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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릴라 재판의 날

고릴라 재판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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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7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400쪽 | 140*200*30mm
ISBN13 9791193324240
ISBN10 1193324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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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릴라는 너희를 지칭하는 말이야. 숲에 사는 멋진 친구들.”
첼시는 내가 아는 단어를 사용해서 고릴라가 무엇인지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숲에 사는 멋진 친구.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내가 고릴라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 pp.10~11

왜 소송을 걸려고 하느냐는 그의 질문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피해자가 인간이었어도 똑같이 물었을까?
“남편이 살해당하면 경찰을 부르잖아. 범인이 처벌당하지 않으면 소송을 걸고. 당연한 일이야. 나는 잘못된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니야.” 내 수어에 맞추어 발화되는 기계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담담한 말투와 일정한 억양을 유지했다. 할 수만 있다면 따끔하게 말해 주고 싶었다. 나는 잘못된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니야.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배심원들의 생각은 달랐다.
--- p.32

나는 고릴라지만 인간처럼 생각하고 인간처럼 행동한다. 지금까지는 그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나는 특별한 존재였고, 행복했다. 하지만 평범한 고릴라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런 괴로움을 맛보게 되었다. 다른 고릴라나 야생 동물은 결코 경험할 일 없는 굴욕과 좌절.
--- p.34

“아직 어린 새끼였는데 불쌍하기도 하지. 돌아가서 같이 묻어 줄까?”
그 말이 내게는 구원처럼 들렸다. 동료 고릴라들은 아무도 내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샘은 내 기분을 정확하게 읽고 내게 공감해 준 것이다. 내 마음은 고릴라보다 인간에 더 가까워져 버린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무리에서 빠져나와 샘과 함께 연구소로 향했다.
--- p.92

“전부터 생각했던 건데 로즈는 수어를 배운 다른 유인원들과 달리 거의 완벽한 미국식 수어를 구사하잖아. 수어를 할 줄 아는 인간과는 대등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지. 그뿐만 아니라 상대가 하는 말도 다 이해할 수 있고. 그러니까 로즈를 미국에 데려가면 어떨까 해.”
“미국에 데려가겠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런 일이 가능할 리가 없잖아. 로랜드고릴라는 멸종 위기종이라고!”
--- p.100

「이건 마법의 장갑이란다. 이 장갑을 끼고 수어를 하면 안에 들어 있는 작은 컴퓨터가 손의 움직임을 읽어서 너 대신 말을 해 주지. 나는 이걸 개발한 사람이고.」
「멋지다! 나는 이런 게 있는 줄도 몰랐어.」
「너한테도 특별히 하나 만들어 주마. 이것만 있으면 수어를 모르는 사람과도 대화가 가능해질 거다.」
--- p.114

“너는 미국에 가기를 희망한다고 들었는데 미국이 어떤 나라인지는 알고 있니?”
“자유의 땅, 용기 있는 자들의 고향.” 내가 미국 국가의 1절 가사를 인용해 대답하자 상원의원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못 당하겠다는 듯 양손을 살짝 들어 보였다.
“자네들이 어떻게 교육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상원의원이 샘과 첼시를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로즈는 내 손주들보다도 더 똑똑한 것 같군. 고릴라가 이렇게까지 높은 지능을 갖고 있다니 정말이지 믿기 어려운 일이야. 실제 아이큐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나?”
--- p.141

어두운 정글 속에서 나뭇잎 사이로 새어드는 햇빛을 받으며 성큼성큼 걸어오는 아이작에게서는 위엄과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등에 난 털은 검은색에서 은색으로 바뀌어 가는 중인 듯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상대가 예전에 나와 함께 놀았던 바로 그 고릴라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아이작은 늠름하고 듬직한 수컷 고릴라로 성장해 있었다.
--- p.156

나는 고릴라가 아니다. 그리고 인간도 아니다. 나는 고릴라와 인간 사이에서 방황하는 무언가였다. 나에게는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필요했다. 내 심정을. 내 고독을.
--- p.163

오마리에게 소년을 해칠 의도가 없다는 건 분명했다. 하지만 오마리가 소년을 잡은 손에 조금만 힘을 주어도 아이는 뼈가 부러질 거고, 팔을 붙잡고 휘두르기라도 한다면 그대로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높았다. 홉킨스 원장에게는 고민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실탄이다. 부탁하네.” 원장은 지시를 기다리는 사격팀에게 전했다. 명령을 전달받은 남자는 총을 들고 오마리를 조준했다. 남자는 이런 상황에 대비해 훈련을 거듭해 온 프로였다.
“신이시여, 부디 용서를….”
원장의 기도에 답한 것은 신이 아니라 한 발의 총탄이었다. 귀를 찢는 듯한 날카로운 총성이 한차례 울려 퍼진 후, 모든 상황이 종결되었다.
--- p.243

“로즈, 기다려! 그럴 필요 없어. 경찰한테는 우리가 이미 연락했으니 곧 올 거야.” 홉킨스 원장이 나를 저지하려 했지만 내게는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네, 신시내티 경찰서입니다. 무슨 일이신가요?” 경찰서 직원이 침착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남편이 사살당했어요. 지금 당장 경찰관을 보내 주세요. 네, 사태는 진정되었고 저도 안전해요. 장소는 클리프턴 동물원, 고릴라 파크 안입니다.”
--- p.248

“정의를 지배하고 있는 게 인간이라면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모르겠어. 판사도 배심원도 고릴라라면 이길 수 있을 거야.” 내가 말하자 다니엘은 코웃음을 쳤다.
“그건 어렵겠는데. 사법고시에 합격한 고릴라가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
“그럼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는데?”
“다른 사람들을 고릴라로 바꿀 필요는 없어.” 다니엘은 거기서 일단 말을 끊고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네가 인간이 되면 돼.” 그는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 pp.300~301

“질문을 바꾸죠. 말했듯이 증인은 세간으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고 있었습니다. 개중에는 근거 없는 비방이나 악의적인 인신공격도 많았을 겁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증인을 비난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이가 나타났습니다. 그 주장 덕분에 증인을 향한 비난은 사그라들었죠. 당신을 구해 준 상대가 누구였는지 기억하십니까? 지금 이 법정 안에 있을 텐데요. 손가락으로 가리켜서 누구인지 알려주시겠습니까?”
안젤리나는 내내 숙이고 있던 고개를 살짝 들어 나를 가리키며 “로즈입니다” 하고 힘없이 대답했다.
--- p.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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