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지금의 나는 양수 검사도 안락사도 긍정할 수 없습니다. 무엇 때문에 태어나, 무엇 때문에 사는 걸까를 생각할 때 모든 것에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주어지면 그것이 어떤 생명이든지 존귀하고 의미가 있습니다. 본인에게 있어서도 주위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반드시 거기에는 의미가 있고 그것을 발견해내는 것이 인간의 본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영혼의 성장을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나, 자라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장애가 있다면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의미는 더욱더 크고 훌륭한 것일 거라고 확신합니다.
--- p.65 ('모든 생명에 삶의 의미가' 중에서)
어머니의 발소리는 경쾌하고 기분 좋은 것이었습니다. 보이지 않게 된 나에게 그 발자국 소리는 어머니의 기분을 재는 데 무척 중요한 수단이었습니다. 어머니의 발자국 소리가 언제 무겁고 끌리는 듯이 들릴까 그것이 걱정이었지만, 어머니의 발소리는 퇴원하는 날까지 무척 힘찼습니다. 어머니의 밝음과 상냥함이 나를 많이 치유해주었습니다.
--- p.103 ('입원중의 아버지와 어머니' 중에서)
나는 그때 너무 괴로운 나머지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오십보백보임을 곧 알았습니다. 그리고 조금 여유를 가지고 자신의 마음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지금까지 앞을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심하게 짓눌려서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는 엇갈릴 뿐 서로 겹쳐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하던 것이 보여도 보이지 않아도 마찬가지라고 아무런 주저함도 없이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음의 세계를 되짚어온 지금, 보여도 보이지 않아도 마음은 전혀 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앞을 볼 수 없는 것은 단지 육체적으로 볼 수 없는 것에 지나지 않음을 확실하게 알았던 것입니다.
--- p.110 ('죄의 자각' 중에서)
나의 맨 처음 과제가 된 것은 내가 먹이고 싶은 양만큼의 분유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유리로 된 우유병은 무겁기 때문에 병 안의 양을 가늠하기 어려우므로 플라스틱 우유병을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30cc의 우유병 뚜껑과 50cc, 100cc의 계량컵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포트를 한번 누르는 것으로 정해진 양, 약 100cc가 나오도록 손에 익혔습니다. 100cc의 분유를 만들 때는 우선 우유병에 약 30cc 의 끓여 식힌 물을 넣어둡니다. 먹이려고 할 때 50cc 컵 가득 끓인 물을 담아 흘리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우유병으로 옮겨 담고 그 곳에 분유를 넣습니다. 그리고 포트를 두 번 눌러 약 20cc를 추가합니다. 이렇게 하여 약 100cc의 분유를 만드는 것입니다. 친정에서 출산했기 때문에 분유를 탈 때마다 어머니에게 보여주고 확실하게 분유를 탈 수 있도록 훈련했습니다. 걱정이 될 때는 우유병의 100cc와 150cc 높이에 고무줄을 감아놓았습니다.
--- p.149 ('육아에 대한 연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