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읽고 싶은 책이 많지만 다 읽을 만큼 충분한 시간을 낼 수 없는 열혈 독자였기 때문에, 하루 중 일상적인 일에 낭비되는 시간, 출퇴근 시간, 건강 유지를 위해 쓰는 시간의 대부분을 잘 활용하고 싶었다. 마음은 바쁘지 않지만 손은 바쁜 상황에서는 오디오북이 이상적인 동반자다. … 이 연구를 활기 있게 만든 미학적 관심이 생긴 것은 한참 후였다. 말하는 문장과 인쇄된 문장은 정확히 어떤 관계인가? 책을 듣는 경험은 읽는 경험과 비교할 때 어떠한가? 책을 읽어주는 사람은 그 책을 받아들이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이런 이야기에 적합한 근접 청취법은 무엇인가? 음향 기술에 따라 생겨나는 새로운 형식의 가능성은 무엇인가?
--- p.14~15
독서는 어떤 매체에서든 잘되기도 하고 잘 안되기도 한다. 책을 들어본 내 경험과 시각장애인이든 시력이 정상인 사람이든 다른 사람들을 통해 알게 된 것을 조합해 보면, 스토리텔링은 눈으로 보는 것처럼 귀로도 한 글자 한 글자 몰입할 수 있게 한다. 비교해 보자면 우리는 인쇄물을 읽는 것이 더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엉성하고 산만하고 게으름에 빠질 수 있다. 철학자 데모크리토스는 온전히 생각에 집중하기 위해 스스로 장님이 되었다는 전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특히 오디오북을 운전, 조깅, 청소하면서 듣는 수동적이고 ‘덜 집중’하는 형식의 독서라고 비판하는데, 오히려 집중해서 들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 p.33~34
언론은 축음기가 완성되기 전부터 음향 녹음이 책에 미치는 충격에 대해 추정하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스』는 발명을 설명하기 위해서 멘로 공원에서 시연을 가지기 한 달 전에 믿기 힘든 비유를 활용했다. 신문에 따르면, 은박지에 말을 보관하는 것은 병에 와인을 보관하는 것과 비슷했다. 미래에 사용하기 위해 축음기가 소리를 “병 속에 넣는 것”이었다. 청중은 쿼트 병에 담긴 “병 속의 말”을 하나에 50센트에 살 수 있으며, 고상한 취향을 가진 사람은 “잘 갖춰진 말 창고”에서 손님에게 “산뜻한 맛의 ‘마크 트웨인’”을 대접할 수 있게 될 것이었다.
--- p.48~49
문학 비평가들은 녹음된 책의 가치에 대해 회의적이었고 인쇄 책과 비교해 작은 역할 정도로 격하시켰으나, 축음기를 처음 들은 사람들은 음향 녹음 기술이 문자 세상에 미칠 영향에 대단히 열광했다. 녹음된 문학에 대한 환상은 새로운 종류의 책이 제시한 가능성을 찬양함과 동시에 책 그 자체를 고유한 특성과 제약을 가진 매체로 여기고 관심을 가졌다. 기계적 형태의 독서에 대한 열정은 인쇄물에만 집중되었던 독서 경험의 한계를 보여준다. 축음기는 말로 된 글을 보존함으로써 그 모든 것을 바꿀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최소한 19세기 동안에는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다.
--- p.75~76
책을 듣는 것은 점자를 읽는 것보다 육체적 수고가 덜하다. 말하는 책은 손가락으로 읽는 데 고전했던 사람들, 다른 장애로 고통받았던 사람들, 장시간 책을 읽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한 대안으로 제시되었다. 육체노동자가 점자를 읽는 것은 결코 휴식을 취하는 것이 아니었다. 워싱턴에 사는 한 예비 청자는 “나는 점자를 빨리 읽지만 하루 일을 끝내고 점자책을 읽는 것이 너무 피곤하다. 이 새롭고 여유로운 방식으로 좋은 책을 즐길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가능성은 특히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점자를 사용한 사람들에게 매력적이었다.
--- p.93
1934년 미국 의회도서관은 시력을 잃은 사람들에게 읽을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세계 최초로 말하는 책 도서관을 설립했다. 성경, 셰익스피어, 베스트셀러 소설은 모두 전문 배우에 의해 축음기 레코드에 녹음되었다. 헬렌 켈러는 점자가 발명된 이후 장애인 문해력에 가장 의미 있는 진전으로서 말하는 책을 반긴 사람 중 하나였다. 첫 번째 녹음이 독자들에게 공개된 후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의 축하를 받았다. 전국 신문에서 보도했듯 말하는 책은 점자를 읽을 수 없거나 다른 사람에게 독서를 의존해야만 했던 미국의 13만 시각장애인들로 하여금 스스로 책을 읽게 해주었다. 언론은 거의 만장일치로 찬사를 보냈다.
--- p.139
도서에 대한 접근은 수천 명의 시각장애인 독자들(그리고 지금은 난독증 같은 또 다른 신체적 학습·독서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말하는 책 서비스에 여전히 의존하면서 논쟁을 일으키는 문제로 남아 있다. 하지만 논쟁은 도서의 질에서 양으로 옮겨갔다. 의회도서관은 어떤 방법으로든 자료 검열을 피하고 고객들이 무엇을 읽을지 스스로 결정하도록 했다. 이것은 소수의 전문가 그룹이 시각장애인들이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지 또는 어떤 책을 읽지 말아야 하는지를 결정했던 이전 시대와 결별한 것이다.
--- p.163
말하는 책 서비스는 전쟁에서 부상 당한 군인들에게 읽을거리를 제공하면서 소박하게 출발했지만 이후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다. 제2차 세계대전 말에 말하는 책 도서관은 1700명의 회원과 500종의 책을 보유했다. 2005년 1월에는 4만 명의 회원과 2만 종 이상의 장서를 보유했다. 이 서비스는 현재 하루에 1만 종의 책을 내보내고 있다. 도서에 대한 접근이 계속 문제가 되기는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돌아온 군인들이 겪은 상황에 비하면 극적으로 발전했다.
--- p.198
당시 캐드먼은 문학작품을 녹음한 최초의 회사는 아니었다. 하지만 대중에게 문학 레코드를 소개한 초기 회사 중 하나로서, 도서와 레코드 사이의 친밀감을 정립하는 역할을 맡았다. 캐드먼은 낭독 레코드가 고대의 낭독 전통의 부활인 동시에 20세기 기술 발전의 결과라고 청중을 설득했다. 음유시인이 그리스인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던 때를 환기시킨 것은 캐드먼이 전통 가치의 수호자이자 앞서 있는 선구자의 역할을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 p.239
고대의 이야기는 원래 구술 공연을 위해 만들어졌고, 정확한 목소리는 현대의 인쇄용으로 계획된 이야기 역시 더 풍부하게 즐길 수 있게 했다. 어떤 사람들은 여러 해 동안 읽기만 해온 책을 캐드먼의 레코드를 통해 작가의 음성으로 처음 듣게 되었다. 또 다른 사람들은 글 속의 숨은 깊이를 느끼게 하는 음성 재주를 사용하는 숙련된 연기자들의 낭독을 들었다. 캐드먼은 책을 보존해야 할 문화유산으로 보는 시각과 무언가 새로운 것으로 바꾸는 입장 사이에서 균형을 찾았다.
--- p.270
책은 지루한 도로에서 즐거운 오락거리가 되었다. 어떤 운전자들은 신경쇠약에 걸릴 지경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매년 3만 5000마일을 운전했던 한 남자는 BOT 테이프가 “이 기간에 나를 미치지 않게 했다”라고 말했다. 패서디나에서 센추리 시티까지 매일 운전하는 또 다른 출퇴근자는 이것 없이는 견딜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테이프 책은 여러 운전자로 하여금 도로 위의 분노를 피할 수 있게 했다. 코로나델마의 57세 판매원은 책을 듣고 있을 때 “출근 중임에 신경 쓰지 않게 되고 교통체증 때문에 좌절하지 않게 된다”라고 했다. 책을 듣는 것이 교통체증으로부터 운전자를 보호했다. 또 다른 출퇴근족은 책을 들을 수 있었으므로 더 이상 롱아일랜드 고속도로가 자신을 괴롭지 않았다고 했다.
--- p.285~286
오늘날 오더블은 다운로드 오디오북의 세계 최대 유통업체다. 그러나 이 회사가 창업했을 때에는 인터넷 다운로드가 출판의 미래라는 것이 전혀 확실치 않았다. 오더블(오더블워즈가 원래 이름이었다)은 성장하는 낭독 시장과 인터넷으로 생겨난 상업적 기회를 활용하기 위해 1995년 뉴저지에 설립되었다. 당시 디지털 음악의 온라인 유통이 이미 음악 소비의 패턴을 바꾸고 있었으며 가정용 컴퓨터를 가상 주크박스로 바꾸었다. 오더블의 웹사이트는 최초로 낭독 이야기 녹음을 고객의 컴퓨터에 다운로드받게 했다.
--- p.313
오디오북 출판에는 두 가지 줄기가 있다. 하나는 인쇄 책에 가급적 가깝게 접근하는 것, 다른 하나는 책을 뛰어넘으려는 것이다. 책보다는 다른 매체와 관련되어 있는 유명인 낭독자, 복수의 낭독자, 전 배역, 악보, 음향효과의 활용은 모두 오디오북의 독립을 의미한다. 이것에 주의하라. 두 종류의 제작 모두 ‘오디오북’이라는 이름에 잘 어울리긴 하지만 단독 낭독자와 할리우드식 전 배역 극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으므로 고객들은 조심스럽게 도서를 선택해야 한다. 우리는 경쟁 매체, 기술 발전, 변화하는 취향에 대응해서 이 형태가 진화하는 것―혁명은 아니더라도―을 목격하고 있다.
--- p.3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