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나에게 있어서 용기란 무엇인가 생각해보니 부끄러웠던 모습만 생각났습니다. 집안 형편으로 인해 건축과가 있는 부산공고를 선택해 입학했지만, 잘못한 것 없이 조건이 자꾸 불리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불안했지만 적어도 나 자신에게 비겁하지 않은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 p.6
힘내라는 뻔한 말이 아니라 모른 척 쥐어준 사탕 하나에 울컥한 마음이 약통을 버리게 합니다. 드라마의 한 장면이 선명하게 남는 건 ‘용기란 도대체 어떻게 생기는 걸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어서였습니다.
--- p.9
용기를 잔뜩 준비해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쓰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그저 어떤 순간에 자기도 모르게 손을 번쩍 들게 되고, 뛰쳐나가고, 몸을 던지게 되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지켜야 할 것을 위해서, 혹은 그 어떤 대의를 위해서.
--- p.22
우리가 일상 속에서 한일 관계를 이야기할 때 왕왕 대화의 주제로 거론되는 것이 ‘사과’이다. 우리는 언제나 “미안합니다”, “실례합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일본인들을 보며, 역사적인 과오에 대해서는 제대로 사과하지 않는 비겁한 사람들이라 생각하곤 한다. 우리는 사과에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미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다.
--- p.33
1991년 나는 대학 3학년이 됐고 강경대가 죽었다. 분노에 몸을 떨었다. 노태우 정권 이 개새끼들, 민주주의를 이렇게 짓밟…. 그러나 가투는 싫었다. 무서웠다. 대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백골단이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무방비 거리로 투쟁하러 나간다는 건 정말 무서웠다. 전경한테 잡히면 아버지한테 뭐라고 변명해야 할지도 막막했다.
--- p.49
올해도 4월은 눈물 바람이었다. 안산에서 열렸던 세월호 10주년 추모 합창제에 다녀왔다. 4·16 합창단이 부른 〈너〉를 다시 들을 때가 많다. ‘상처 입은 치유자들 The wounded healers’의 눈물은 힘이 세다. 우리 주변에는 용기를 내고 용기를 주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 p.71
나는 내담자들에게서 용기를 발견할 때 경외감을 느낀다. 한 달 동안 각기 다른 사고로 가족 세 명을 잃은 분을 만났다. 그분은 지금까지 울지 못했다. 자신이 무너질까 봐 남겨진 아이 생각에 울 수 없었다. 대화를 나누다가 진료실에서 억눌렀던 감정이 터졌다.
--- p.73
“거룩한 것들은 왜 모두 아프거나 가난한가”라고 탄식하는 송경동의 읊조림. 그의 시는 가슴 밑바닥에 고여 있는 탄식이며 읊조림이다. 이 아프고 가난한 자들이 바로 거룩한 자들이며, 바로 천사이며 신적인 존재라는 것, 시인은 바로 이것을 말하고 있다. 여기서 송경동의 ‘거룩한 것’은 레비나스의 ‘타인의 얼굴’과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와 만난다.
--- p.95
세상은 우울한 회색빛이지만 흔들릴 때마다 우리는 깨치는 법이다. 비관론자들은 조금만 놀랄 일이 생겨도 두려워하지만, 낙관론자들은 희망이 사라지거나 희미해져도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고 외친다.
--- p.112
그 장교, 이지문 중위가 바로 필자다. 학생운동과는 거리가 멀었던 평범한 대학생으로 졸업 후 1991년 3월 ROTC로 소위 임관한 필자는 입대 전 장교 특채로 모 대기업체에 입사하고 왔기에 2년 반 의무복무 기한을 마치고 나면 복직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내가 갈등과 고민 끝에 결국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 p.117
돌아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매 순간들 역시 일종의 작은 전장에 다름 아니다. 세상의 불의한 억압과 부조리에 맞서서, 먼저 자신의 마음이 무너지지 않도록 굳게 지키고, 더 나아가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일에도 큰 용기가 필요하다. 또한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인정하고 실패를 반성하며 새로운 한 걸음을 내딛는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 p.141
용기는 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악을 저지를 때도 용기는 필요하다. 사전적 범주를 벗어나 최소한 서사 작품에서는 그렇다. 모두가 평등한 나라를 세우고자 집을 떠나는 홍길동에게도 용기가 필요하지만, 홍길동을 죽이려는 생각을 굽히지 않고 결국 자객을 부르는 홍판서의 첩 곡산모의 의지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145
필자에게 보통 용감하지 않으면 쓸 수 없을 글을 부탁해 주신 분의 말이 감사했다. “저는 ‘용기’라는 이 낱말을 접하는 순간, 김종광 작가님의 여러 소설이 떠올랐습니다. 우리 삶 속에서 여러 얼굴로 나타나는 이 용기라는 친구에 관해 재미있게 써주시지 않을까, 하였습니다.” 의아했다. 내 소설을 떠올리고 그런 생각을? 곰곰 생각해 보니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 p.158
나라고 특별할 것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진심으로 조언을 해준 것이다.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는 내게 그는 잊을 수 없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런데 이거 하나만 명심해. 감만 잃지 않으면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어. 그게 중요해. 늦은 건 어쩔 수 없어. 하지만 언제든지 다시 링 위에 설 수는 있어.”
--- p.169
나는 보통 때는 잠들어 있는 것처럼 보이던 인간의 위대함이, 어느 순간에는 마치 물 흐르듯 뒤돌아보지 않고 나아가는 길에서 언제라도 번쩍이는 나침반의 침이 되어 우리를 인도한다는 사실을 먼 훗날 알게 되었다. 그 길에서는 나약함이나 옹졸함은 꽁무니를 내빼고 오직 정면에서 깜박이는 등대처럼 자신을 잡아채는 손아귀만이 세계의 전부다. 그것이 마련한 길을 신용길 선생님은 걸었다. 미처 다 쓰지 못한 시를 남겨두었지만, 그는 삶을 통째로 거대한 세계를 향해 새겼다. 아무도 지울 수 없는 청동의 낙인烙印이 되어 우리에게 펼쳐 보였다.
--- p.193
“좋은 건축이란 무엇인가?” “좋은 도시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안에서 생겨난다는 “좋은 삶이란 과연 무엇인가?” 객관적이고 가치중립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이런 식의 질문에서 얻어낼 수 있는 답은 없다. 설령 답을 낼 수 있다 하더라도, 동어반복 혹은 이미 설정해 놓은 답 정도일 것이다. 동어반복과 이미 설정해 놓은 답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 p.209
나에게 홍세화 선생님의 죽음의 과정이 교훈적인 또 다른 이유는 그가 투병 과정에서도 삶을 적극적으로 향유했다는 것이다. 홍세화 선생님과 한때 열심히 당구장에서 어울려 짜장면도 시켜 먹고 놀았다는 정경섭 전 마포 민중의집 대표는, 선생님이 암이라는 소식을 처음 듣고 “떨리는 마음으로” 인사 문자를 보냈다 한다. 그가 받은 답장과 이후의 일들은 다음과 같다.
--- p.230
끊임없이 억압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살아온 한센인들의 삶에 정착은 가장 큰 문제였다. 용호농장 한센인들 역시 소록도-용호농장-기장 삼덕마을-정관 종교시설로 이어지는 기나긴 여정을 정착하지 못하고 옮겨 다녔다. 그러므로 한센인들은 정착이 주는 안정의 본능을 충분히 누리지 못했다. 끊임없이 자신들을 위협하는 이주의 압력을 이겨낼 용기는 바로 ‘인간’이었다.
--- p.251
이런 시각에서 부산을 바라보니 떠오르는 이름이 수십을 헤아린다. 두드러진 용기를 보여준 몇 사람만 꼽아 본다. 정발, 송상현, 윤흥신, 이순신, 안용복, 조엄 그리고 박기종, 안희제, 박재혁, 윤상은, 윤현진, 어을빈 C.H. Irvin 과 매견시 J.N. Mackenzie 를 지나 장기려, 김정한, 최성묵, 김영삼, 노무현, 최동원, 이태석 등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와 지역에 남다른 용기를 보여주며 다양한 영향을 미친 인물들이다.
--- p.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