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의 의미적 내용과 주장적 내용 사이에는 거의 차이가 없다는 결론은 또한 민주주의 의회에서 입법의 절차적 측면에서도 뒷받침된다. 법률은 경우에 따라 신중하든 아니든 초안이 작성되지만, 최종적으로 투표할 수 있는 텍스트가 나올 때까지 수정, 재작성, 협상 등을 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법률이 투표에 부쳐지는 것은 최종 텍스트이다. 그러므로 입법자들이 제안된 법안에 대해 투표할 때 그들의 개별적이고 집단적인 소통 의도는 제안된 법안인 최종 텍스트가 제정 문맥에서 의미하는 것에 대해 찬성(또는 반대) 투표하는 것이다. 법안에 대한 투표는 최종 투표에 부쳐진 텍스트에 기록되어 있는 주장적/법적 내용을 전달하기 위한 소통 의도이다. 물론 이제 텍스트가 말하고 있는 것, 즉 주장적 내용은 단어와 문장들이 축자적으로 의미하는 바가 정확히 아닐 수도 있다. 입법자들은 종이 위에 단어를 사전식으로 번역한 것에 아니라 법안이 말하는 것에 투표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 절차의 집단적이고 다소 복잡한 성격을 고려할 때, 입법 텍스트가 문자 그대로 의미하는 것과 입법 문맥에서 주장하는 것 사이에 큰 차이가 있을 여지가 없다. 일반적으로 법이 주장하는 것은 투표될 텍스트의 공공연한 의미론적 의미이다. 다시 말해 매우 비정상적인 상황을 제외하고 모든 상황에서, 입법자들의 소통 의도는 그 법안 텍스트가 공공연하게 의미하는 것을, 즉 문제 법안의 의미적 내용을 주장하는 것이라는 점을 투표 절차가 입증해 준다.
--- p.48~49
입법은 조작된 발화의 형태가 아니다. 그러나 완전히 협조적이지도 않다. 법적 소송에서 우리가 자주 갖는 종류의 담화는 본질적으로 ‘전략적’이다. 내가 여기서 사용하는 용어인 전략적 발화의 본질적인 특징은 화자가 기꺼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보다 더 많은 (또는 더 적은) 의미를 함축함으로써 어떤 이득을 얻으려고 한다는 점이다. 일상적인 대화에서 화자는 자신의 발화가 대화상 함축하는 내용을 분명히 말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는 화자가 관련된 함축적 의미를 기꺼이 인정할 것이라고 가정한다. 함축된 내용을 설명하는 것은 그의 발화 목적을 훼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점이 바로 전략적 발화에서와는 다른 요소이다. 즉, 화자는 명료하게 표현하지 않는 어떤 것을 함축하려고 하는데, 표현하면 함축의 목적을 무너뜨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분명한 예는 암시이다. 문맥 C에서 X를 말함으로써 화자가 청자에게 Y를 암시하려고 한다고 가정해 보자. 진술하거나 단언함으로써 Y를 명시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암시의 한 형태로서의 발화 목적을 무효화한다. 실제로 주장한다면 더 이상 암시가 아니다. 어떤 내용이 공중에 떠돌고 있다는 것은 진술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무엇을 암시하는 것의 필수적인 측면이다. 즉, 완전한 주장 의지가 없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제안하는 것이다.
--- p.62~63
중요한 설명을 덧붙이자면, 앞의 논의는 권고의 진리치 평가가능한 주장된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 국한된다. 그러한 표현의 내용에 대해 또는 일부 문제가 있는 경우에 대한 적용에 대해 의구심이 생길 때, 그러한 표현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후자는 결정적으로 청자가 관련한 관심에 또는 더 정확하게는 발화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에 달려 있다. 설령 화자의 의도, 희망, 기대 등이 발화의 문맥에서 화자에 의해 완전히 주장되지 않거나 또는 심지어 함축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청자가 그것에 관심이 있거나 알아낼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우리는 종종 화자가 말하거나 주장한 것(또는 함축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 한다. 그리고 심지어 법의 맥락에서도 그러한 지식은 법의 올바른 해석과 상당히 관련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들은 본 장의 초점을 벗어난다. 나는 여기서 법률 해석의 이론을 제안하지 않는다. 나의 유일한 관심사는 언어 행위에 의해 표현된 내용에 진리치를 부여할 수 있도록 하는 그런 법적 언어 행위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다. 관련 발화에 의해 명확하지 않을 때 그러한 내용을 어떻게 완성하는지는 여기서 논의되지 않을 많은 고찰을 수반하는, 별개의 훨씬 더 광범위한 사안이다.
--- p.96
법률에서 과도하게 모호한 용어의 더 친숙한 일부 예들은 부분적으로 정의되는 경향이 있어서 그보다 약간 더 복잡하다. 예를 들어, 뇌물죄 법률의 맥락에서 “부패”라는 단어의 사용을 고려해 보라. ‘연방법(18 USC 201)’에 따른 뇌물의 정의는 뇌물을 “공직자나 후보자에게 ‘부패하게’ 어떤 것을 주거나 제공하거나 약속해 어떤 공적 행위에 영향을 미치도록 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부패”라는 단어는 의심할 여지없이 과도하게 모호하다. 대부분의 경우 주어진 일련의 상황들이 부패에 해당되는지 아닌지에 대한 결정은 “방치”와 매우 유사하며, 문맥적으로 그리고 총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법은 그것을 그대로 두지 않는다. 부패는 부분적으로 보상 요소를 요구하는 것과 같은 규칙과 비슷한 다양한 결정들에 의해서 규정되며, 단순히 공무원들에게 접근하는 것만으로는 부패로 간주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에서 두 가지 종류의 추론 사이에 긴장감을 갖는다. 한편으로는 법원이 당면한 특정 사건에 대해 모든 것을 고려한 총체적인 판단을 내리도록 허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과도하게 모호한 용어가 있다.
다른 한편, 우리는 그러한 결정을 형성하고 관련 행위가 부패한 것으로 간주되기 위해 충족해야 하는 ‘몇몇 조건들’을 사전에 결정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몇 가지 특정 규칙을 가지고 있다. 부패와 같이 명백하게 모호한 용어의 부분적 정의에서 구체화된 다양한 유형의 법적 규정들 간의 이러한 타협은 법이 사전에 상당히 구체적인 지침을 설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반영하지만, 그러한 지침이 얼마나 구체적이어야 하는지에 한계가 있다. 그러나 그 한계는 인식론적이지 않다. 즉, 그것은 지식의 부족이나 제한된 선견지명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부패의 개념을 구성하는 평가 요소들의 다차원성에서 비롯된다. 물론 부패는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적법 절차”, “형평성”에 대한 고려, “프라이버시” 보호 등과 같은 법적 개념에도 유사한 고찰이 적용된다. 법에 나타나는 가장 과도하게 모호한 용어는 부분적으로 정의되어 있다고 나는 감히 추측해 본다.
--- p.133~134
그러나 텍스트주의는 법원과 입법부 사이의 대화의 성격이 완전히 협력적이거나 최소한 그렇게 가정되어야 한다고 왜 주장할 수 없었는가? 여기서 대화의 전략적 성격을 가정하는 것이 텍스트주의의 근거, 즉 존재 이유의 본질적인 부분이라는 것에 그 대답이 있다. 결국, 텍스트주의는 입법자들이 전달하기를 원했을 수도 있는 것과 실제 성공적으로 전달한 것 사이의 구분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법적 효력을 후자에게만 부여한다. 우리가 입법부와 법원 사이에 완전히 협력적인 유형의 대화를 가정했다면 의도주의가 (그리고 어느 정도 합리주의가) 승리했을 것이며, 입법부가 말한 것에 집중하기보다는 입법부가 달성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일 것이다. 결국, 당사자들이 완전하게 협력하는 일상적인 대화에서 대화 당사자가 주로 파악하려고 하는 것은 말하거나 주장하는 내용뿐만 아니라 정확히 바로 서로의 의도이다. 더욱이 입법 과정에서 입법자들 사이의 대화가 갖는 전략적 성격은 의도주의에 반대하는 신뢰성 논증의 필수적인 부분을 형성한다. 입법자들이 전달하고자 싶었던 것을 확인하려는 내재적 어려움, 그리고 그러한 시도의 불가피한 비신뢰성을 지적하는 것은 입법 과정의 전략적 성격에 크게 의존한다. 즉, 텍스트주의의 호소력의 본질적인 부분은 입법 담화의 전략적 성격 그리고 법원과 입법부 사이의 대화가 친구 사이의 일상적인 대화를 모델로 삼을 수 없다는 생각에 결정적으로 달려 있다.
--- p.161
스칼리아에 따르면 엄격한 헌법 문서에 어떤 도덕적·정치적 원칙을 견고하게 하는 요점은 말하자면 그러한 원칙을 제때 동결하는 것이다. 결국 논란의 여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정 사안을 미리 결정하고, 다음 세대를 위해 이러한 사안에 대한 어떤 결의안을 제때 동결하는 것이 헌법 체제의 핵심이다. 물론 완전한 동결은 아니다. 헌법은 자체 개정 절차를 제공하며 그에 따라 변경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민주적 절차로는 변경하기 어렵게 만드는 법체계에서 개정은 반다수결주의적 요소로 작동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따라서 이것이 헌법적 제약에 대한 사전 약속의 요점이기 때문에, 스칼리아는 헌법 해석가들이 그 내용에 대한 “근원적인” 이해를 따르는 것이 의무적이라고 결론짓는다. 이러한 생각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 법관이 헌법을 현재의 도덕적·정치적 관념에 맞게 수정하도록 허용해서 부담스러운 수정 절차를 우회하는 것은 입헌주의를 반다수결주의적 사전 약속 장치로 생각하는 것 자체를 뒤엎는 것과 같다. 나는 이것이 헌법 해석에서 근원주의 배후에 있는 주요 생각이라고 주장한다.
--- p.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