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나는 다시 브뤼셀의 거의 텅 빈 넓은 아파트를 바라본다. 통상 가운을 입고 있는 여자 한 명만 있는 그곳을. 얼마 전에 남편을 잃은 여자.
이상한 건 그녀가 가끔 외출을 하고, 길을 걷고, 트램을 기다리는데도 이 여자가 밖에 있는 걸 내가 못 본다는 거다.
내가 그녀를 볼 때면 그녀는 주로 통화를 하면서 텔레비전 앞 소파에 누워 있는데, 때로는 그 앞에 신문이 놓여 있기도 하다. 전화 통화를 할 때 그녀의 목소리는 크고 쾌활한데, 그 쾌활함은 종종 꾸민 듯 들리지만 가끔은 진짜 같기도 하다.
--- p.11
멀리서 사는 그녀의 사촌에게 연락하는 건 메닐몽탕에 사는 딸뿐이다. 딸은 여행 중에 그곳에 가기도 하는데, 돌아와서 소식을 전해 주곤 한다. 그녀의 사촌도 먼 곳에 사는 가까운 가족에 속한다. 메닐몽탕에 사는 딸 덕분에 그녀는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알고 그렇게 모종의 연락을 유지하지만, 거기서 일어나는 일에 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만약 그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그녀가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던 모든 것에 관해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녀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에 관해 생각하지 않는 데 능한데, 적어도 그러려고 애쓰고, 애쓰는 건 정말이지 피곤한 일이다. 그 바람에 그녀는 항상 아주 피곤하다. 만약 그녀가 생각해야 할 모든 것에 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면, 거기에 너무 전념하는 바람에 더 이상 텔레비전을 보지 못하는 건 물론 통화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 pp.13~14
이 모든 걸 떠올릴 때면 이건 불행이라고 생각하고 그게 다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건 그게 다가 아니다.
--- p.19
메닐몽탕에 사는 딸은 아니지만 나도 그 애가 한 말을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똑같이 하고 싶은데 그냥 머릿속으로만 할 게 아니라 정말로 내뱉고 싶지만 만약 내가 말을 하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을 테니까 하지 않는 편이 낫고 특히 메닐몽탕에 사는 내 딸이 있을 때는 그러는 편이 낫다 아니면 그 애가 무슨 생각을 할지 알게 될 거고 그 애도 그걸 알아차릴 텐데 어쩌면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그 애는 이미 알고 있을 수 있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이지만 그래도 다 아는 건 아니니까. 그 애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는 알지 못하고, 나도 그 애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부 다 알 수는 없지만, 그만큼 아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 p.26
그이는 밤에 잠을 자긴 했지만 이른 새벽에 네 시면 눈을 떴고, 나는 그이가 깬 걸 곧 알아차리고는 일어나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는데 그이의 눈에 눈물이 맺힌 걸 봤고 그이는 아무 말 없었고 내가 무슨 일이 있네라고 말하면 그이는 무언가를 말하려고 애썼고 비록 그이의 말이 점점 더 어눌해지긴 했지만 나는 그이가 나 곧 죽어와 비슷한 말을 했다고 알아차렸는데 그이는 이 말을 프랑스어로 하지 않았고 우리말로 했는데 이 말에 내 가슴이 저며 왔고 나는 그이에게 그런 말 하지 마 나한테 그런 말 하지 마요라고 했다, 나는 또 아니야라고도 했는데 그이는 나를 믿지 않는 눈으로 쳐다봤다. 그러고 나서 나는 진통제를 찾으러 갔고 메닐몽탕에 사는 딸이 일러 준 대로 효과를 빨리 보기 위해서 그의 혀 아래에 진통제를 뒀는데 그러면 그이는 가끔 다시 잠이 들었고 안 그럴 때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눈물을 덜 흘렸고 내게 더 이상 그런 말을 하지 않았는데 어쨌거나 그 후 나는 잠이 깼고 아침이면 내 안색은 다시 안 좋았다.
--- pp.39~40
그이의 다른 딸은 얼굴이 둥글지는 않지만 그래도 눈이랑 손이 그이를 닮았고 뭐 그게 가까운 친척들이 하는 말이긴 했는데 그들은 어디서든 항상 닮은 점을 찾으려 했고 심지어 개와 견주 사이에서도 닮은 점을 찾으려 들었다 그이는 어쨌거나 견주와 개에 관한 거라면, 견주가 개를 닮게 되는 건지 그 반대인지 알지는 못했지만, 닮긴 닮았다는 걸 알았고 메닐몽탕에 사는 딸이 자기 개를 닮게 될지 아니면 그 반대로 개가 그 애를 닮게 될지 상상해 보곤 했다.
--- p.43
얼마 안 있어 내 딸은 다시 일하러 가 봐야 했다. 그 애가 다시 떠났을 때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애의 파란 눈이 거의 하얘진 걸 봤는데 지금은 일하러 갈 때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 애는 밤에도 부엌 식탁에 앉아서 노트북을 켜고 일을 했고 나는 자면서도 그걸 느낄 수 있었는데 내 큰딸은 잠을 충분히 자지 않으면 생각이 많아지고 그걸 멈출 방법이 없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가끔 밤중에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나면 그 애의 얼굴이 컴퓨터 화면에 가까이 있는 게 보였고 그 애의 파란 눈이 하얘져 있었다. 어느 날 밤 나는 그 애 곁에 다가갔지만, 그 애는 고개를 들지 않았고 내가 마침내 그 애의 어깨에 손을 얹자, 고개를 들고 오늘 밤은 정말 고요하네라고 했다. 그래 고요하네. 다시 잠자리에 들고 싶지가 않아서 그 애 맞은편 식탁에 앉았고 딸이 일하는 걸 쳐다봤다. 얼마가 지났을까 그 애는 낮은 목소리로 거의 아침인데 같이 아침 먹을까요라고 물었다. 우리는 부엌으로 가서 둘이 함께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부엌 창문으로 정원을 내려봤다. 정원은 꽁꽁 얼어 있었고 우리 둘이서만 아침을 먹은 게 정말 오랜만이었는데 나는 버터 바른 빵 한 조각을 다 먹었고 별 탈 없이 소화했는데 그때 그 애는 내게 엄마 말이 맞았어라고 했다 아빠가 잘생겨 보였어 입도 안 비뚤어져 있고 얼굴도 평온해 보이고 그런 뒤 또 말하길 이제 뭘 해야 하지.
이건 질문이 아니었고 답할 건 없었다.
--- pp.70~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