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라는 단어 주변에선 에너지가 들끓는 듯하다. 이 단어는 밑바닥에 있는 어떤 지식, 생명의 힘, 공인된 학문이 무시하고 억압하는 축적된 어떤 경험을 가리킨다. 그리고 마녀의 기술은 오직 열정 하나로 자신의 전부를 바치고, 다른 모든 것으로부터 지키며, 평생 쉼없이 연마해서 완벽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는 개념 또한 맘에 든다. 마녀는 모든 지배와 제약에 얽매임이 없는 여자를 구현한다. 그러므로 그녀는 나아가야 할 이상과 길을 보여주는 존재다.
---「서론」중에서
그러다가 광범하게 남보다 튀는 여성의 등장은 마녀사냥이라는 소명을 불러일으켰다. 이웃 남성에게 말대꾸하거나, 목소리를 높여 말하거나, 성격이 강하거나 다소 지나치게 자유분방한 성격이거나 어떤 방식으로든 방해가 되는 행동을 하는 것은 위험을 불러오기에 충분했다. 모든 여성에게 친숙한 논리에 따라 어떤 행동을 해도, 반대로 하지 않아도 해가 될 수 있었다.
---「남보다 튀는 여자들의 목을 쳐라」중에서
두 번째 주장은 상황을 설명하기보다는 겁을 주고 경고를 던지는 데 목적이 있다. 남편과 자식들에게 도움을 주는 자리에 남아 있지 않고 자신을 위해 살려고 감히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여성은 불행을 겪으며 고전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막고자 그녀들의 약점이 되는 부분, 즉 자기 자신과 맞대면하는 상황에서 느끼는 갑작스럽고 강렬한 두려움을 곧장 조준한다.
---「자기만의 인생」중에서
나이를 먹는다는 건, 다시 말해 출산 능력을 잃고, 적어도 지배적인 기준의 관점에서 보는 매력을 잃는 것이다. 그리고 남편이나 자녀들을 돌보는 역할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는 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복종하지 않는 여성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신시아 리치가 썼던 것처럼, “여성이 오로지 다른 존재들을 생산하고 그들을 돌보기 위해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창조하고 자신을 돌보며 살 때”면 늘상 불러일으키는 두려움을 깨어나게 하는 것과 같다.
---「정상에서 맛보는 도취」중에서
사실 여성들은 버림받고 모욕당하는 아내의 슬픈 운명을 면하기 위해, 더욱 포괄적으로는 나이로 인한 수모를 면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해 되도록이면 변함없는 외모를 유지하려 애쓴다. 이 불합리한 도전에 뛰어든 그녀들은 시간이 멈추길 바라며, 우리 사회가 서른 살 넘은 여성들에게 허용하는 유일한 모습, 즉 늙지 않도록 방부 처리를 한 것처럼 영원히 젊은 여성이 되려고 한다.
---「정상에서 맛보는 도취」중에서
“사람이 죽어도 머리와 손톱은 계속해서 자란다는 말 모르지는 않을 텐데요. 끔찍해요. 섬뜩한 이야기죠. 죽은 사람을 매장하고 며칠이 지난 뒤 관뚜껑을 다시 열면 그간 3센티미터가 더 자란 흰머리가 달려든대요. 당신은 관뚜껑을 다시 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하겠지만. 그래요, 아주 드문 일이죠, 다행히도. 그런데 당신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열린 관뚜껑 주변을 배회하고 싶어 하는 사람 아닌가요?”
---「정상에서 맛보는 도취」중에서
“나이에 대한 사회의 ‘이중 잣대, 이중 저울’에서 생겨난 규범들에 대항해 적극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고 그에 불복종하면서. 되도록이면 오랫동안 소녀로 있다가 굴욕을 느끼는 중년 여성이 되고, 이어 혐오스런 늙은 여성이 되는 소녀에 머무는 게 아니라 훨씬 더 빨리 여성이 되고, 활동적 성인으로서 되도록이면 더 오랫동안 연애를 할 수 있다. 여성들에게 자신의 얼굴이 살아온 삶을 말하도록 해야 한다. 여성들은 진실을 말해야 한다.”
---「정상에서 맛보는 도취」중에서
그런데 사회는 애초부터 남녀에게 다른 능력을 요구하는 분야들, 능력의 가치 매김이 매우 다른 분야를 배당한다. 그 결과 여성은 대체로 형편없는 상황에 있다. 명망이 높은 분야, 정말로 중요하다고 여기는 분야에서 그녀들은 당연히 능력 부족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대신에 사회에서 등한시되고 무시받거나 때로는 정말로 보이지 않는 분야에서 능력을 개발한다. 자신감 또한 부족하다. 이런 우리의 무가치는 우리 스스로 내린 예단이다.
---「세상을 정복하라」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