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 앞에 서면, 화가가 눈을 잃어가면서도 그림을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만이 명징하게 다가온다. 그간 보이지 않던 색으로 세상이 물들고 시야가 흐려지더라도, 모네는 끝까지 자신의 눈으로 보려 했고 그렇게 본 것을 그렸다. 하늘도 땅도 구분되지 않으며 모든 것이 뒤섞여 있는 물 위의 환영은 이 세상이 처음 생겨날 때의 혼돈의 풍경일지도 모른다. (…)
〈수련〉에서 수련은 중요하지 않다. 수련이 제대로 표현되었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빛과 색이 창조한 마술 속에 기꺼이 갇히고 거두어지는 순간에 빠져들 뿐이다. 마법 같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세상은 움직임을 멈추고 우리는 생각을 멈춘다. 아주 잠시라도 그 영원 속에 잠겨있고 싶은 마음이다. 우리의 세상 속으로 되돌아가기 전까지.
---「클로드 모네_ 빛 속에 서있는 사람」중에서
뭉크도 고상한 주제를 그리고 싶은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예컨대, 풍경이나 꽃, 변화하는 도시 풍경 혹은 위대한 인물, 철학적인 주제나 정치적 행동을 그릴 수 있지 않았을까? 만약 친절한 친구가 뭉크에게 이런 충고를 했더라면, 단박에 거절하며 이렇게 응수했을 것이다. “나는 예술로 삶의 의미를 설명하려고 하는 거야. 나는 자기의 심장을 열어젖히는 열망 없이 탄생한 예술은 믿지 않아. 모든 미술과 문학, 음악은 심장의 피로 만들어져야 해. 예술은 한 인간의 심혈이야!”
---「에드바르 뭉크_ 나는 느끼며 아파하고 사랑하는 존재를 그린다」중에서
뭉크를 심리적으로 괴롭힌 것은 사랑의 고통이 아니라 예술의 정점에 오르고 싶은 자의 불안이 아니었을까? 아무리 추구하고 노력해도 찾아오지 않는, 왔다가도 금방 사라지는 예술의 성취감을 끊임없이 목말라했던 건 아닐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행복에 겨운 예술가는 없다. 뭉크에 비추어보면, 예술가란 보이지 않는 것들 속에서 불꽃같은 의미를 찾으며, 스스로 불안과 불행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사람이다.
---「에드바르 뭉크_ 나는 느끼며 아파하고 사랑하는 존재를 그린다」중에서
책들, 촛불들, 별이 반짝이는 눈을 가진 초상화들, 나무 그루터기에서 바람에 쓰러질 듯 서있는 나무들까지 반 고흐는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사소한 것들을 어루만지듯이 다정하게 포착하고 눈부시게 표현한다. 반 고흐는 어떤 장면이든 사건의 중심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그의 그림은 너무도 많은 영감으로 가득해서 마음을 울컥하게 만든다. 우리를 부둥켜안고 뜨거운 악수를 건네는 것만 같다. 테오에게 보낸 무수히 많은 편지처럼, 그의 그림은 우리에게 보내는 마음으로 가득한 편지글이다.
---「빈센트 반 고흐_ 불멸을 보는 눈」중에서
어머니의 조각은 온몸을 밀착하는 행위가 얼마나 인간적인 것인지를, 그리고 강력하게 끌어안은 몸에서 화합, 애정, 연대, 보호, 책임과 같은 공동체를 지키는 신념들이 발생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의 원초적인 감각을 형상화한 조각은 차가운 청동이란 사실을 잊게 만들 정도로 따스하고 열렬한 감정의 덩어리로 보인다. 조각은 가난하고 슬픈 사람들을 숭고한 존재로 우리 눈앞에서 일으켜 세운다.
---「케테 콜비츠_ 가난한 사람들의 피에타」중에서
세잔은 예술의 관습에서 이탈하고 규칙을 모조리 어기는 그림을 그렸다. 여러 시점에서 보는 것들을 하나로 통합해서 그린 것이다. 같은 풍경을 보아도 화가마다 다르게 본다는 사실은 지당하면서도 예술의 흥미로운 점이다. 세잔의 눈은 자연의 실루엣과 색채를 좇으며 시각적 아름다움을 감각한다. 세잔은 자신의 눈, 자신의 감각을 믿으며 보이는 것들 사이의 기적 같은 마법을 읽어내려 했다. 그것이 자연의 본질이라 믿었다. 그렇게 바라보는 한 세잔의 산은 언제까지나 미완성이며, 미완성인 채로 완성이다.
---「폴 세잔_ 색채로 쌓아 올린 산」중에서
“나에겐 비밀이 있어. 아주 단순한 비밀이지. 그건 오직 마음으로만 올바르게 볼 수 있다는 거야. 진정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거든.”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말했듯이 진정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예술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을 끝끝내 보는 사람이다. 본다는 것은 온몸으로 그 몸을 둘러싼 것들과 벌이는 맹렬한 싸움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데는 마음이 작동한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_ 그림은 어떻게 우리에게 오는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