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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누를 타고 파라다이스에 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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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7월 08일
쪽수, 무게, 크기 388쪽 | 456g | 133*203*20mm
ISBN13 9791170962069
ISBN10 1170962068

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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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같은 작가가 왜 SF소설 같은 것을 쓰려고 하는지.”
“SF소설이 뭐 어때서요.”
“뭐가 어떻다 할 것도 없어요. 그런 장르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편집자는 막걸리 잔에 스스로 술을 따라 마신 다음 말했다. “알다시피 과학은 발전할 만큼 발전했고, 공상으로만 그리던 것들은 대체로 현실이 됐어요. 도저히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건, 그게 가능할 법한 현실을 새로 만드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고요. 더 이상 상상의 여지라는 게 없잖아요. 이제는.”
“상상의 여지가 없다뇨. 세상에 무한한 것이 우주 말고 한 가지가 더 있다면 그건 인간의 상상력입니다. 상상의 여지라는 것은 사람이 만들어내기 나름이에요.” 소설가는 마침내 눈을 가늘게 뜨고 편집자를 마주 봤다.
--- 「프롤로그」 중에서

얼마간 정적이 이어졌다. 해설자는 시속 213킬로미터가 전세계 야구역사상 최고 구속인 동시에, 종전 기록을 약 40킬로미터 이상의 차이로 경신했다는 사실을 기계적으로 언급했다.
그제야 최면이 풀린 사람들은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라 가만히 소리를 죽였다. 그 경기장에 있던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었고, 야구 중계를 보고 있던 사람들 중 가장 둔해빠진 사람이라고 해도 이때는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알고 있던 무언가가 이 순간부로 영원히 바뀌었으며, 그러한 변화의 원인을 제공한것이 그 누구도 아닌 저들 스스로라는 사실을.
--- 「본헤드」 중에서

달의 뒷면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곳에는 바다도 없고, 강도 없고, 반세기전 루나리안들이 만든 부락이나 비밀기지는 더더욱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는 것보다 존재하는 것을 헤아리는 것이 훨씬 간단한 세계. 그곳은 아무것도 없기에 유혹적이다. 우리는 빛이 아닌 텅 빈 우주 속의 반짝임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남극점과 도달불능점, 사막의 오아시스와 초원 위에 솟은 세계수, 광활한 대양 속비밀의 보물섬, 그리고 달의 뒷면에 흐르는 강줄기. 아, 달의 뒷면에는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인간에게 있어 그것은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며, 여전히 최초의 가능성이 도사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 「문 리버」 중에서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실수할 수도 있고 그런 거다, 라는 표현은 궁극적인 대전환을 맞이했다. ‘사람이니까’는 더 이상 인간적인 무언가가 아니라, 의무적이고 집착적이며 기계가 해낼 수 없는 악착스러움을 내포하는 부사다. 사람이니까 그럴 만도 한 게 아니다. 사람이니까 그래야만 하는 것이다. 사람이니까.
죽을 때까지 배달 일을 계속한다고 해도, 사람은 도저히 백만 번의 배달 수를 채울 수 없다. 따라서 사람이 하는 일이라면, 실수라는 건 도저히 용납될 수가 없는 것이다. 하루에 수십만 번 물건을 옮기는 드론이라면 몰라도, 평생에 걸쳐 5만 번밖에 물건을 옮기지 못하는 인간은 실수해서는 안 된다. 한 번이라도 실수를 저지르는 인간은, 통계와 효율의 원칙에 따라 존재가치를 상실해 버리기 때문이다.
--- 「6시그마의 복음」 중에서

클래식 메이플스토리의 직업 시스템은 단순하다. 전사, 궁수, 마법사, 도적이라는 네 가지 직업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방식이다.
‘정말 최고잖아!’ 나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고민을 한다면 네 가지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것으로 하고 싶었다. 그건 먹고 싶은 맛의 아이스크림을 한 개 고르는 것과 똑같은 문제다.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수십 개의 맛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것보다는, 바닐라와 초코 그리고 딸기 중에서 택일하는 쪽이 훨씬 즐거운 고민이 된다. 그것은 혹시나 잘 모르고 틀린 결정을 내리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는 다른 고민이다. 좋은 것과 좋은 것, 그리고 좋은 것 중에서 지금 가장 끌리는 것을 찾는 과정이다. 세상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묻는 질문이다. 고통스럽지 않다.
--- 「단풍과 낙엽」 중에서

“옛날 사람들은 저렇게 많은 것들을 갖고 있었는데, 왜 지금은 다 사라지고 없는 거예요? 왜 여기에는 이런 신기한 물건들이 주인도 없이 마구 떨어져 있는 거고요?”
할아버지는 한동안 아무 대꾸도 없이 걷기만 했다. 그러다 아직도 생각이 정리가 안 됐다는 듯, “뭐라고 딱 잘라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구나.” 하고 말했다. “말하자면, 그건 욕심 때문이란다.”
“욕심이라고요?”
“그때 사람들은 가진 게 그렇게 많았음에도 전혀 만족하지 못했어. 더 새로운 것, 더 넓은 것, 더 대단한 것을 찾아서 끊임없이 자신들의 세계를 넓히고자 했지.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깨달아버린 거야.”
“어떤 것을요?”
“자신들의 세계가 더 넓어지려면, 다른 것들의 세계가 좁아져야만 한다는 걸.”
--- 「카누를 타고 파라다이스에 갈 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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