻는다.
--- pp156~157
부드럽고 하얀 빵에 초록빛 음식이 들어있다. 한 입 먹자, 오이 맛과 버터 맛이 확연하게 입으로 뛰어들었는데, 단순하면서도 맛이 깊었다.
“기노시타 씨, 이거 진짜 맛있어요. 정말 빵이랑 버터랑 오이로만 만들었나 싶을 정도로요.”
“고마워. 오이는 얇게 썰어서 소금으로 주무르기만 해서 넣었어.”
다음으로 로스트치킨샌드위치를 먹었다.
“이것도 맛있다. 치킨이 촉촉해요.”
“치킨은 닭가슴살을 간단하게 소금과 후추로 굽고, 프렌치 드레싱으로 가볍게 버무려서 넣었어.”
“전부 소박한 맛이네요. 그래도 소박하면서 깊은 맛이 나요.”
“아마 그 시대는 그런 걸 먹었을 것 같아. 또 검소한 목사의 아내였던 몽고메리니까 아마 요즘 소설가처럼 음식의 맛을 장황하게 서술하는 건 선호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
“그렇네요.”
샌드위치 접시 위에 놓인 작은 접시에는 그린피스가 담겼다. 먹어보니 그린피스를 부드럽게 데친 것으로, 버터 향이 났다.
“그건 그린피스버터소테. 마무리로 설탕을 한 숟갈 넣었어. 모건 부인을 ‘초록 지붕 집’에 불렀을 때, 앤이 설탕을 너무 많이 넣어서 망친 거 기억해?
--- pp.177~178
‘최소한 3년간 우리 도서관에서 일할 것.’
나는 그 조건을 받아들였다. 가게는 당시 아르바이트로 도와주던 사람에게 일시적으로 맡겼다. 하지만 결국 미쓰미의 장서는 단 한 권도 손에 넣지 못했다. 여기 있는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지만, 처음 계약했던 3년 중 이제 반년이 남았다. 앞으로 어떻게 할지 때때로 생각한다. 그래도 여기 오기 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일은 쾌적했다. 책을 다루는 직업으로 흔히 서점 직원, 사서, 헌책방 직원, 이렇게 세 가지를 꼽는데, 이해관계가 대립하므로 그다지 연결고리는 없다. 때로는 반목하기도 하고……. 그러나 이렇게 함께 일하다 보면 그런 장벽이 점점 사라진다. 우리는 저마다 역할이 다를 뿐이라고 생각한다.
--- pp.237~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