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를 하나 내 보겠습니다. 다음 빈칸에 들어갈 내용은 무엇일까요?
· 부모 된 사람의 가장 큰 어리석음은 자식을 ( )로 만들고자 함이다.
· 부모 된 사람의 가장 큰 지혜는 자신의 삶이 자식들의 ( )가 되게 하는 것이다.
전자에 들어갈 답은 무엇일까요? 최고? 1등? 꼭두각시? 어 떤 답도 여러분이 생각하는 답은 맞습니다. 하지만 저는 ‘자랑거 리’라는 단어를 넣어 보겠습니다. 후자에 들어갈 내용은 무엇일까 요? 본보기? 롤모델? 멘토? 거울? 그 어떤 답도 역시 다 맞습니다. 저는 후자의 빈칸에도 ‘자랑거리’라는 단어를 넣어 보겠습니다.
--- p.25~26
그래서 저는 부모를 평가하는 아주 쉽고 빠르고 정확하며 의 미 있는 방법 하나를 생각했습니다. 가르쳐 드릴까요? 간단합니다. 당장 오늘 중에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가 하교하는 시간, 돌아오는 길목 어딘가에서 기다리다가 우연히 만난 것처럼 ‘짠!’ 하고 나타나 보십시오. 이때 아이들의 반응이 바로 가장 정확한 평가일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아주 반가워하며 “엄마! 아빠!” 하고 달려와 안긴다면, 그런 분은 슈퍼 등급인 S등급입니다. 달려와 안기지는 않지만 웃으며 인사한다면 A등급일 것 같습니다. 그런데 부모를 알아본 순간 아이 얼굴이 일그러지며 “엄마, 거기 왜 서 있어?” 또는 “아빠, 거기서 뭐 해?”라며 마지못해 인사를 한다면 B등급쯤 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마지막 C등급은 무엇일까요? 아이가 딴 길 로 돌아가거나 부모를 못 본 척 지나간다면 C등급입니다.
--- p.26~27
학교에서 학생들이 저를 이렇게 불렀습니다. ‘양카리스마’ 무슨 뜻일까요? 양쪽에 칼을 든 여자, ‘양칼있으마’가 ‘양카리스마’로 바뀐 거라고 합니다. 이렇게 무서운 엄마였기에 두 아이들은 중학교 시절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아들은 고1을 잘 넘긴 후 고2가 되어서는 뭔가 삐죽삐죽 나오려고 했지만, 남편과 연합하여 평정을 잘했습니다. 드디어 고3이 되었습니다. 고3 3월에는 학생들이 매우 부담스러워하는 모의고사가 있지요. 아들은 그 모의고사에서 전국 상위 몇 퍼센트 안에 들었습니다. 물론 내신도 1등급을 유지하고 있었고요. 이대로 가면 명문대 입학은 따 놓은 당상이었습니다. 저는 수능 보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수능이 끝나면 무엇이 걸릴까요? 맞습니다. 자랑스러운 우리 아들의 이름이 쓰인 현수막이 학교 앞에 걸리겠지요? 저는 그날을 상상하고 있었습니다.
--- p.40
저는 ‘얼른! 빨리! 바빠!’ 이 3종 세트가 아니고는 말을 하지 못합니다. 눈도 마주쳐 주지 않는 엄마, 얼른 말하라고 다그치는 엄마. 그런 엄마 뒤통수에 대고 아들이 말합니다.
“도저히 학교 못 다니겠어요. 저 학교 그만두고 나중에 검정 고시 보면 안 돼요?”
아들 입에서 나온 말은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때가 고 3, 4월 말이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아들에게 여러분은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그래, 인생 긴데 학교 그만두고 가고 싶을 때 가지 뭐, 그렇게 말하겠습니까? 제가 처음 한 말은 무엇이었을까요?
“너 미쳤어? 네가 다니는 데가 유치원인 줄 알아? 전국 고3 학생들한테 설문 조사해 봐라. 안 힘든 학생이 어디 있는지. 그래서 고3병이라 하는 거야. 너 정신 똑바로 차려. 지금이 제일 중요 한 때야. 지금 놓치면 공든 탑 다 무너져. 몇 달 안 남았어. 조금만 더 참아.”
그날 저는 정신 차리라고 30분 이상 야단쳤습니다.
--- p.42
한마디로 폭탄 맞은 방이었습니다. 갈기갈기 찢긴 옷과 책이 방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그 튼튼한 장롱 문도 엉망으로 부서져 있었습니다. 침대 옆에 앉아 울고 있는 딸아이의 머리는 온통 산 발이고, 두 손은 피투성이였습니다. 그야말로 광란의 현장이 이 런 것이겠구나, 싶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분노에 찬 저는 ‘아이를 어떻게 잡아야 잘 잡았다고 소문이 날까?’ 생각하며 미친 사람처 럼 아이 방문을 두들겨 댔습니다. 그런데 그때 섬광처럼 생각 하나가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이러다 저 아이가 죽으면 어떡하지? 혹시 자살이라도 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아이가 죽고 난 후의 제 삶을 생각하니 그것은 사는 게 아니었습니다. 정신이 번뜩 났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무서움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아이를 혼낼 생각을 접고 제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날 밤 아이는 아이 방에서, 저는 제 방에서 펑펑 울었습니다. 그리고 밤새 생각에 잠겼습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걸까?
--- p.53
저는 30분은커녕 3분도 대화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제가 우리 집 아이들에게 한 말은 거의 이런 것이었습니다. “숙제했니? 일기 썼니? 학원 갔다 왔니? 문제집 다 풀었어? 책 다 읽었어? 시험 잘 봤어?” 늘 확인하고 다그치고 지시하고 통제하는 말뿐이었습니다. 전 한 번도 아이 마음을 헤아려 준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딸아이의 이해하지 못할 충격적인 그 행동을 본 날, 처음으로 ‘우리 아이 들이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같은 엄마 아빠 밑에서 얼마나 무섭고 불안하게 쫓기듯 살았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나는 부모가 아니었구나. 관리자이고 감시자이고 통치자였구나, 그것도 아주 무섭고 나쁜!
--- p.61~62
저희 딸은 지금도 정말 예민합니다. 제가 어린 시절 인정, 존중, 지지, 격려, 칭찬에 매우 인색했기 때문에 그렇게 됐다는 것을 너무나 절절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와타나베 준이치의 『나는 둔 감하게 살기로 했다』라는 베스트셀러가 있습니다. 둔한 사람이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행복한 삶을 산다는 것이 이 책의 요지입니다. 둔한 사람은 예민하지 않은 사람, 즉 무던한 사람, 어떤 자극 이 와도 빨리 화를 내지 않고 마음이 넉넉하고 포용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사람은 바로 자존감이 높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누군가가 상처를 주어도 그 상처 때문에 힘들 어 하지 않고 시련과 어려움이 와도 잘 극복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존심을 키워 주기보다는 자존감을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할 수 있습니다. 그 자존감을 키워 주기 위해서 는 인정, 존중, 지지, 격려, 칭찬이 생활화 되어야 합니다.
--- p.78~79
이스라엘 교육과 우리나라 교육의 아주 큰 차이점 중 하나가 ‘무엇에 중점을 두느냐’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잘하는 것을 더 잘하게 하는 교육을 합니다. 이것을 ‘진로 교육’이라 합니다. 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못하는 것을 더 잘하게 만드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이것을 ‘학습 교육’이라고 합니다. 잘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진로 교육보다 못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학습 교육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다 보면 나중에는 본인이 무엇을 잘 하는지조차 잊어버리게 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너희는 참 이상하다. 신이 준 능력을 계발하기에도 바쁜 세상인데, 신도 주지 않은 능력을 인간이 계발하겠다고 돈 들이고 시간 들이고 아이 잡고 본인 불행하고 그런 짓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합니다.
--- p.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