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던 중 회사에서 커리어 성장에 관한 세션을 진행했던 날이었다. 각자가 생각하는 ‘커리어의 열망점’이 무엇인지 글로 적어보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었다. 동료들이 하나둘씩 종이에 자신의 열망들을 채워나가고 있었다. CEO(최고경영자), CMO(최고마케팅책임자), CBO(최고브랜드책임자), COO(최고운영책임자)….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가장 높이 빛나는 자리를 향한 열망들이 뜨거웠다.
나는 과연 무엇을 열망하고 있는가? 나에게 던져진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나의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았다. 내가 무엇을 해왔고, 무엇을 잘했으며, 무엇을 할 때 가장 기뻤는지를 열거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들을 쭉 적어 내려가다 보니 조금씩 선명해져가는 열망점이 보였다. 그 많은 C 중에서 내가 적은 C는 이것이었다. “Cheerleader(치어리더).”
--- p.22~23, 「01. 나는 응원대장 올리부입니다」중에서
한창 인터뷰가 무르익었을 무렵, 면접관 한 분이 질문을 던졌다. “지금 회사에서 하고 계신 일을 영어로 이야기해주세요.” 순간 사고가 정지되었다. 머릿속이 백지가 된다는 것이 이런 기분일까. 하필 나는 당시 한국말로도 설명하기가 굉장히 복잡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맙소사. 이제는 머릿속이 새하얘지다 못해 투명해질 지경이었다. 심지어는 아주 쉬운 단어도 생각이 나지 않았고, 간신히 영어로 떠듬떠듬 말을 꺼내도 주어고 동사고 온통 엉망진창이 되어 한 마디도 온전하게 말을 끝맺지 못했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방금 전에 뱉었던 말도 안 되는 문장을 다시 시작하고, 하다 보니 또 말이 막혀 다시 시작하고, 또 다시 시작했다. 내가 설명해야 하는 이야기가 1부터 100까지라면, 나는 몇 분 동안 1번 문장에서 헤매고 있었다. 단어들을 되는대로 뱉었다가 다시 삼키고, 처음부터 다시, 처음부터 다시…. 누가 봐도 말도 안 되는 영어를, 그야말로 머릿속을 쥐어짜가며 뱉어내는 동안 나는 마음속으로 울며 소리쳤다. ‘제발 이제 됐다고 해주세요. 그만하고 가라고 해주세요.’
--- p.40~41, 「03. 내 생에 가장 굴욕스러웠던 40분」중에서
지나온 나의 시간을 지우고 무엇에 맞추어 다시 디자인해야 한다는 것일까.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그가 과거의 이력을 ‘망쳐서’가 아니라, 지나온 본인의 시간을 그렇게 ‘지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과거의 나의 모든 시간은 결국 오늘의 나를 이루는 시간이다. 오늘, 오늘, 오늘이 쌓여 내일의 내가 되는 것이다. 어제의 내가 없이 오늘의 내가 존재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결국 지금의 나를 존재하게 했던 그 시간들을 지우고 부정한다는 것은, 지금의 나의 어느 부분을 허물어 지우겠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실패처럼 보이는 시간들이 존재할 수 있다. 최고의 결과가 아니라고 해서 나의 최선의 선택과 과정들을 실패라고 단정짓고 지우지 말자. 나의 모든 어제와 오늘에 존재해 마땅한 이유를 부여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그렇게 존재의 이유를 주었던 어제와 오늘이 결국 내일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라 믿는다.
--- p.68~69, 「06. 가장 빛나는 실패」중에서
우리는 태어나서 조건 없는 응원을 받던 시절이 있다. 그저 잘 자고 일어났다고 박수받았고, 입꼬리 찡긋 올리며 웃기만 해도 잘했다고 칭찬을 받았고, 팔을 뻗어 무엇인가 하나 잡으려 하니 나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이 큰 소리로 화이팅을 외치며 응원을 해주었다. 그런 시절이 우리에게 있었다. 그러고는 어른이 되어가면서 점점 그런 응원의 시간들이 줄어든 것이 아닐까. 문득 내가 세상을 떠나게 되는 그날, 사람들에게서 이런 조건 없는 응원의 말들을 받고 떠난다면, 남겨질 나의 사람들에게 그 말들이, 그 마음들이 또다시 큰 힘이 되고 응원이 되어 그들을 살게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조건 없이 받은 응원의 마음이 무척 다정하고 따뜻했다고 감사를 전했다. 그리고 그 응원을 또 누군가에게도 나누겠다고 했다. 1년에 한 번쯤은 어떤 이유도 묻지 않는 이런 무조건적인 응원과 다정함을 우리 모두가 조금씩은 마땅히 받아도 되지 않을까. ‘더 큰 마음을 쓰는 어른이 되어야지. 편협하지 않고, 옳은 마음을 쓰는 어른이 되어야지. 응원하고 아끼는 마음을 아낌없이, 기꺼이 쓰는 어른이 되어야지.’ 나 스스로에게 이런 응원을 전하며 1년에 하루, 그저 무조건 응원하는 날을 또 벌여보아야지 하고 다짐한다.
--- p.77~78, 「07. 무조건 응원하는 날」중에서
비로소 진짜 팀장의 역할을 맡게 되었던 그때, 나는 무척 떨렸고, 두려웠고, 기대됐고, 망설여졌다. 새로운 팀, 새로운 사람들이었다. 해야 할 업무도 낯설었고, 함께하는 사람도 낯설었다.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어서 손이 키보드 위 허공에서 갈 길을 잃고 휘휘 젓고 있는 시간이 허다했다. 모니터 앞에서 ‘내가 지금 뭘 해야 하는 걸까?’ 하는 고민이 짙어질 무렵, 낯설었던 나의 팀원은 내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팀장님 생각은 어떠세요? 팀장님 의견을 듣고 싶어요. 먼저 알려주세요.” 팀원의 그 질문이 나는 무척 두려웠다. 겁이 덜컥 났다. 정답을 곧바로 자신 있게 제시하지 못하는 내가 부끄러웠다. 어떻게 이 상황을 모면할지에 대한 궁리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손에 땀이 났다. 팀원을 쳐다보지도, 제대로 답을 하지도 못한 채 못 들은 척 그 순간을 모면하고 있었다. 다음 날부터 출근하는 내내 팀원으로부터 또 질문을 받을까 봐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며칠을 그렇게 불편하고 어려운 마음으로 출근을 했다.
--- p.96~97, 「11. 초보 팀장에서 진짜 팀장으로」중에서
나의 응원은 그들의 답을 알아차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들의 마음을 잘 관찰하는 것이 응원의 시작이다. 우리는 매 순간 고민하고 선택한다. 그 선택을 하는 데 있어 종종 자신의 마음이 잘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누군가 그 마음을 알아채고 대신 답을 해주면 그 마음이 더욱 선명해진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마음을 알아차리기 위해 온 마음을 다해 그들이 찾고자 하는 그 마음을 함께 들여다본다. 모든 순간에 선택의 답은 사실 내 안에 있다. 하지만 때때로 그 마음의 본질은 순간의 조급함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그 본질을 잊지 않도록 옆에서 툭 한 번 어깨를 두드려주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이 아닐까. 결국 그들 스스로가 가진 답을 꼭 쥐고 나아갈 수 있도록 조력하는 것, 그것이 그들의 질문 앞에 선 우리의 역할이다.
--- p.118, 「13. 본질을 일깨워주는 페이스메이커」중에서
자꾸만 잠만 주무시는 것이 이상해서 병원에 간 것뿐인데, 아빠의 몸에 암은 이미 폐와 간과 대장까지 전이가 되었다고 했다. 나는 망연자실했다. 그렇지만 절망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아빠와 다른 가족들까지 무너지지 않도록 우선 나부터 정신을 차려야 했다. 나는 최선을 다하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스스로를 흔들어 깨웠다. 때론 스스로의 최선이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 때가 있다. “아빠, 우리는 이제 서로 삶의 최선을 다하는 시간을 갖게 된 거야. 아빠가 우리에게 최선을 다해주었던 그 시간만큼 우리도 아빠에게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시간을 줘. 한 번만 더 최선을 다해줘.” 자꾸 이만하면 그저 되었다고, 입원도 수술도 하지 않겠다는 아빠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설득은 그것밖에 없었다. 그렇게 아빠는 우리를 위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최선을 다해주었다. 고통스러운 항암 치료를 견디는 아빠를 보며, 나는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아빠, 나도 최선을 다할 거야. 내 삶의 무엇도 포기하거나 망가뜨리지 않게 그렇게 매일매일 최선을 다해 해낼 거야.”
--- p.132~133, 「15. 인생의 전성기」중에서
팀원들에게 도움과 응원의 손길이 필요할 때, 그러나 팀장으로서 내가 매번 옆에 있어주지 못하는 그 무수한 작은 순간들을 그 친구가 채워주고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내가 가는 길을 잘 따라와주며 성장해나가는 팀원을 본다는 것이 팀장으로서 얼마나 감동인지도. 그가 세운 우선순위가 내가 판단한 우선순위보다 훨씬 값진 일이었다고 그 친구에게 이 모든 일들에 대해 고마움을 전하자 그가 말했다. “저는 올리부 님한테 그렇게 배웠으니까요.”
리더에게 가장 큰 칭송은 “그동안 당신에게 잘 배웠습니다. 당신을 따라가고 싶습니다”가 아닐까. 나의 역할은 그들보다 그저 한발 앞서 걸어주는 것이다. 진자리, 마른자리를 먼저 밟아보고 단단한 땅으로 이끌어줄 수 있는 사람. 뒤따라오는 친구들에게 “여기는 땅이 지니 조심해!” 하고 외쳐줄 수 있는 사람. 때로는 나를 따라오느라 질척거리는 땅을 밟고도 “그래도 저는 팀장님이 가는 그 길이 좋아요”라며 걸어오는 친구들을 보며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는다. 내딛는 한 발 한 발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말이다.
--- p.145~146, 「17. 더 좋은 어른이 되어야 하는 이유」중에서
어른의 성장은 애쓰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는다. 더 이상 키가 자라지 않는 어른이 되었다고 내가 완성형의 사람이 된 것도 아닌데. 그러니 무엇으로든 우리는 자라야 한다. 어제 몰랐던 것을 오늘 아는 것, 어제는 부족했던 내가 오늘 조금 채워지는 것, 그런 것이 우리의 성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이 지나 또다시 아이의 키를 재다가 그녀에게 속삭이며 답을 해주었다.
“엄마도 클게! 서현이가 매일매일 무럭무럭 키가 자라는 것처럼, 엄마는 매일매일 무럭무럭 마음으로 자랄게. 마음이 매일매일 커져서 어제보다 더 좋은 어른이 될게.” 그녀에게 한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는 매일 밤 자기 전 하루를 돌아보며 질문했다. 나는 오늘 자랐는가? 정말 아무것도 어제보다 나아진 것이 없는 그런 하루를 보낸 날이면 누웠다가도 벌떡 일어나 책을 집어 들었다. 그저 딱 한 장이라도 읽었다. 괴롭고 엉망인 날이면, 그 마음을 잘 다스리고 그 순간, 그런 마음조차도 잘 안고 편하게 잠들 수 있게 된 나를 칭찬했다. 내가 조금 자랐구나.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었구나 하는 마음이었다.
--- p.181~182, 「22.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어른이 될게」중에서
대회 첫날, 결선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나면 그날 밤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게 되는 나라 팀들을 발표한다. 그러고 나면 그날 밤을 또 지새워 다음 날의 라운드를 준비해야 했다. (…) 그런 치열한 시간들을 보내면서 나는 세계 각국의 학생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그곳에 있는 누구에게든 무척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라운드의 탈락 여부가 그들에게 전혀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어디에서든, 누구든 그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본인들의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그것이 어떻게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지를 이야기했다. 나는 그때마다 붙들려 그들의 이야기들을 듣고, 응원을 전하면서도 무척 의아했다. 탈락한 학생들이 대회장을 떠나지 않고 본인들의 프로젝트를 소개하느라 대회장 여기저기 어디든 프레젠테이션 무대가 되는 이 광경. 그중 한 팀에게 그 의아한 지점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너희들은 탈락을 했는데 왜 이렇게 계속 너희들의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있는 거니?”
“당신들이 그랬잖아요. 이것은 우리의 여정의 끝이 아니라, 우리의 시작이라고. 그러니 우리는 다시 시작하는 중인 거죠!”
--- p.229~230, 「30. 이것은 끝이 아닌, 여정의 시작」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