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만근은 또한 책에 나오는 예(禮)는 몰라도 염습과 산역(山役) 같이 남이 꺼리는 일에는 누구보다 앞장을 섰고 동네 사람들도 서슴없이 그에게 그런 일을 맡겼다. 똥구덩이를 파고 우리를 짓고 벽돌 찍는 일 또한 황만근이 동네 사람 누구보다 많이 했다. 마을길 풀깎기, 도랑 청소, 공동우물 청소…… 용왕제에 쓸 돼지를 산 채로 묶어서 내다가 싫다고 요동질하는 돼지에게 때때옷을 입히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일에는 그가 최고의 전문가였다. 동네의 일, 남의 일, 궂은일에는 언제나 그가 있었다. 그런 일에 대한 댓가는 없거나(동네 일인 경우), 반값이거나(다른 사람의 농사일을 하는 경우), 제값이면(경운기와 함께 하는 경우) 공치사가 따랐다.
"반근아, 너는 우리 동네 아이고 어데 인정없는 대처 읍내 같은 데 갔으마 진작에 굶어죽어도 죽었다. 암만 바보라도 고마와할 줄 알아야 사람이다. 아나 어른이나 너한테는 다 고마운 사람인께 상 찡그리지 말고 인사 잘하도 다니라. 아이?"
황만근은 황재석씨의 이런 긴 사설을 들을 때조차 벙글거렸다. 일이 끝나면 굽신굽신 인사를 했다. 춤을 추듯이, 흥겹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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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환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그이 손을 잡으며 들릴락 말락하게 말했다. 나, 나 말야,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 주고 싶었어. 동환은 울기 시작했다. 자유? 자유롭게? 잘해주고 싶었던 게 아니고? 그는 의혹과 경이에 찬 눈으로 동환을 보고 있었다. 동환은 제 무릎을 끌어안고 비죽비죽 울었다. 울음소리 역시 들릴락말락했다.
--- p.75
나는 내기를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좋아했고 지금도 그렇다. 따라서 내기가 되는 대부분의 게임들을 좋아한다. 인생이 먼길을 걷는 것이라면 게임 또는 게임의 정화인 내기는 그 길가에 피어나는 꽃봉오리다. 단 지구상에 피어나는 꽃의 90퍼센트는 냄새가 없거나 심지어 더럽다는 것을 전제해두고서. 내기 좋아하다 패가망신에 이른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어른이 말씀하시면 제발 좀 들으시오.
--- 2002/07/12 (sciencepa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