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책쾌 조신선 이야기 (큰글자책)
원서
曺神仙傳
가격
32,000
32,000
YES포인트?
0원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국내배송만 가능
  •  최저가 보상
  •  문화비소득공제 신청가능

책소개

목차

책쾌 조신선 이야기

조신선전(曹神仙傳)
죽서조생전(?書曺生傳)
조신선전(曺神仙傳)
조신선전(曺神仙傳)
조생(曹生)
조신선예지봉주강감화(曺神仙預知鳳州綱鑑禍)

부록 I : 근대 이전 책쾌 관련 문헌

미암일기초(眉巖日記草)
영조실록(英祖實錄)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이재난고(?齋亂藁)
여사서서(女四書序)
고동서화(古董書畵)
흠영(欽英)
유의평례(類義評例)
공사(供辭)
봉곡계선생행장(鳳谷桂先生行狀)

부록 II : 20세기의 책쾌

한상윤 노인(韓相允老人)
송신용 노인(宋申用老人)
세시책방기(歲時冊房記)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저자 소개7

다산茶山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대학자로, 호는 다산(茶山)이다. 1762년 경기도 광주부(현재의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서 출생하여 28세에 문과에 급제했다. 1789년 대과에 급제한 이후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관료 생활을 했다. 곡산부사, 동부승지, 형조참의 등의 벼슬을 지냈다. 문장과 유교 경학에 뛰어났을 뿐 아니라 천문, 과학, 지리 등에도 밝아 1793년에는 수원성을 설계하는 등 기술적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정조 승하 후 당시 금지되었던 천주교를 가까이한 탓으로 벽파의 박해를 받기 시작해 1801년(순조 1년)에 강진으로 귀양을 갔으며, 무려 18년에 걸친 귀양살이 동안 10여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대학자로, 호는 다산(茶山)이다. 1762년 경기도 광주부(현재의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서 출생하여 28세에 문과에 급제했다. 1789년 대과에 급제한 이후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관료 생활을 했다. 곡산부사, 동부승지, 형조참의 등의 벼슬을 지냈다. 문장과 유교 경학에 뛰어났을 뿐 아니라 천문, 과학, 지리 등에도 밝아 1793년에는 수원성을 설계하는 등 기술적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정조 승하 후 당시 금지되었던 천주교를 가까이한 탓으로 벽파의 박해를 받기 시작해 1801년(순조 1년)에 강진으로 귀양을 갔으며, 무려 18년에 걸친 귀양살이 동안 10여 권의 책을 저술하였다. 정약용은 나라의 정치를 바로잡고 백성들의 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을 학문적으로 연구하여 많은 저서를 남긴 조선 최대의 정치·경제학자이다. 1818년 귀양에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온 뒤 1836년 별세하기까지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죽은 후 규장각 재학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목민심서(牧民心書)』, 『경세유표(經世遺表)』, 『흠흠신서(欽欽新書)』 등 500백여 권의 책을 썼다.

정약용의 다른 상품

趙秀三

1762년(영조 38)∼1849년(헌종 15). 조선 후기의 여항시인(閭巷詩人). 본관은 한양(漢陽). 초명은 경유이다. 자는 지원(芝園)·자익(子翼), 호는 추재(秋齋)·경원이다. 가선대부 한성부좌윤 겸 오위도총부부총관(漢城府左尹兼五衛都摠府副摠管)에 추증된 원문(元文)의 아들이며, 여항시인 경렴(景濂)의 동생이고, 조선 말기의 화원(畵員)인 중묵(重默)은 그의 손자이다. 어려서부터 시로 이름이 났고 만년까지 1500여 수의 시를 창작한, 정조와 순조 연간을 대표하는 시인이다. 송석원시사(松石園詩社)에서 중추적으로 활동했으며, 여항 시단을 비롯하여 당시의 쟁쟁한 사대부들과도
1762년(영조 38)∼1849년(헌종 15). 조선 후기의 여항시인(閭巷詩人). 본관은 한양(漢陽). 초명은 경유이다. 자는 지원(芝園)·자익(子翼), 호는 추재(秋齋)·경원이다. 가선대부 한성부좌윤 겸 오위도총부부총관(漢城府左尹兼五衛都摠府副摠管)에 추증된 원문(元文)의 아들이며, 여항시인 경렴(景濂)의 동생이고, 조선 말기의 화원(畵員)인 중묵(重默)은 그의 손자이다.

어려서부터 시로 이름이 났고 만년까지 1500여 수의 시를 창작한, 정조와 순조 연간을 대표하는 시인이다. 송석원시사(松石園詩社)에서 중추적으로 활동했으며, 여항 시단을 비롯하여 당시의 쟁쟁한 사대부들과도 시를 통해 교유한 인물이다. 추사 김정희는 그의 시에 대해 두보의 시풍에 근접한다고까지 평한 바 있다. 그러나 중인 출신으로, 신분상의 제약 때문에 벼슬을 하지 못하다가 여든셋이 되어서야 노인에 대한 예우로 진사시에 급제, 오위장(五衛將) 벼슬을 받았다. 젊은 시절에 사신의 보좌역으로 여섯 차례 청나라를 오가면서 중국 문인들과 교분을 쌓기도 했다. 만년에 손자에게 필사케 하여 집필한 『추재기이』는 타고난 이야기꾼으로서 조수삼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는 저작이다. 지은 책으로는 『연상소해(聯床小諧)』, 『추재시초(秋齋詩抄)』, 『추재집(秋齋集)』 등이 있다.

조수삼의 다른 상품

조선 후기의 화가. 호는 호산(壺山). 추사 김정희의 문인이다. 글씨는 추사체를 본받았고 그림은 난초와 매화를 특히 잘 그렸다. 미천한 신분의 인물 중 학문·문장·서화·의술·점술에 뛰어난 사람들의 행적을 기록한 《호산외기(壺山外記)》(1844)를 남겼다.

조희룡의 다른 상품

자(字)는 자직(子直), 호(號)는 운고(雲皐). 아버지 서격수(徐格修, 1759∼1842)와 어머니 안씨(安氏)에게서 2남 1녀 중 둘째 아들로 1801년(순조 1) 12월 20일에 태어나, 아들이 없던 숙부 서옥수(徐沃修, 1756∼1823)의 양자로 들어갔다. 서유영은 첫 부인 권씨(權氏)와 둘째 부인 박씨(朴氏)를 잃고 양씨(楊氏)와 세 번째 결혼을 하지만, 아들이 없어 사촌인 유위(有緯)의 아들 정보(正輔, 1821∼1898)를 양자로 들였다. 서유영의 저작으로는 한문장편소설 《육미당기(六美堂記)》 외에 야담집 《금계필담(錦溪筆談)》, 시집 《운고시선(雲皐詩選)》이
자(字)는 자직(子直), 호(號)는 운고(雲皐). 아버지 서격수(徐格修, 1759∼1842)와 어머니 안씨(安氏)에게서 2남 1녀 중 둘째 아들로 1801년(순조 1) 12월 20일에 태어나, 아들이 없던 숙부 서옥수(徐沃修, 1756∼1823)의 양자로 들어갔다. 서유영은 첫 부인 권씨(權氏)와 둘째 부인 박씨(朴氏)를 잃고 양씨(楊氏)와 세 번째 결혼을 하지만, 아들이 없어 사촌인 유위(有緯)의 아들 정보(正輔, 1821∼1898)를 양자로 들였다.

서유영의 저작으로는 한문장편소설 《육미당기(六美堂記)》 외에 야담집 《금계필담(錦溪筆談)》, 시집 《운고시선(雲皐詩選)》이 필사본의 형태로 남아 있다. 서유영의 생애는 그 변화의 굴곡에 따라 세 시기로 나눠 볼 수 있다. 첫째, 과거를 포기한 1830년 이후, 경기도 양주에 살면서 시사(詩社)를 결성해 문인들과 교유하며 지내던 시기. 둘째, 1860년 사릉참봉(思陵參奉), 1865년 의령현감(宜寧縣監)을 지내며, 역사의 비극을 반추하고, 지방 아전들의 폐단과 백성들의 고충을 몸소 겪는 시기. 셋째, 1868년 평안도 삼등(三登)에 유배됐다가, 풀려나 금계(錦溪, 충청도 금산)로 낙향해 지내는 고독한 시기.

서유영에게 있어 가장 득의(得意)의 시절은 첫 번째 시기, 즉 시사(詩社)를 결성해 문인들과 교유하던 시절이었다. 이 시기에 정학연(丁學淵), 정학유(丁學游), 윤정현(尹定鉉), 홍한주(洪翰周), 김영작(金永爵), 박규수(朴珪壽) 등의 동년배 문인들과 시사를 결성해 교분이 자못 두터웠다.

1860년(철종 11)에 음보(蔭補)로 사릉참봉을 지냈는데, 1863년에 소설 《육미당기》를 지었다. 1865년(고종 2) 가을에 역시 음보로 경상도 의령현감에 부임했는데, 3년째인 1868년 가을에 암행어사의 탄핵을 받아 평안도 삼등으로 유배를 간다. 탄핵을 받은 이유에 대해서는, 암행어사와 모(某) 진사(進士) 간에 서로 헐뜯다가 그 분노로 인해 파면됐다고 적었다. 1870년 1월에 유배에서 풀려 돌아오게 되는데, 곧바로 금계로 낙향한 듯하다. 1873년에 야담집 《금계필담(錦溪筆談)》을 저술한다.
족보에도 몰년은 나와 있지 않아 정확한 연도를 알 수 없으나, 1876년까지는 생존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 따르면, 1876년(고종 23) 윤5월 3일 조사오위장(曹司五衛將)에 임명했지만, 윤5월 22일 서유영이 신병을 이유로 고사했으며, 같은 날 일종의 명예직이라 할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임명했다는 기사가 있다.

서유영의 교유 가운데 흥미로운 사실은 두산(斗山) 서돈보(徐惇輔, 1808∼1876)와의 교유이다. 서돈보는 《육미당기》 권말에 들어 있는 평문 가운데 “나의 벗 남담초의 옥루몽…(吾友 南潭樵 玉樓夢…)”이라는 문구가 든 평문을 적어 《옥루몽》의 작자가 담초 남영로(南永魯, 1810∼1857)라는 문헌적 증거를 제시해 주는 인물이다. 서돈보는 한편으로는남영로와, 다른 한편으로는 서유영과 교우관계에 있었던 것이다. 남영로는 경기도 용인에서 살았는데, 서돈보를 매개로 서유영과의 교유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박지원(朴趾源)의 《열하일기(熱河日記)》, 서유구(徐有?)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를 격찬하는 기록이나, 박지원의 손자 박규수, 정약용의 아들 정학연·정학유와의 교유에서 보듯, 서유영은 실학의 학문적 전통과도 접맥되어 있었다. 서유영의 취향으로 특히 주목되는 면은 도교와 불교에의 관심이다. 그의 이러한 입장은 그대로 반영되어 도교적·불교적 색채를 강하게 띤 《육미당기》를 산출케 된다.

서유영의 다른 상품

張志淵

대한제국기 및 일제강점기 언론인·학자. 호는 위암(韋庵)·숭양산인(嵩陽山人). 독립협회·대한자강회 위원으로 참여하고, 평양일신학교·휘문의숙에서 교육사업을 펼쳤으며, 《시사총보》·《황성신문》·《해조신문》·《경남일보》 등의 주필로 활동하였다. 이와 더불어 『여자독본』, 『일사유사』, 『대동시선(大東詩選)』, 『대동문수(大東文粹)』, 『동국역사(東國歷史)』, 『조선유교연원(朝鮮儒敎淵源)』 등 문학·역사·철학 분야에서 많은 저술을 남겼다.

장지연의 다른 상품

姜斅錫

일제 강점기 학자. 본관 진주. 호 치당(痴堂). 시에 능하였다. 1920년대 한양서원(漢陽書院)을 직접 경영하면서 자신의 여러 저서를 펴냈다. 일제강점기에 한국 역사에 대한 지식과 인물 상식을 넓혀 주기 위하여 일생을 바친 인물이다. 저서에 『전고대방(典故大方)』 『대동기문(大東奇聞)』 『동국전란사(東國戰亂史)』 『진주강씨세보(晋州姜氏世譜)』가 있다. 주요저서 『전고대방』 『대동기문』 『동국전란사』 『진주강씨세보』 등

강효석의 다른 상품

李民熙

강화도에서 태어나 자랐다. 연세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에서 고전문학 비교 연구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폴란드 바르샤바 대에서 수년간 폴란드 학생들을 가르쳤고, 현재는 강원대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고전소설 연구를 중심으로 하면서 근대문학, 문학사, 구비문학, 비교문학, 민속학, 서지학, 문화예술학, 문학교육학을 또 다른 거점으로 삼아 분과 학문적 경계를 넘어서기 위한 공부를 계속해 오고 있다. 주요 저서로 『파란·폴란드·뽈스까!-100여 년 전 한국과 폴란드의 만남, 그 의미의 지평을 찾아서』(소명출판, 2005, 문화관광
강화도에서 태어나 자랐다. 연세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에서 고전문학 비교 연구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폴란드 바르샤바 대에서 수년간 폴란드 학생들을 가르쳤고, 현재는 강원대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고전소설 연구를 중심으로 하면서 근대문학, 문학사, 구비문학, 비교문학, 민속학, 서지학, 문화예술학, 문학교육학을 또 다른 거점으로 삼아 분과 학문적 경계를 넘어서기 위한 공부를 계속해 오고 있다.

주요 저서로 『파란·폴란드·뽈스까!-100여 년 전 한국과 폴란드의 만남, 그 의미의 지평을 찾아서』(소명출판, 2005, 문화관광부 선정 우수학술도서), 『16∼19세기 서적중개상과 소설·서적 유통관계 연구』(역락, 2007, 대한민국 학술원 선정 우수학술도서), 『조선의 베스트셀러?조선후기 세책업의 발달과 소설의 유행』(프로네시스, 2007), 『조선을 훔친 위험한 책들』(글항아리, 2008), 『마지막 서적중개상 송신용 연구』(보고사, 2009, 대한민국 학술원 선정 우수학술도서), 『역사영웅서사문학의 세계』(서울대 출판부, 2009), 『백두용과 한남서림 연구〉(역락, 2013, 대한민국 학술원 선정 우수학술도서), 『얼굴나라』(계수나무, 2013, 세종도서 문학나눔 우수도서), 『쾌족, 뒷담화의 탄생-살아있는 고소설』(푸른지식, 2014, 세종도서 교양나눔 우수도서), 『세책, 도서 대여의 역사』(커뮤니케이션북스, 2017), 『박지원 읽기〉(세창미디어, 2018), 『비엔나는 천재다』(글누림, 2019), 『강원도와 금강산, 근대로의 초대-19세기 말∼20세기 초 서양인 여행기를 읽다』(강원학연구센터, 2021), 『근대의 금강산과 강원도, 그 기록의 지평』(소명출판, 2022), 『18세기의 세책사』(문학동네, 2023) 등이 있다.
역서로는 『여용국전/어득강전/조충의전』(지식을만드는지식, 2010), 『낙천등운』(한국학중앙연구원, 2010, 임치균·이민희·이지영 공역), 『춘풍천리』(지식을만드는지식, 2011), 『옹고집전』(휴머니스트, 2016), 『방한림전』(휴머니스트, 2016), 『서산대사전』(지식을만드는지식, 2023) 등이 있다.

이민희의 다른 상품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6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193쪽 | 210*290*10mm
ISBN13
9791128895111

책 속으로

나는 비록 책은 없지만, 아무개가 어떤 책을 몇 년째 소장하고 있다면, 그 책 중엔 필시 내가 판 책이 있을 것이오. 내 비록 책의 뜻은 모르지만, 어떤 책을 누가 지었고, 누가 주석을 달았으며, 몇 권 몇 책짜리 책인지는 다 안다오. 그런즉 세상의 책이란 책은 다 내 책이요, 세상에 책을 제대로 안다는 사람 중에 나만큼 아는 사람도 없을 것이오. 만약 세상에 책이 없어진다면, 나는 더 이상 달리지 않을 것이고, 세상 사람들이 책을 사지 않는다면, 날마다 내가 술 마시고 취하는 일도 없을 것이오. 이는 하늘이 세상에 있는 책을 나에게 지키라 명한 것이기에 나는 내 생애를 책과 함께 마쳐도 여한이 없소.

--- 「조수삼_ 죽서조생전」중에서

출판사 리뷰

‘문(文)’의 가치를 가장 숭상했지만, 서점도 도서관도 없었던 조선 사회에서 그것의 원천인 ‘책’은 아주 오랫동안 소수의 전유물이었다. 이때 조선 사회에서 책이 돌 수 있도록 지식 유통과 확산의 윤활유 역할을 담당했던 이들이 바로 ‘책쾌(冊?)’다. 오늘날 서적 외판원에 해당하는 책쾌는 흔히 ‘서쾌(書?)’, ‘서책쾌(書冊?)’, ‘책 거간꾼’, ‘책 주릅’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전기수(傳奇?) 같은 이야기꾼이 무형의 지식과 이야기를 음성과 몸짓으로 전달하던 주체였다면 책쾌는 유형의 지식 매체인 ‘책’을 직접 전달해 주던 주체였다. 이들 대부분은 생계유지 차원에서 지식과 책, 그리고 이야기를 중개했다. 그러나 다른 상인들과 달리 일정 수준의 문해력과 교양을 갖춘 준지식인이기도 했던 책쾌는, 비록 그들이 의도하지는 않았더라도 자연스레 근대 이전의 지식 창출과 확산의 전위대 역할을 감당했다.

영·정조 시대에 한양에서 활동했던 ‘조생’은 책쾌 중에서도 가장 전설적인 인물이다. 정약용, 조수삼, 조희룡, 서유영 등의 굵직한 문인들이 그를 직접 만났던 이야기를 전(傳)으로 남겨, 이후 많은 이들에 의해 회자되었다. 이들 이야기는 모두 조생을 기이한 신선의 면모를 갖추고 있는 이인(異人)으로 그린다. 나이를 종잡을 수 없는 외모, 책에 대한 박학함, 재물과 출세에 집착하지 않고 책 판 돈 모두를 술 마시는 데 썼던 속세를 벗어난 듯한 행적 때문이다. “하늘이 세상에 있는 책을 나에게 지키라 명한 것이기에 나는 내 생애를 책과 함께 마쳐도 여한이 없소”라는 분명한 소신과 절묘한 영업 방식으로 책을 필요로 하는 다양한 고객의 요구를 충족시켜 주었던 조생. 그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과는 판이한 조선 시대 서적 유통과 지식 전파의 한 면을 살필 수 있을 것이다.

부록에는 여러 책쾌들의 이야기를 수록했다. 송희정, 박의석, 박온정, 배경도, 정행철, 박사억, 박사항을 비롯해 조선 지식 사회의 마중물 역할을 했던 수많은 이름 없는 책쾌들의 활약상을 다양한 문헌에서 발췌했다. 책쾌들의 활동은 전근대기를 넘어 20세기 중반까지 이어졌다. 이들은 고서를 위주로 학자나 문인, 식자층을 상대로 거래했다. 산재한 고서를 한곳에 모으거나, 해방 후 일본인들이 소장하고 있던 서적, 일본으로 반출된 서적을 찾아내 이를 연구자나 기관에 공급함으로써 국학 연구에 기여하기도 했다. 이들 가운데 가장 활발하게 활동해 ‘20세기의 조신선’이라 할 만한 한상윤(韓相允, ?∼?)과 송신용(宋申用, 1884∼1962)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리뷰/한줄평0

리뷰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한줄평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

32,000
1 3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