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줄기가 파팍, 거세게 튄다. 폭압의 물줄기가 상여를 직 격했다. 상여가 물대포를 맞고 부서졌다. 대열이 흩어졌다. 저네들은 부서진 상여 위에 계속해서 물줄기를 살포했다. 상 여 틀에서 나온 통나무를 들고 젊은 농민들이 다시 앞으로 나간다. 아, 여기서 더는 물러설 수 없다. 앞으로 나가자. 싸움의 앞줄을 젊은 농민과 노동자들에게만 맡겨서는 안 되지 않나, 하는 마음이 솟고라졌다. 앞으로 나섰다. 물대포가 저들에게는 총알이다. 일회용 비옷은 방패가 아니다. 물대포에 맞설 수 없다. 그럼에도, 젊은이들은 앞장섰다. 물대포가 계속해서 직사를 한다. 저들의 울타리가 돼 줘야 한다. 한 발짝, 한 발짝 더 앞으로 나간다.
--- 「농민」중에서
“며느리도 그라고 찬수 가가 여그서 산다고 지악스럽게 우긴다네, 그랴.”
“참, 벨늠이시.”
“어야, 저그 또 한 벨늠, 신한이 이장 오네.”
“수동떡도 자석늠 저라고 댕기넌 통에 워디 살맛 나것능 감, 원.”
“보릿대 끄슬러 먹대끼, 속이 시꺼머컸제.”
“아들늠 저라고 댕김서부텀 회관 마실걸음도 끊어 부렀는가, 안.”
“금메. 서울서 돈푼깨나 번다고 허도만, 무신 공장인지 몰 르제만 그만 엎어묵고 여그서 이장 헌답시고 저라고 댕기니, 원.”
“저러코 다녀도 선상질 허넌 둘째보다 공부넌 더 잘 안 혔다고. 지덜 또래 중이선 젤이었잖능가베. 잘 안 풀려서 저 라제. 똑똑혔제, 참말로.”
--- 「동맑실 조신한 이장의 운멩」중에서
“이 질문은 기본적으로 저급하다. 나의 학문, 아니 모든 양 심적 학자의 학문적 업적에 대한 법의 심판 과정이 성립되는 오늘의 이 사실, 이 자체가 기이한 현상이다. 나는 이 법정을 나의 사상과 양심에 대해 사법의 이름으로 가해지는 폭력으로 규정한다. 이 법정은 모독의 법정으로 기록될 것이다. … 음, 질문에 답하겠다.”
그때, 울컥 눈물이 솟구쳤다. 눈물 위로, 아버지의 온후한 얼굴이 그려졌다. 그가 나의 감정을 지그시 눌렀다. 아버지와 함께 오르던 오름이 잠시 펼쳐졌다. 꿈같은 장면이었다. 법정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고립된 섬처럼 닿던 법정이 다르게 보였다. 내 목소리가 점점 도도해지는 걸, 느꼈다.
--- 「미완의 귀향」중에서
학생들을 잠재적 범죄자 또는 말썽꾼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학교에 만연해 있었다. 그 기류를 유지하는 중심 인물이 학생과장이었다. 교련 선생인 그는 유독 자활촌 아이들에게 가혹한 눈초리로 희번덕이곤 했다. 그의 악명은 별명의 개수로 증명되었다. 표독한 돼지라는 의미의 표돝 말고도 짭새, 개코, 불독, 살모사, 늑대 등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별명은 아이들에게 호출되었다. 2학년 1학기 때였다.
--- 「서미림 선생」중에서
“인제 말 놓고, 글 쓰겠네.”
나는 씁쓰레한 웃음기를 흘렸다. 초췌해진 그의 몰골을 바라보면서 내뱉는 언사로는 고약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목 부위와 관련한 후두암이니 식도암이니 혹은 인후암이니 하는 중병이 아닌 걸 알고 우려를 떨구게 된 때문이 아니었다. 기실 아픈 부위가 목이라는 데에 흥분과 당혹스러움을 갖게 되었다. 시인(詩人)인 그가 붓을 꺾고 민주 진영 한복판에서 복무하던 위치에서 본업인 시인으로의 전향을 예견하는 듯한 느낌이 불현듯 밀려온 까닭이었다.
--- 「오래된 잉태」중에서
안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안 된다는 건 아니었다. 누구나 겪지 않는 경우겠다. 한편으론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정황이겠다. 여직 떨쳐내지 못한 채 가슴 깊이 곪아 있는 상흔이었다. 이런저런 당혹스런 처지에 놓이게 되면 늘 내 탓이라며 안으로, 안으로 침잠하고 자책하곤 했다. 내 표정이 어떠하기에 이 사람이 이렇지? 먼저 염려했다. 눈으로 보지 못한 일제강 점기와 귀로 포성을 듣지 못한 육이오가 빚어낸 가족 관계는 어김없이 나를 옭죄곤 했다.
--- 「이장」중에서
지나온 절집에서의 사 년여를 되새김질해 본다. 절집에 들어 처사로 복무하면서 한 처사가 갖게 된 사고의 진전은 절집에 들게 된 절박한 연유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래, 화두(話頭)는, 놓아라, 하는 것이었다. 이도 놓고 저도 놓으면 모두 놓게 되려니 하는 심중으로, 세속에서의 지난한 업(業)과 보(報)를 내려놓고자 함이었다. 그러할진대, 이제 새로이 또 다른 업을 등에 얹으려 하다니…. 한 처사가 핸드폰을 꺼내 든다. 구구절절 세파의 끈이다. 방바닥에 핸드폰을 가만히 내려놓는다. 소쩍, 소쩍… 소쩍새가 울컥울컥 피를 토하고 있다. 저 얹힘, 하고 되뇌다가, 한 처사는 그만 지난겨울, 그 거친 삭풍 속에서 잠시 보았던 어느 인업에 얽힌 잔영에 휘말리고 만다. 그토록 떨쳐내 버리고자 했던 절연의 끈이었다.
--- 「만행」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