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은 산지와 바다를 모두 보유한 영남권 최대 도시이며, 북항 재개발 단지는 근현대 해양 산업의 발전에 따라 기존 항구를 메우고 해양 문화 지구로 거듭나고자 하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설계팀은 부산 해안, 그리고 매립지라는 대지의 특성을 읽고자 지형(topology)과 맥락(context)을 면밀히 살폈는데, 시대에 걸쳐 도시와 대지가 단면적으로 변화했음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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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지역사를 조사하던 중 ‘부산에서 바다를 보러 갈 만한 장소는 잘 없는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왔었어요. 부산은 6.25 전쟁 이후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산지에 주거가 조성되고, 생업을 위한 산업 시설은 해안가에 형성되었어요. 그러다 보니 바닷가를 영유하기보다 활용하는 프로그램이 많아졌죠. (…) 실제로 해변에서 바다를 향유할 만한 시설은 극히 드물었고, 그 드문 경우조차도 모두 자본을 보유한 기업과 개인이 차지하고 있던 게 현실이었죠. 그래서 시민들에게 ‘열려’ 있는 바다의 희소성이 매우 높다는 결론에 이르렀어요. (오정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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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외 답사 분석 내용과 추가 프로그램 결정에 따라 수정된 설계 대안으로, 2019년 4월 25일 중간보고회가 진행됐다. 보고회에서는 프로젝트의 그간 진행 상황 및 과업 수행에 관한 리뷰, 국외 답사 결과 및 분석 내용 보고, 이에 따라 발전시킨 건축 계획안 세부가 보고되었다.
중간 보고 당시 설계안은 현상 설계 당시 확립된 설계 콘셉트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오페라 하우스와 조응하는 테라스 형태의 기능 시설, 그리고 연안여객터미널과 부산역 등의 구도심에 공업적인 입면으로 대응하는 마리나 기본 시설로 크게 나뉘는 모습이다. 여기에 수변 카페가 도입된 요트 파빌리온이 별동으로 계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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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와서 모아보니 굉장히 재밌더라고요. 시설 규모 순으로 나열해 보니 제일 작은 네덜란드 마리나(WSV DE Spiegel)와 제일 큰 모나코 마리나(Yacht Club de Monaco), 두 곳의 유사점이 눈에 들어왔어요. 특화 프로그램이 경쟁력을 크게 갖추고 있고, 기능 시설 편의성이 높은 곳들이죠. 무엇보다 주목했던 건 두 마리나 모두 본인들의 특화 프로그램을 설명할 때 ‘삶에 깊이 관여하는 마리나, 삶의 한 요소로서 요트 문화’를 공통으로 강조하던 모습이었어요. (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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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팀원들 스케줄 관리가 굉장히 잘됐었어요. 모형 제작 기간도 거의 한 달이었는데 그것만을 위한 일정표가 따로 있었을 정도였어요. A3로 출력된 일정표에 모형 크기 정하기, 다음 날 목업해 보기, 레이저 작업에 필요한 일들 사전에 준비하기, … 일련의 단계들을 박재완 님이 매일 확인해 주셨어요. ”오늘은 어디까지 했니? 1층 했니?” (일동 웃음) 모형 제작도 그 정도로 촘촘히 관리해 주셨으니 가능했던 거예요. (오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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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AI에게 ‘화가가 그린 작품처럼 그려 달라’고 명령하려면, 그걸 명령하는 사람부터 화가만큼의 지식이나 경험, 구도와 색상에 대한 구상력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구조 프로그램을 다루는 일도 이와 마찬가지다. 아무리 프로그램이 발달해도 다름 아닌 구조를 설계한 사람이 그 프로그램을 제어하고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스쿠버 풀도 해석 프로그램만으로 설계해서는 절대 완벽한 결과가 나올 수 없다. 모든 방향의 수압과 하중에 대한 해석과 경험을 프로그램 결과에 첨가해야 구현이 되는 것이다. (김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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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면이나 시공에 미스가 생겨도 설계사, 시공사, CM단 모두가 ‘어떻게 잘 해결해 볼까’에 집중하며 회의를 통해 해결하였다. 도면상에서도 어려운 부분이 많았는데 우리 현장은 이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하신다는 게 느껴졌다. 시공 상세 도면을 펴놓고 몇 주 간의 회의 끝에 답을 찾기도 했고, 주변 다른 현장에 가서 시공 부분을 확인하는 등의 해결 방식을 찾아 나간 덕분에 현장이 끝날 때까지도 기억에 오래 남은 것 같다. (이수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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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관계 주체들 서로가 자신의 일처럼 헌신하면서도, 자기 주장만 내세우지 않고 상대가 제안하는 바를 충분히 수용하면서 합리적으로 결과를 도출한 덕분이다. 우리가 설계사에 변경 요청을 하면 설계사도 상당 부분 수용해 주었고, 반대로 설계사에서 요청이 올 때면 우리도 가능한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서 무조건 반영하고자 노력했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서로 믿고 신뢰하였기에 이렇게 성과를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박동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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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성을 이루는 핵심 방법은 매개다. 공간적 측면과 장소의 측면은 물론 다루어야 하지만 이를 뛰어넘어야 한다. 앞서 상징의 예를 들면 제한되지 않은 상징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 다만 조건이 필요하다. 여기서 상징은 그대로 쓰면 안 된다. 신은 빛으로, 물고기의 움직임은 물로, 자동차의 움직임은 공기나 소리로 ‘매개-변형’되듯, 그 의미의 차원에서 다른 ‘매개-매체’를 경유하여 공간적으로 확장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표현에서 매개로 전환된다. 그리고 시작에서는 상관 없지만 매개 단계에서 땅은 삭제되어야 한다. 땅을 무시하는 ‘나쁜 건축가’가 되는 것이다. (임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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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 발주 프로젝트의 경우 현상 설계 당선 여부는 설계안의 질적인 부분보다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에 기반하여 결정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게 사실이에요. 확고한 윤리 경영에 바탕을 둔 우리 회사는 이 부분에서 약점을 가질 수밖에 없고, 따라서 당선 확률이 극히 낮은 공공 프로젝트에 대한 참여가 부담이 될 수밖에 없어요. 전상우 님이 본부장으로 계실 때 마리나 현상 설계에 과감히 참여 결정을 했고, 다행히 당선이 되어 정림의 최근 몇 안 되는 공공 프로젝트 중 하나가 되었죠. 공공 프로젝트에서 요구되는 수많은 보고와 심의 및 설계 변경으로 작품성 이전에 수익성을 찾기가 어려울 수 있었으나, 북항 마리나는 다행히 그 균형을 잘 잡았던 프로젝트라고 생각해요. (박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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