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거대한 장성으로 누구를 막으려 했을까? 북방 민족들이다. 나는 중국 남동부 출신이다. 거기선 어떤 북방 민족도 우리를 위협할 수 없다. 우리는 옛날 책들에서 그들에 관해 읽게 되는데, 그들이 본성대로 자행하는 잔혹한 짓들은 평화로운 정자에 있는 우리를 탄식하게 한다. 예술가들이 사실적으로 그런 그림들에서 우리는 저주받은 얼굴들, 쭉 찢어진 아가리들, 이들이 날카롭게 솟아 있는 턱, 아가리로 짓찧고 으스러뜨릴 약탈물을 노려보는 듯한 일그러진 눈을 본다. 아이들이 심통을 부릴 때 이 그림들을 들어 보이면 아이들은 금방 울음을 터뜨리며 날듯이 우리 목에 매달린다. 하지만 이것 말고 우리가 북방 민족에 관하여 아는 것은 없다. 그들을 본 적도 없고 우리는 마을에 머물러 있으니, 설령 그들이 거친 말들을 타고 우리를 향해 곧장 쫓아와서 덤벼들려고 해도 이 나라는 너무도 광대해 그들이 우리에게까지 오게끔 해 주지 않는다. 그들은 허공 속을 달리다 말 것이다.
--- p.19 「만리장성을 쌓을 때」중에서
“여보!” 하고 석탄 장수가 말한다. “있어, 누군가가. 내가 이렇게 심하게 착각하지는 않아. 오랜, 아주 오랜 단골이 틀림없어. 이렇게 내 가슴에다 말을 할 줄 아는 걸 보니 말이야.”
“무슨 일이야, 여보?” 하고 아내는 잠깐 쉬며 뜨개질감을 가슴에 끌어안는다. “아무도 없어. 골목은 텅 비었고, 우리 손님들은 다 받아 갔잖아. 우리도 며칠 동안 가게를 닫고 푹 쉴 수 있다고.”
“아니, 내가 여기 양동이를 타고 있다고요” 하고 소리치는데 추위 때문에 저절로 눈물이 흘러 두 눈을 흐린다. “제발 이 위를 좀 보세요. 금방 나를 발견할 거예요. 딱 한 삽만 가득 좀 부탁해요. 두 삽을 주면이야 정말 기쁘겠지요. 다른 단골들한테는 전부 벌써 주었다면서요. 아, 양동이에서 석탄 딸그락 소리가 들리면 좋겠네!”
--- p.44 「양동이를 탄 사내」중에서
물론 그것은 단식이라는 행위에 당연한 듯 따라붙는 의심에 속했다. 누구도 날마다 밤낮없이 단식 광대 곁에서 감시인 노릇을 하며 지낼 수는 없었다. 정말 단식이 계속되는지 아무도 자기 눈으로 확인하지는 못했다. 오직 단식 광대 자신만이 사실을 알았고, 그러므로 그만이 자신의 단식에 완전히 만족하는 관객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결코 만족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그의 몰골을 감당하지 못해 공연을 멀리할 만큼 그가 바짝 말라 버린 것은, 어쩌면 단식 때문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불만 때문인지도 몰랐다. 단식에 대해 좀 안다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으며 오직 그만이 단식이 얼마나 쉬운지 알았다. 단식은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었다. 그런 사실을 굳이 숨기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그를 믿지 않았고 기껏해야 겸손한 것으로 쳐주었으며, 대부분은 그가 광적으로 자기를 선전하려 한다고, 심지어는 그가 어떤 비결을 알기 때문에 쉽게 단식을 할 수 있으며 게다가 그런 사실을 적당히 고백하는 요령까지 갖춘 사기꾼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모든 일들을 그는 감수해야 했고 해가 가면서 익숙해지기도 했지만, 불만은 언제나 그의 마음을 갉아먹었다. 그래서 그는 단식 기간이 끝난 뒤에도-그에게 증명서까지 만들어 주어야 했는데-자진해서 우리를 떠나 본 적이 없었다.
--- p.49 「단식 광대」중에서
하지만 그러고 나서 그는 중얼거렸다. “일곱 시 십오 분 종이 울리기 전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침대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해. 그때까지는 분명 회사에서 누군가가 내가 뭘 하는지 물어보려고 올 거야. 회사는 일곱 시 전에 문을 여니까.” 그는 이제 반동을 이용해 길게 편 몸 전체로 동시에 침대 밖으로 벗어나 보려고 했다. 이런 방법으로 침대 밖으로 떨어질 경우, 머리를 바짝 쳐들고 있으면 머리를 다치지 않을 것 같았다. 등은 단단한 듯하니 양탄자로 떨어지면 괜찮을 것이다. 가장 걱정스러운 일은 틀림없이 큰 소리가 날 수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그러면 아마 다들 문 너머에서 질겁할 정도는 아니라 해도 걱정을 하게 될 것이다. 그래도 이것은 감행해야만 했다.
--- p.111 「변신」중에서
당시만 해도 아직 나는 오로지 견족에게만 부여된 창조적인 음악성에 관해 거의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때까지 겨우 서서히 발달하고 있던 나의 관찰력으로는 당연하게도 그 음악성을 알아채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미 젖먹이 시절부터 음악은 자명하고도 필수 불가결한 삶의 기본 요소로서 나를 에워싸고 있었고, 그 무엇도 이런 음악을 나의 삶으로부터 강제로 격리하지는 않았고, 다만 유년기의 이해력에 걸맞게 암시적으로만 그것을 알려 주려 했기에, 저 일곱 마리의 위대한 음악가들은 나에게 그만큼 더 놀랍게, 그야말로 압도적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말하지 않았고 노래를 부르지도 않았으며 대개 완강할 정도로 침묵을 지키기 일쑤였지만, 그러나 마법의 힘으로 텅 빈 공간에서 음악이 솟아나게 했다. 모든 것이 다 음악이었다. 그들이 발을 올리고 내리는 것, 머리를 돌리는 방식, 그들의 달리고 멈춤, 그들이 서로에게 취하는 자세, 원무(圓舞)를 출 때처럼 서로 연결하여, 이를테면 한 개가 다른 개의 등에 앞발을 얹어 디디고 맨 앞의 개는 꼿꼿이 서서 다른 모든 개의 하중에 버티도록 정렬한다든가, 또는 바닥에 닿을 만큼 몸을 낮게 움직여 복잡하게 짜맞춘 형상을 이룰 때 그들은 결코 헛갈리는 일이 없었다.
--- p.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