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건축을 만드는 일을 하거나, 건축을 읽는 일을 하거나, 건축이 발전하기를 바라는 사람들끼리 있을 때는 가끔 이야기해도 좋을 것 같다. 핑계 대는 습관을 버리기 위해서, 온통 윤리적인 척하지 않기 위해서, 건축의 다양성에 아무런 제약도 만들지 않기 위해서,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위해서.
--- p.34, 「김남건축, 「그러기로 하는 이유」」중에서
건축의 내재적 가치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지만, 김남건축은 그 땅 위에 투영된 외재적 조건들과의 ‘조용한 대화’를 멈추지 않는다. (중략) 각 부분들은 각자의 존재이유에 충실하다. 그리고 전체는 부분들을 따를 뿐이다. 형태가 알을 깨고 태어난다. 새로운 아름다움은 그러한 바탕 위에서 가능할 수 있다고 믿는다.
--- p.82, 「남성택, 「건축의 내재적 가치와 외재적 조건」」중에서
그렇기에 무용한 관심사 안에서 공간 미학의 세계를 찾고 경험하기를 지속해간다. 우리는 하나씩 직접 보고 만지고 느끼며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쌓인 공간은 하나하나 우리의 감각 속에 각인되어 조금씩 의도하는 공간에 확신을 더해간다. 그 과정은 나에게 스스로 공간의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여전히 돌아다니고 두리번거리며 공간 미학의 조각을 사유해간다.
--- p.92, 「김영수, 「질서의 아름다움과 분위기」」중에서
김영수의 건축에는 과잉 디자인이 없다. 김영수는 으스대거나 값비싸게 치장한 듯한 허세를 담은, 자기 과시적이고 홍보를 위한 수단으로서 건축을 바라보지 않는다. 나르시시즘적 형태적 표현을 거부하는 대신 절제된 요소들을 질서 있게 구축하는 방식을 추구한다.
--- p.146, 「박진호, 「이성적 절제와 감성적 환희의 균형」」중에서
아지트 스튜디오의 이야기는 질기고도 느슨하게 방향성을 가지고 엮여가고 있다. 그리고 그 위에 자발적 혹은 우발적으로 생기는 여러 외부 자극들이 우리의 가능성과 능력을 훨씬 더 확장하고 증폭시켜준다. 그것이 우리가 지금까지의 이야기보다 앞으로의 이야기를 기대하며, 더 크게 나아갈 수 있는 이유이자 동력이다.
--- p.216, 「서자민, 「텍토닉, 확장」」중에서
아지트 스튜디오의 작업은 우리 엄마도 참 잘 이해할 만한 건축이라고 생각했다. 서자민이 글에서 굳이 작은따옴표를 붙여 표기하는 건축적 ‘태도’는 그들의 모든 작업에서 단순하리만큼 명확하다. 각 작업들은 그것이 처한 특정한 상황에 대해 건축가가 오랜 시간 고민하면서 서서히 무르익은 것이겠지만, 결국 어느 순간 간단한 명제로 표현된다.
--- p.220, 「양수인, 「태도를 잃지 않는 날것의 감동」」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