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미술 시간을 재미있게 보내는 방법을 고민하다 시작한 시험이지만 시험이 아닌 시험을 학생들에게 보이고 싶었습니다. 시험에 대한 공포, 학생들 머릿속에 돌처럼 박혀 있는 그 두려움과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시험, 친구들과 함께 답을 찾고 모르는 문제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해결하는 신나는 시험도 있다는 것을 알려 주고 싶었습니다. 학교 시험은 친구와의 무한 경쟁이고 그래서 서열과 등급을 나누고, 일등이 모든 것을 가져가면 나머지는 루저가 되는 슬픈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시험이 끝나고 문제 풀이 시간에 학생들에게 당부합니다.
“너희들은 앞으로 살아가면서 수많은 문제를 만날 것이다. 어려운 문제는 혼자서 해결하려 하지 말고 함께 풀고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미술에서 강조하는 ‘조화의 아름다움’도 그것이란다. 제발 주눅 들지 말고,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도전해라! 앞으로 미술 시간에는 남 눈치 보지 말고, 앉아만 있지 말고 움직여야 한다. 실패해도 좋다. 실험해라! 모험을 즐겨야 한다.”
--- 「유쾌한 이노베이션, 시험으로 만나는 첫 미술 시간」 중에서
메모리 카드 게임 수업을 통해 얻은 GBL의 효과와 메타버스라는 가상 세계 기술을 이용한 수업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감을 얻은 저는, 직접 메타버스 공간에 미술사 박물관을 만들어 메타버스 게임 기반 수업으로 확대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메타버스 미술사 박물관을 만들기 위한 플랫폼을 찾아보다 ‘코스페이시스 에듀(Cospaces Edu)’라는 플랫폼을 알게 되었습니다. ‘코스페이시스 에듀’는 플랫폼 자체 라이브러리에서 다양한 캐릭터와 오브제를 제공하고 있어 초보자도 비교적 쉽게 건물이나 지형 등을 만들 수 있고, 블록 기반 코딩을 활용해 게임까지 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미술사 박물관을 만들기에 딱 적합한 플랫폼이었죠.
--- 「온라인 매체를 이용한 미술사 수업」 중에서
학생들이 동시대의 작가와 작품을 만날 시간과 여유가 없다면 작가를 학교에 초대해 전시를 하면 어떨까? 전시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감상을 직접 교과 수업과 연계하면 어떨까? 감상에만 그치지 말고 전시 작품을 감상한 뒤, 전시 작가와 협업하여 학생들에게 예술가의 창작 과정을 경험하게 하는 건 어떨까? 나아가 창작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을 작가들과 같이 협업 전시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학교 갤러리 전시와 전시를 활용한 미술 교육은 그렇게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 「머물고 소통하고 함께하는 학교 갤러리」 중에서
게임을 적극적으로 분석하고 비평하는 수업은 게임 자체를 비평한다는 점에서 좋았으나 미술의 한 영역으로서 게임을 다루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공간을 표현하는 원근법, 빛을 처리하는 명암법, 질감의 묘사 등 오랫동안 미술가들은 눈에 보이는 세계를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다양한 표현 기법을 연구해 왔습니다.
이러한 회화의 법칙들이 게임으로 이어져 게임 그래픽이 완성된 것인데, 순수 미술 중심으로 수업하다가 갑자기 게임 비평 수업으로 바로 넘어가다 보니 미술과 게임이 연결되지 않는 것이 문제였지요. 그래서 2022년에는 전통적인 회화 작품과 게임을 비교 분석하는 것으로 수업 내용을 수정하였습니다. 이전에 사용한 비평 양식에서 이야기와 메커니즘 분석 부분을 생략하고 전통 회화와 게임을 비교할 수 있도록 비평 활동지 양식을 보완하였지요.
--- 「게임이 미술 수업을 만났을 때」 중에서
2018년 〈플라스틱 지구를 구하라!〉, 2021년 〈기후 행동 아트 프로젝트〉는 미술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이미지가 가진 힘과 영향력을 경험하고 이를 활용하여 자신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기를 바라며 설계되었습니다. 이미지를 읽고 비판적으로 해석하는 능력, 활용하는 능력은 지금의 그리고 미래의 필수 역량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플라스틱 쓰레기, 기후 위기의 문제를 수업 주제로 다루며, 학생들이 내가 속한 세계에 대해 관심을 갖고, 긍정적 변화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행동하기 위해서는 먼저, 현상을 분석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미술 수업을 통해 이런 경험을 설계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 「미술, 삶과 세계를 마주하다」 중에서
벽에 귀여운 표정을 한 바나나가 붙어 있네요. 수업 시간에 접한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작품이 인상적이었나 봅니다. 이 작품을 보고 자신의 반으로 오면 바나나도 준다고 합니다! 친절하게 변용된 작품이군요. 알게 된 것을 잊지 않고 자신의 또 다른 경험으로 만드는 학생들을 보며 함께 웃게 됩니다.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작품으로 ‘이게 예술 작품인가?’라는 헷갈리는 상황을 연출했던 카텔란의 작품은 해석이 다양한데요. 「코메디언」이라는 제목 때문에 현대 미술 시장에 대한 조롱 섞인 블랙 코미디라는 평을 받습니다. 엄청난 밈을 양성하며 사람들에게 퍼져나간 이 작품의 예술적 가치는 시간이 좀 더 흐른 후 증명되겠지만, 미술사적 사건이 된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학생들이 붙인 것 역시 바나나가 아니 사건이겠지요.
--- 「도전과 실험을 경험하는 미술 수업」 중에서
KJ(Kawakita Jiro) 교수 회의 기법(1964년 일본의 동경 공업 대학 교수이자 세계적인 문화 인류학자인 가와키다 지로가 고안한 것으로, 전체의 문제점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다양한 각도에서 모은 개별적 자료를 조합해 나가면서 전체의 틀로 구조화시켜 진짜 문제점을 찾아내는 방식)을 처음으로 적용한 것이었지요. 하지만 아직 교수 회의 기법이 익숙하지 않고, 자료가 부족해서인지 매우 힘들었습니다. 다음에는 질문지를 만들어 채우기 방식을 함께 사용하면 더 효율적일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학생 주도적인 배움에는 성공한 것 같습니다. 사실 지난 프로젝트까지는 미리 주제와 학습 내용을 제시하면 학생들은 관련 지식과 기술을 익히고 디자인하는 수동적 배움으로 진행했습니다. 이럴 경우 학생들은 동기가 부족하여 어려움이 있을 때 쉽게 포기하려고 하거나 문제 해결에 있어서도 지시하는 것만 받아들이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는 해결하려는 의지와 성취하고자 하는 욕구가 확실히 강했습니다.
--- 「미술 교사의 로봇 동아리 이야기」 중에서
예술가들이 학교로 오면서 다양한 효과를 기대하였는데 그중에는 학교 내 교사들의 예술에 대한 인식 변화도 있었습니다. 학교 문화가 예술가들을 통해서 변화하길 기대했고, 이를 위해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드나드는 복도, 계단에 갤러리를 꾸며 다양한 활동을 전시했습니다. 보기 싫어도, 관심이 없어도, 볼 수밖에 없는 공간이었지요. 교사와 학생들이 지나다니면서 궁금해하고 잠깐씩 눈길을 주면서 북적북적 예술 활동이 소문 나기 시작했습니다.
--- 「학교, 예술가, 지역이 함께하는 미술 수업」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