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의 시작은 알 수 없다. 실마리는 세 가지 정도. 고장 난 기계, 사진 조각들, 엇비슷한 낙서. 반세기 남짓 버려진 폐건물을 찾은 이유는 할아버지 유언과 아버지의 죽음 때문이다. 경찰이었던 아버지는 할아버지 유언대로 20년 전 황폐했을 이곳을 둘러보다가 실족사했다. 당시 할아버지 권유에 따라 프랑스 대학에서 인권과 사회심리학 공부를 하고 있던 나는 급작스러운 사고사였음에도 아버지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 때문에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한 뒤 1년간 방황했다. 이제 중년의 철학과 교수가 되고 보니, 그동안 의도적으로 감추고 응축해 놨던 기억의 덩어리를, 드러내고 녹여버리고 싶었다.
--- p.7
평생 외길 인생을 사회운동가로 동분서주했던 할아버지는 왜 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 요양원을 찾아보라고 했던 것일까.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유언을 이해했을까? 난 그 말을 도통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선명히 기억한다.
‘가서 길을 뚫어라.’
--- pp.8-9
“할아버지는 요양원 내부 사정을 아시고 가보라고 하셨을까요?”
“글쎄…, 사회적 약자, 돌봄 사업에 관심이 많으셨고 인연이 닿은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니까…, 그렇지 않을까?”
내가 입 다물고 골똘히 생각에 잠기자, 삼촌은 내 등을 어루만지며 말을 이었다.
“그렇더라도 사람마다 느끼는 실상은 다를 수 있잖아. 아버지, 은우 할아버지의 바람을 우리가 이뤄드리려면, 뭘 좀 알아내야지. 자료가 좀 남아있어서 다행이야.”
--- p.19
나는 강의를 시작하는 기분으로 헛기침했다.
“한 도전적인 학생에게서 비슷한 질문을 받아본 적이 있긴 해요. 그때는 ‘철학이란 무엇입니까?’ 였어요. 전 이렇게 되물었어요. ‘그 질문을 제게 하시기 전에 먼저 본인에게 해 보셨습니까?’ 눈을 내리깔고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상대에게서 바로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어요.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철학의 정의를 말해줬어요. ‘타인에게 질문하고 쉽게 답을 얻으려 하기 전에, 각자의 구체적인 삶에 질문 던지고 사색해 보는 과정, 그 자체가 개인이 갖춰야 할 철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철학은 삶의 여정에 없어서는 안 될 머릿속 이정표라서, 삶의 길을 보기 위해 철학 해야겠지요.’라고요. 인생에서 돈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숭배하거나, 고통을 잊고자 환락에 빠지거나, 남과 비교하며 치열하게 살다가 돌연 공허감을 느끼고 우울증에 빠지는 이런 모습들도 철학의 부재 때문에 생기는 양상들임이 분명하죠. 철인 니체는 ‘마취제 같은 예술’이라고 표현했는데, 세상 모든 분야 활동이 마취제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철학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 같아요. 철학도 자아 성찰 없이 삶에서 경험하고 터득한 것에 대해 논하지 않는다면, 언어유희고 기만이며, 철인의 말을 빌려 문학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반대로 문학도 삶에서 터득한 철학을 담고 있다면 얘기가 달라져요.”
--- pp.37-38
삼촌은 손사래를 치며 찌푸리고 있던 얼굴을 돌렸다.
“어르신도 들을 수 있다며? 표현해야 말이 되는 거지. 생각만 하려면…, 어르신이 엘시디 수신 장치를 귀에 꽂지도 않았잖아. 저러니까 가슴이 먹먹해진다.” 나도 아쉬웠지만, 느닷없이 이 말이 생각났다. 정확히는 아니고, 절반쯤.
“세상에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어떤 언어가 존재한다. 그건 사랑, 열정, 무언가를 바라는 믿음으로 만들어지는 감동의 언어였다. …” 삼촌이 내 말을 자르고 고막을 찌르는 괴성을 질렀다.
--- p.48
납품이 있던 날, 저녁 식사 전까지는 돌아올 거라고 했던 삐가 오지 않았다. 다른 식구들은 별걱정 없이 식사했고, 난 젓가락으로 밥알을 끼적대며 창밖을 주시했다. 저 멀리 어둑한 곳에서 걸어오는 남자가 한 손을 번쩍 들었다. 나도 젓가락을 쥔 채로 오른팔을 들고 손을 휘저어 인사를 했다. 그런데 그 남자는 다른 방향으로 사라져 버렸다. 잘못 알아본 것인가. 헛것을 본 것인가.
--- p.65
정리하자면, 이랬다. 삐가 납품하고 돌아오는 길에 졸음 운전할 뻔해서, 정차해 두고 잠을 잔 모양이었다. 그러다 주위가 소란스러워서 깼는데, 피로가 덜 풀린 상태에서 창밖을 보니, 단체로 뛰고 있더란 것이다. 해가 떨어져서 어두웠는데, 호각 소리도 들리는 것 같고, 야간에 마라톤 하는 사람들 안전하게 해 주려고 그러나 보다 생각했단다. 잠도 떨쳐 버릴 겸, 같이 좀 뛰다 돌아오면 좋겠다 싶어서 차에서 내려서 합류했단다. 그게 전부였는데, 그들 꽁무니에 따라붙은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경찰에게 붙들려 이 지경에 이르렀단다.
--- p.72
엄마는 아침에 일어나면 늘 긴 금발 머리를 빗고 단아하게 틀어 올렸다. 나는 TV 쇼에서 머리를 틀어 올린 귀족 부인을 보거나 예쁜 여자가 등장하면 “엄마다!” 하곤 했다. 엄마는 귀족 혈통이나 부유한 가문 사람은 아니었지만, 정신적 귀족임은 틀림없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서 교육을 많이 받지는 못했어도 독서를 좋아했고 종종 시를 썼다. 아빠는 회사까지 경비행기를 타고 다녔고, 돈으로 사람을 살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숫자를 100까지만 셀 수 있었을 때, 그 숫자보다 훨씬 더 많은 직원을 고용했다고 들었다.
--- p.86
엄마의 철학은 ‘세상의 그림자를 보듬어야 더욱 밝은 세상이 된다.’라는 것이었다. 충분히 그럴만한데도, 아빠는 주변 사람들이 아빠보다 엄마에게 존경의 시선을 보내는 것이 탐탁지 않아 질투심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난 그것을 알아차렸다. 엄마가 말해줬던 것이 기억났다. 아빠는 지혜의 방 열쇠를 아직 찾지 못한 것 같았다.
--- p.89
“법망을 피해서 범죄를 있는 대로 저지르고도 부, 명예, 천수를 누리고 죽은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그걸 보고 ‘그렇게 살아도 되겠구나.’ 생각해선 절대 안 돼. 그런 사람들은 살아서 죗값을 치르지 않았기 때문에, 죽은 후 대대로 오명을 쓴 채 손가락질당하는 벌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생전에 과도한 탐욕을 제어하지 못한 영원한 패배자니까.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벌을 받고 죽었을지도 몰라. 신께선 죄를 지은 인간에게, 인간이 상상할 수도 없는 창의적인 방법으로 가혹한 벌을 주시거든.”
--- pp.91-92
나는 엄마의 기대대로 살지 못했다. ‘지혜의 방 열쇠를 찾지 못하고 죽는구나.’ 생각하니 종이에 쓴 글자가 얼룩져 버렸다. 옷소매로 얼굴을 한 번 쓱 훑어내고 새 종이에 다시 적었다. 엄마가 죽고 아빠가 집을 비운 동안, 나는 불면증에 시달렸다. 약에 취하거나 술을 마시기 싫은 날이면, 눈을 말똥말똥 뜨고 죽는 모습에 대해 구상해 보기도 했다. 그중 하나의 방법을 선택했다.
--- p.105
“…정당성의 사전적 의미는 ‘이치에 합당하고 옳은 것’이에요. 한 사회가 과도하게 불공정하다면,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을 하면서 공정을 논한, 혹은 논하지도 않은 결과일 거예요. 대대적인 강제성이 동원되어야 할 정도로 사회 개혁이 필요하다고 느껴질 때는, 정당성에 호소해 보는 게 어떨지 해요. 그만큼 개개인 스스로 정당하게, 사리에 맞게 사고를 확장할 수 있도록 깨우쳐 주는 교육이 중요한 것 같아요. 강제성을 띤 성공 지향 획일화 교육, 과열 경쟁, 물질주의와 과잉생산으로 오염된 세계에서 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저들의 생활에서도 한 가지 배울 점이 생각났어요.”
--- pp.118-119
부모님만 설득하면 모든 일이 순조로운 줄 알았다. 각오가 너무 어설펐던 것일까. 본격적인 수술을 받기 전, 호르몬 치료부터 받기 시작했다. 그 분야의 대가로 소문난 의사는 스무 살 전에 호르몬 치료를 받으면 가슴 수술까지는 필요 없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필요하다고 우겼고, 의사에게서 다른 데 가서 수술받으라는 말을 듣고 나중엔 보챘다. 끊임없는 푸념과 애원을 들은 의사는 결국 가슴 수술까지 해주기로 약속했다. 내 본질을 에워싸고 있는 실존 외형을 바꾸기 위한 탐험을 위해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 p.139
지난번 촬영한 콘셉트 ‘진정한 아름다움’이 생각났다. 나와 또 다른 남성,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한, 모델이 함께 섰다. 상호 조화로움, 서로 돕는 마음이 알맹이 ‘본질’이고, 성(性) 구별, 겉모습은 껍데기 ‘실존’이라는 개념으로 여러 표정을 담아 연출했다. 당연히 그런 연출을 할 수 있는 사진작가는 이던이 아니라 신인 작가였다. 조명은 루카스가 맡아서, 음영의 의미가 충분히 묻어나는 흑백 사진의 최고봉을 보여줬다. 그 촬영 이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실존, 외형, 포장에 열광하는 사회가 되고부터 병들기 시작했던 게 아닐까, 하는.
--- pp.160-161
“그 모든 대안은 어렸을 때부터 성공 중심 교육이 아니라, 타인과 기관에 맡겨버리는 돌봄 교육도 아니라, 자기 돌봄 교육을 받는 거라고 본다. 어려서 못 받았으면, 성인이 되어서라도…. 그리고 왜 배워야 하는지 이유를 설명해 주고 가르쳐 주면 좋겠어. 이유를 알면 필요성을 느끼게 되고, 배우려는 자세가 달라지니까. 바로 그런 교육을 받는다고 해도, 습관이라는 게 있어서, 수치상으로는 달라지는 게 드러나지 않을 수 있겠지. 하지만 멀게 내다보면, 분명 교육이 지금과는 달라져야 해. 여태 비정상적으로 높여서 그만큼 따라잡기 힘든 경제 지수보다는, 이제 국민의 행복 지수를 높이는 데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행복해지면 무언가 찾아서 하게 되잖아.”
“네. 행복을 저해하는 과도한 이기심을, 이성으로 정화하는 철학도 필요하고요.”
--- p.172
사람은 사람으로 치유되고, 충격은 충격으로 상쇄되기도 하는 것인가. 내 경우는 그랬다. 공장에서는 내가 원래부터 말 못 하는 줄 알고 있었는데, 취직하고 난 지 1년쯤 지나 말이 튀어나왔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말이라기보다 ‘악’이라는 비명이었지만 말이다. 당시 공장 사장의 7살 된 아들이 선물 받은 망원경을 들고 뛰어다니다가 내 옆에 와 서서 망원경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드륵 드르륵, 박음질하다가 슬쩍 올려다봤을 때, 난 잊고 있던 그때 그 일이 불현듯 떠올랐고, 경기를 일으키며 손과 발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생살을 뚫는 아픔이 목소리를 되돌려 줬지만, 대신 왼손 집게손가락 한 마디를 잘라내야 했다.
--- p.193
“스피노자는 대중의 왜곡된 인식을 지혜와 이성으로 조율할 수 있는 안경이 있음을 제시했어요. 사람들은 치유 받고자 종교에 의존하기 쉽죠. 그렇게 인간이 종교를 만든 것까지는 좋은데,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어땠어요? 신에 대한 믿음만으로 구원받았다고 하면서도, 신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는데도, 자기들의 이익에 반하는 사람에게는 적개심을 가지고 증오하고 파멸을 부르는 행동을 해요. 물론 전부가 그렇다는 건 아니에요. 신께서 과연 인간들이 이율배반적인 믿음, 변질된 종교를 갖길 바라실까요? 인간의 삶에서 종교가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라, 치유, 구원으로의 접근 방식이 잘못돼서 갈등을 낳는 것이고, 무조건적인 믿음이 아니라, 신을 닮아가야 하는 인간으로서, 신이라면 어떻게 행동할지 판단해 보는 ‘이성이 개입해야 한다.’라는 것이죠.”
--- pp.200-201
나는 이 소설을 통해, 날 감시하고 있는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핍홀은 외부로 뚫을 것이 아니라, 당신들 내면에 뚫어야 한다.”라고. 그것이 또한 이 소설화자 중 한 명인 은우의 할아버지 유언을 실현하는 열쇠이기도 하다.
생각해 보면, 지식인으로 자처하는 그들만 타인을 감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무의식중에 물질주의에 오염되어 과도한 경쟁의식을 가지고 남과 비교하고 살고 있진 않나? 타인의 쓰린 인생 이야기를 가볍게 가십거리로 씹어대며 즐기고 있진 않나? 그렇다면 감시창의 방향을 전환해서, 부인할 뿐 모두가 갖고 있는 내면의 악을 감시하고 단속해야 하지 않을까?
--- p.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