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2월, 제이슨이 병원에 입원했다. 지금껏 그나마 호흡을 가능하게 해 주었던 불완전한 심장 기관에 좀더 산소를 유입시킬 수 있도록 통로를 넓히는 위험한 수술이 진행되었다. 수술은 성공하지 못했다. 심장마비가 온 아이는 온갖 약물에 의존한 채 몇 달 동안 병원에서 서서히 죽어 가다 1971년 4월 21일 하늘나라로 떠났다. 제이슨이 세상을 떠나자 내 몸의 가장 소중한 부분이 아이와 함께 죽어 버린 것 같았다. (생략)
또다시 임신을 한다는 것이 무서웠던 나는 입양 절차를 알아보았다. 1973년 12월, 3개월 된 아기 맥스가 우리 품에 안겼다. 입양기관에서 보내온 의료기록에는 건강에 문제가 없으며 발육도 정상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과 달랐다. 심각한 장애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검사가 진행되는 며칠 동안, 우리는 또 한 번 악몽 같은 시간을 겪어야 했다. 소아 신경과 의사는 자폐아가 될 가능성이 있으니 아이의 양육을 포기하라고 충고했다. 맥스가 문제를 극복하고 정상적으로 자랄 수 있을지는 5년이 지나야 알 수 있었다.
--- p.20~23
안도감, 한순간의 평온… 텃밭에서 나는 물음을 던졌고 대답에 귀를 기울였고 해답을 었었다. 분명하고도 직접적으로. 어디에서? 혼란스러운 마음과 격정의 공간에서 날아온 것은 확실히 아니었다. 무작정 밀어 버리거나 꽉 움켜쥐거나 집착하지 않고 조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내 눈앞에 또 어떤 것들이 펼쳐질까?
채소밭에서 심신을 위한 영양분을 해답으로 얻은 순간 나는 한 가지 약속을 했다. 딱히 목적이 없더라도 규칙적으로 채소밭을 찾겠다고. 가서 가만히 있겠다고. 묵묵히 지켜보며 세심히 돌보겠노라고. 메모를 해 두겠다고. 그게 어떤 내용일지는 알 수 없었다.
--- p.78
감나무에 단풍이 들기 시작해 잎이 노랗고 주황색으로 변하더니 드디어 앙상한 가지 끝에 바싹 마른 갈색 꼭지를 모자처럼 쓰고 끝이 뾰족한 하트처럼 생긴 예쁜 주황색 감만 남겨 둔 채로 잎이 모두 떨어졌다. 나는 이미 단단한 감을 몇 개 따서 종이 봉지에 담고 숙성을 도와줄 사과 한 개와 함께 넣어 보관해 두었다. 그렇게 인위적으로 익힌 감은 가게에서 파는 감보다 주름도 적고 훨씬 달지만 나무에서 완벽하게 익은 과일의 맛에 비하면 상대도 안 된다. 감은 모든 식물을 고사시키는 서리를 맞고 난 다음에야 단맛이 높아지고 열대 햇빛을 닮은 관능적인 육질이 살아난다.
만일 모든 자연에 같은 원칙이 적용된다면 폭풍이나 된서리 같은 고통은 달콤하고 소중한 인생을 음미하기 위한 기폭제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흐뭇하게 점치고 있다.
--- p.120~121
제이슨의 21주기에 나는 또다시 아들에게 편지를 썼다.
“농장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와 바람소리 말고는 참 조용하구나. 집 앞까지 차를 몰고 올라가서 차에서 내린 나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단다. 너의 나무가 죽어 누군가 베어 버린 모양이야. 밑동 옆쪽에서 자라난 새 가지는 아직 남아 있었지만 접목선 아래에서 뻗어 나온 거라 꽃은 피지 않았더라. 엄마가 가져간 장미는 벌써 벌어지기 시작했고 뱀무꽃은 시들고 있었으니 생동감 넘치는 꽃의 향연은 아마 잠시 동안에 불과할 거야. 그래도 엄마는 순간의 풍요로움을 너에게 주고 싶었단다. 누가 되었든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잖니? 인생은 끊임없이 보듬어 안고 또 떠나보내는 거란다. 잘 가거라, 내아들.
--- p.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