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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싱 스페이스 바닐라

이산화 | 고블 | 2024년 06월 27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10.0 리뷰 2건 | 판매지수 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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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6월 27일
쪽수, 무게, 크기 392쪽 | 440g | 128*200*18mm
ISBN13 9791159258763
ISBN10 1159258767

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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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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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동결건조된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승객들이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으리란 티코의 가설에는 분명히 잠재력이 있었다. 회사에도 승객들에게도 책임을 돌리지 않으면서 아이스크림의 행방을 결정할 잠재력이. 하지만 완벽하지는 못했다. 자모카는 바닐라향을 정밀하게 구별할 수 있다. 전자기 폭풍 속에서도 자모카의 후각 센서는 고장 난 적이 없다. 스칼렛은 자모카와 다른 모델의 센서를 쓰고, 캔디스는 센서를 안 달고 있다. 세 사람이 동시에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다른 음식으로 착각했으리란 해답을 밀어붙이기 위해선 먼저 이 모든 장애물을 통과해야 한다.
--- p.48

미칠 지경이 돼 가지고는, 수소문하고 매일같이 연락 넣고, 뭐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그 여자를 안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지 뭡니까? 학계에서도, 뭐 기업체에 아는 친구 선배 후배들한테 물어봐도, 도대체가 단서라고는 없었습니다. 어디 연구실이든 회사든 소속이 되어 있으면 한 명 정도는 알아야 정상인데 말입니다. 상황이 그렇게 되니까 정말 이상하고 이상해서 견디지를 못하겠더군요.
--- p.85

자신들에게 주어진 무한한 자유의 범위를 깨달은 순간, 한때 본사 소속의 군사생명공학자였던 이들은 지금껏 조용히 꿈꿔 오기만 했던 일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실행에 옮겼다. 가장 먼저 본사가 아닌 자신들의 이름을 자랑스레 내걸었고, 그런 다음에는 전술적 효율성이라는 속박을 말끔히 벗어던진 온갖 해괴한 생물병기를 마구잡이로 디자인해댔으며, 생산 라인에서 뿜어져 나온 따끈따끈한 흉물들은 최전방으로 실어 보내는 대신 무절제하게 주변에 풀어놓았다. 곧 지금껏 존재한 적 없는 생태계가 과거의 전선 곳곳에 곰팡이처럼 무럭무럭 피어났다. 그때까지도 버려진 채 허망하게 전선 주위를 떠돌던 병사들은 그런 지역을 ‘정원’이라고 불렀다.
--- p.114

팔레르모 소령과 케슬러 중위가 탑승한 신형 유인우주선 ‘BMAX’가 다섯 번째로 추락하기 시작할 때쯤, 두 사람은 자신들이 반복되는 시간 속에 갇혔음을 비로소 눈치챘다. 상식선에서 쉽게 다다를 만한 결론은 아니었다. 똑같은 위기 상황이 네 번 되풀이되는 동안만 해도 둘은 이것이 악몽이나 환각, 혹은 기묘한 형태의 주마등 같은 것이리라 추측하고 있었다.
--- p.183

“초등학교에도 있을 줄이야. 하긴, 그맘때라도 필요한 애들은 있겠지.”
“네, 네? 뭐가 필요한데요?”
“이거 말이야. 신기동력. 구세주 기계.”
무슨 기계라고? 농담하는 건가 싶었는데, 책상에 놓인공작물을 가리키는 수빈 선배의 얼굴에선 농담기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니 전혀 예상치 못한 단어 앞에서 나는 더더욱 어리둥절할 수밖에. 오랜 수수께끼가 풀리기는커녕 이제는 머릿속이 완전히 뒤죽박죽이었다.
내 얼굴에 떠오른 당혹감을 읽었는지 선배는, 도로 노트북 쪽으로 시선을 돌리기 직전에, 아주 짧게 덧붙였다.
“방과 후에 시간 되지?”
--- p.225

15년 전 참사의 원인은 석촌호수 일대의 기존 놀이공원을 최고 성능의 가상현실 테마파크로 업그레이드하겠단 거대 기업의 과욕이었다. 원하는 성능을 실현하려면 멀리 떨어진 위성이 아닌 지상에서 데이터를 처리할 필요가 있었고, 기업은 이를 위해 각종 규제를 어겨가면서까지 놀이공원 바로 옆의 초고층 탑 전체를 사이버스페이스 연산장치로 개조했다. 그리하여 대망의 개장 당일, 역대 최다 입장객이 기다리는 가운데 ‘탑’은 당당히 가동을 시작했고…. 다음 순간 파괴적인 전산 돌풍의 형태로 폭발해 놀이공원 전체를 먹어치웠다. 예상 이상의 인원수를 처리하려던 시스템이 탑의 부피 이상으로 폭주한 결과였다.
--- p.260

박사의 지적은 장난스럽지만 정확하다. 니알루켐바에 과학자들이 모이는 이유는 결코 침팬지를 연구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침팬지는 거울이다. 인간은 침팬지들의 전쟁으로부터 스스로의 피투성이 역사를 읽는다. 침팬지들의 폭력을 분석함으로써 인간의 폭력이 발생하는 원인을 알아내고 그 해결책을 통찰하려 한다. 컴퓨터 모델링으로 무리 사이의 갈등이 진화적으로 최적화된 선택일 수 있는지 알아보려는 진화생물학자도, 이곳 침팬지들의 표정과 몸짓 데이터를 수집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동물행동학자도 마찬가지다. 각자 자신만의 방법으로 침팬지로부터 인간을 추출해낸다.

생화학자인 나의 작업 또한 동일한 맥락 위에 있다. 죽은 아기 침팬지의 몸속에 있던 분자들이 나의 체내에도 똑같이 존재한다. 인간의 감정만이 고유하고도 신성한 방식으로 동작하리라는 환상은 생화학의 불길한 가마솥 속으로 녹아 사라진 지 오래다.
--- p.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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