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에 있어 차경이란 경치를 빌리는 일종의 심상(心象)의 프레임인데, 그러한 심상의 프레임을 다시 카메라 렌즈의 프레임으로 포착한 것이니, 차경 사진은 이중의 프레임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것은 중첩된 풍경, 중경(重景)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이동춘의 차경 사진을 보면 좀 다른 점이 있다. 차경 사진이라고 하지만, 정작 차경이 아주 강조되지는 않는다. 차경이 주인공이라기보다는, 여전히 한옥의 내경(內景)이 주인공이고 외경(外景)으로서의 풍경은 조연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차경이 외경을 내부로 끌어들인 것인 만큼, 그것이 내경의 일부를 이룬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그러나 대부분 차경을 주제로 삼는 사진은 차경이 전경(前景)이 되고 내경은 배경(背景)으로서 조연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동춘의 사진에서는 차경 사진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주인공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한옥 구조의 일부로서 조연이라는 느낌을 준다.
- 최범 (미술평론가)
20세기 전반기를 대표하는 철학자들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독일 출신의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그가 홀로 13여 년에 걸쳐 파리 한복판에 자리한 아케이드 거리를 산책하며 파리의 원풍경과 민낯들을 관찰해갔던 일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벤야민처럼 이동춘도 지난 삼십여 년 동안 우리나라 방방곡곡 에 자리한 한옥 속을 거닐며 우리 가옥의 현재 모습과 원풍경을 탐색해오고 있다. 그리고 벤야민이 주목했던 프랑스의 사진가, 외젠 앗제(Eugene Atget), 그가 20세기 초반 볼거리의 거대도시로 날로 변모해가는 파리의 뒷골목과 밤거리를 돌아다니며 파리의 숨겨진 현재 모습과 원풍경을 붙잡아 사진으로 남겨 준 일 또한, 너무나도 유명한 사실이다. 이런 앗제와 같이 이동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는 전국의 옛 한옥들을 찾아다니며 지속되는 옛 한옥의 현재와 풍광을 채집해 빛의 그림으로 기록해오고 있다. 김영목(시인, 사회학자)은 이런 그를 가리켜 “과거의 현대성, 현대의 과거성을 인간을 위한 문화유산으로 만드는 이미지 인류학자”라 칭한다.
그런데 이동춘의 행보를 눈여겨보면, 이보다 우리 시대의 고현학(考現學)을 실험하는 이라 칭하는 게 더 어울릴 듯하다. 이유는 이동춘은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로 잘 알려진 박태원이 1930년대, 대학노트를 끼고 경성의 거리를 산책하며 실천한 고현학을 카메라 가방을 메고 전국 곳곳에 남겨진 옛 한옥 속을 누비며 그 안팎에서 벌어지는 지금의 풍광과 풍속을 관찰하고, 사진의 눈을 빌려 그것들을 기록하고 이야기하는 행보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런 이동춘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경성의 도시공간을 배회하며 관찰한 당대인들의 세상살이를 소설로 그려낸 박태원이 생각난다. 그런가 하면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는 파리의 구석구석을 떠돌아다니며 그 모습들을 사진으로 담아낸 앗제가 떠올려지고, 별안간 벤야민이 오버 랩되기도 한다. 그래서 그를 우리 시대에도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옛 한옥 속에서 옛 한옥의 현재라는 겉살과 원풍경이라는 속살들, 그리고 꿈틀거리는 미래의 기억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이미지 고현학자라 부르고 싶은 충동에 빠지고 만다. 그를 가리켜 벤야민과 앗제, 그리고 박태원과는 다른 시선과 방식으로 우리 시대의 고현학과 산책자의 철학을 탐색하고 시도하는 사진가라 칭하고 싶어지는 게다.
옛 한옥은 담장으로 안과 밖을 나누고, 그 안 세상을 인간의 형편과 편리에 맞춰 인공적으로 조성한 건축물이다. 옛 한옥의 안 세상은 그렇게 축조된 공간이었다. 허나 자연을 생각하고, 대하는 옛사람들의 태도와 원칙은 옛 한옥이 들어설 바깥 세상, 땅과 자리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자연과 건축물을 바라다보는 그네들의 사유 방식과 행동 철학은 담장으로 둘러친 옛 한옥의 안 세상에도 그대로 작동되었다.
이동춘의 말마따나 옛 한옥은 자연의 순리에 역행하지 않고 지어진 건축물이었다. 그래서 그곳에 옛사람들은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를 심을 때에도 자연의 이치를 헤아려 행동하였고, 햇볕과 비바람의 길목을 틀 때도 자연의 이치에 맞춰 궁리하였으며, 우물과 장독대를 마련할 때도 자연의 원리를 지키며 따랐다. 이처럼 옛사람들은 옛 한옥 안 세상 역시, 바깥 세상 못지않게 자이 끊임없이 소식하고 재생하는 장소로 자리하게끔 하는 많은 정성과 노력을 보여주었다.
이동춘은 그 노력과 정성의 흔적들을 찾아내 사진으로 또렷이 되비쳐준다. 그의 사진에 담긴 대구 [남평 문씨 본리 세거지]의 화사한 얼굴을 담장에 걸치고 내비친 능소화, 안동 군자리 [침락정] 기와지붕 위를 뒤덮듯 활짝 노랗게 핀 산수유꽃, 이 모두는 단순히 심어 기른 꽃과 나무가 아니었다. 그것들은 꽃과 나무의 생리와 습성은 물론 그것들이 놓일 자리와 터를 요모조모 따져가며 고른 나무들이었고 꽃이었다. 햇볕이 잘 드는 안채 뒷마당에 자리 잡은 영광 [매간당 고택]의 장독대 역시, 옛사람들이 자연의 이치와 원리에 따라 궁리해낸 결과였음을 이동춘의 사진은 생생히 전해주고 있다. 그렇게 옛사람들은 옛 한옥 안 세상에서도 자연과 공존하며 삶의 지혜와 방법을 터득하고, 교감하며 살아갔던 게다. 이뿐 아니라 옛사람들이 옛 한옥 안 세상에 베풀어놓은 창과 문, 대문과 담장, 기둥과 벽체 같은 장치와 얼개들은 인간 생활에 도움이 되는 기능과 쓰임에만 봉사하지 않았다.
- 엄광현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