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그 긴 세월 동안 엘시아는 리리엔을 지켜 왔다. 마을 가득한 괴물로부터, 스위티아로부터, 그리고 엘시아 자신으로부터.
그동안 엘시아는 꽤 잘해 냈다. 그녀가 타고난 괴물의 본능을 억누르며 리리엔을 무사히 지켰다. 엘시아는 자신이 앞으로도 리리엔과 함께 그럭저럭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리라 믿었다.
그러니까, 괴물 토벌대가 마을로 쳐들어오기 전까지는.
엘시아는 지금 자신이 죽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이것이 리리엔을 볼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이라는 것 또한.
지금껏 기른 정 때문일까. 엘시아는 자신이 마침내 죽음을 맞이하게 되리라는 사실보다, 이제 더는 리리엔을 품에 안을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 더욱 괴로웠다.
자신을 유독 잘 따랐던 리리엔. 자신을 정말 친언니라 여기고,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자신을 사랑해 주었던 리리엔. 스위티아에게서는 결코 받을 수 없었던 사랑을 준 리리엔.
“진실로 끔찍한 모습이군.”
남자가 자신을 보고 뭐라 지껄이던 엘시아는 개의치 않았다. 잘려 나간 팔, 다리, 꿰뚫린 가슴께에서 흘러나오는 피 또한 개의치 않았다. 엘시아는 다만 리리엔의 잠든 얼굴을 뇌리에 새기기라도 할 것처럼 집요하게 주시했다. 지금 엘시아에게 중요한 건 조금이라도 더 오래 리리엔의 모습을 눈에 담는 일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졌다. 엘시아는 더 이상 버티고 있기가 힘들었다.
“……다, 다행…….”
미처 끝맺지 못한 엘시아의 말에 남자의 낯이 굳어졌으나, 끝내 눈을 감아 버린 엘시아는 그 모습을 목격하지 못하였다.
이제라도 리리엔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어 다행이다. 멍하니 생각하며 엘시아는 먹먹하게 멀어지는 의식에 몸을 내맡겼다.
그러나 다시 눈을 떴을 때.
“엘시아, 네 동생이란다.”
엘시아는 무슨 이유에선지 과거로 돌아와 있었다.
“앞으로 네가 잘 돌봐 줘야 한다. 네 하나뿐인 동생이니까. 알겠니?”
엘시아를 비롯한 괴물들이 몰살당하고 마을이 죄 불타 버리게 된 이유. 제국의 살육귀, 레오디안 로켄페데스 대공의 유일한 혈육, 리리엔 로켄페데스가 괴물의 마을로 납치당해 왔던 때로.
(중략)
“네 이름을 기억하고 있나?”
한참을 말없이 목걸이를 주시하고 있던 레오디안이 마침내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의 시선은 곧장 리리엔에게로 향했고, 리리엔은 갑작스러운 그의 물음에 흠칫 어깨를 굳혔다.
리리엔은 마치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는 것처럼 동그래진 눈으로 슬쩍 엘시아를 올려다보았다. 그런 리리엔을 향해, 엘시아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이윽고 리리엔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리리엔이요.”
리리엔이 영 내키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엘시아는 리리엔을 칭찬하듯 어깨를 도닥였다. 리리엔이 기다렸다는 듯 엘시아의 품을 파고들었다. 엘시아와 리리엔을 가만 바라보고 있던 레오디안이 무심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내내 그의 뒤에 서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로이셀을 향해 말했다.
“로이셀, 앞으로 리리엔이 머무를 침실을 준비해라.”
짧게 명한 뒤, 레오디안은 다시금 리리엔에게 눈길을 주었다. 그렇게 리리엔을 관찰하듯 한참을 응시하던 레오디안이 문득 엘시아에게 목걸이를 건넸다. 그러느라 순간 가까워진 거리를 인지한 엘시아는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대놓고 그를 피하는 듯한 엘시아의 모습에 레오디안이 미간을 좁혔다. 과거 엘시아가 보았던 서릿발처럼 싸늘한 시선은 아니었다. 그저 조금의 혼란을 담은 무감각한 시선으로, 그렇게 레오디안은 엘시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런 레오디안을 향해 엘시아는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엘시아도 레오디안을 피하고 싶어서 피한 게 아니었다. 다른 인간도 아니고, 앞으로 리리엔의 보호자가 될 인간이었다. 그런 인간을 병균 취급이라도 하듯 피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달콤한 냄새가 나.’
레오디안에게서는 여전히 달콤한 냄새가 났다.
엘시아가 단 한 번, 그것도 무척 짧은 시간 동안 마주했던 레오디안의 얼굴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건, 어쩌면 그의 체취에 저도 모르는 사이 매료되어 버렸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도 생각한 것이지만, 살아생전 이렇게 맛있을 것 같은 냄새를 풍기는 인간을 만난 건 처음이었다. 자칫 방심했다가는 그에게 달려들어 탐스러운 목덜미를 깨물어 버릴 것 같았다. 그런 회생 못 할 짓을 저지를 바에는 차라리 좀 수상해 보이는 편이 나았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엘시아는 한 걸음 더 물러섰다.
(중략)
엘시아는 제 모습을 말없이 가만 내려다보다가, 이내 시선을 들어 올려 다시금 레오디안을 바라보았다. 엘시아는 이 저택에 오고 나서 자신이 인간보다는 짐승에 가까운 생활을 해 왔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리리엔의 모습 또한 엘시아가 그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토록 했다.
엘시아가 잘라 주어 엉망이던 리리엔의 머리카락은 깔끔하게 다듬어졌고, 무언가를 발라 관리를 한 머리카락은 전과 다르게 훨씬 보드라워졌다. 리리엔의 차림새 역시 이제는 누가 보더라도 귀한 가문의 아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화려해졌다.
“저 같은 초라한 사람이 이곳에 어울리기나 한가요.”
건조한 엘시아의 목소리는 레오디안의 말문을 막기에 충분했다. 레오디안의 미간 사이 주름이 깊어졌다. 엘시아는 정말 그렇게 여기고 있는 듯했다. 자신은 너무나도 초라한 사람이라, 이 대공저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고.
“나는 은혜를 모르는 짐승이 아닙니다.”
레오디안은 눈앞의 표정 없는 새하얀 얼굴을 직시하며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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