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책과 책 읽기란 무엇일까?
인간에게 ‘책’과 ‘읽기’는 삶 그 자체다. 물론 단지 책 읽기가 삶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삶이 곧 책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책(인생)을 창조하기 위해 타인의 삶(책)을 참조한다. 과거의 사람이든 동시대의 사람이든 가리지 않는다. 이처럼 자신의 경험이나 삶을 통해 터득한 원리, 전승하고 싶은 주제가 있는 스토리 형태를 지닌 모든 것이 책이다. 반드시 문자나 그림이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어떤 자료가 담긴 CD나 전자책, 대화, 노래, 정보 등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흔히 책이라 일컫지 않는 것들도 넓은 의미에서 책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가장 오래된 책인 ‘종이로 된 꾸러미’에 대한 예우이기도 하다.
시대가 다양하고 풍요로울수록 책은 더 풍부한 매체를 만난다. ‘책’이라는 이름을 갖지 않았을 뿐 인류에게 책이 담당해왔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여러 ‘책’의 영역을 우리는 줄곧 인지하고 향유하며 생산하는 중이다. 읽기란 기억과 상상에 따라 과거와 미래를 넘나드는 초현재적 행위다. 책은 과거의 경험이고, 그 책을 읽는 행위는 현재의 일이지만 미래에 영향을 미치므로 책을 읽는 행위에는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들어 있다.
인간은 인류의 탄생 이래 시공간을 뛰어넘는 읽기 행위를 통해 자신의 삶을 보다 구체화하고 체계화해 생각의 폭을 넓혀왔고 문화와 가치를 획득했다. 그리고 문자를 개발하고 인쇄술을 발달시켜 읽기의 대중화를 꾀했고, 이는 기술과학이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지혜를 획득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개인적인 ‘읽기’가 사회적·문화적 가치를 지닌다는 말이다. 국가가 도서관을 건립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_38~39쪽
2장 제3의 공간, 도서관에서의 책 읽기
영어에서 도서관을 ‘Library’라고 하는데 이는 libr(기록을 남기는 천)과 ary(공간)가 합쳐진 단어로 고대 그리스어에서 비롯되었다. 풀어 말하면 ‘책이 있는 공간’이란 뜻이니 헌책방, 서점, 북카페, 개인 서재, 거실이 모두 Library가 될 수 있다. 그런데 같은 책이라도 어디에 놓였느냐에 따라 쓰임과 의미가 달라진다. 놓인 곳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 책이 되기도 한다. 헌책방은 책의 과거가 중요한 공간이다. 부산 보수동, 서울 인사동, 동대문, 인천 배다리 골목은 헌책방이 많기로 유명하다. 헌책방의 책들은 서점이나 도서관과 달리 대개 분류 없이(대형인터넷서점이 연 중고서점 같은 경우를 제외하고) 쌓여 있다. 헌책방은 책을 분류나 주제에 따라 고르는 곳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던 책을 ‘발견’하는 곳이다. 그래서 책 중에서도 특히 헌책을 사랑하는 이들은 기꺼이 책 속을 파헤치며 보물을 찾는다. ‘꼭 사야지’ 했다가 머뭇거리는 사이 절판된 책을 찾는 이도 있고, 초판이나 저자 사인이 들어 있어서 수집 가치가 있는 책을 찾는 이도 있다. 미술책이나 사진책은 새 책으로 구매할 경우 가격 부담이 커서 헌책방으로 나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 아니, 이런 책만 찾는 이들도 많다. 나 역시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 동대문 헌책방 거리에서 미술 관련 전집을 산 적이 있다. 미술 관련 서적은 아니지만 우리 아이들이 오랫동안 열광했던 《세계의 나무》(넥서스, 2003) 《자연의 빈자리》(지호, 2006)도 그런 경우다. 전시회가 아니면 보기 어려운 도록을 찾는 이도 헌책방으로 간다. 자신이 무엇을 찾는지 알지도 못한 채 헌책방 서가를 어슬렁거리다 어느 책 앞에 서서 마치 수십 년 동안 그 책을 찾아 헤매다 발견한 듯 소리를 지르며 열광하는 사람을 만나려면 헌책방으로 가라. 이들은 모두 책의 이력, 즉 과거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저자가 쓴 책의 내용만큼 책을 둘러싼 에피소드도 매력적이다. 앞서 읽은 사람이 그어놓은 줄이나 낙서에서도 의미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_43~44쪽
3장 아이와 함께하는 도서관 활용법
단호하게 말하지만 미취학 아동을 데리고 도서관에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고 책도 무척 좋아하지만 책과 책 읽기를 연령이나 상황에 상관없이 언제 어디서나 권하고 싶지는 않다. 모든 것에는 적절한 때가 있다. 과수원의 사과나무를 생각해보라. 사과나무는 사계절에 알맞은 생장활동을 한다. 봄에는 꽃을 피우고 여름에는 열매를 맺고 가을에는 열매를 숙성시킨다. 그리고 겨울에는 이 모든 것이 가능하도록 휴식을 취한다. 취학 전 영유아들은 시각 중심의 읽기보다는 우선 감각을 균형 있게 키우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 어린아이가 도서관에 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끊임없이 ‘뛰지 마라’ ‘조용히 해라’ 같은 말을 들어야 한다. 한창 호기심이 가득한 나이의 아이에게 조용히 하라고 타이르고, 뛰어놀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 뛰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면 아이들은 배우는 일에 움츠러들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을 위한 도서관은 어떠해야 할까? 숲과 가까운 곳에 있는 도서관이 가장 좋다. 큰길에서 10분 정도는 걸어서 도서관에 들어갈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용인시 동천동 고기리에 자리 잡은 ‘밤토실도서관’은 그런 면에서 아이들에게 좋은 도서관이다. 도서관으로 가는 길이 오솔길이다. 그 오솔길에는 계절마다 다른 꽃이 핀다. 게다가 여름에는 근처 논에서 벼가 자라는 모습을, 가을에는 은행이 아름답게 열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도서관 근처에 놀이터가 있다. 부모가 부러 도서관으로 가자며 이끌기 전에는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도서관으로 가지 않는다._65~68쪽
4장 책, 어떻게 읽을 것인가?
우리 집 서재를 보고 대부분 이렇게 묻는다. “이 책을 모두 읽었어요?” 비단 집에 찾아온 손님에게서만 그런 질문을 받는 것은 아니다.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에서 선정하는 ‘국경을 넘어서는 어린이 청소년 역사책’ 예심위원으로 같이 일하는 분들도 제목만 듣고도 내가 어떤 내용의 책인지 이야기하면 “어떻게 그렇게 많은 책에 대해 아느냐”며 다 읽느냐고 묻는다. 많은 책을 펼쳐본 건 맞지만 그 책들을 모두 읽지는 않았다. 누가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도서관에 있는 책을 모두 읽어야 할 필요는 없다. 앎과 무지, 기억과 망각이 적절하게 균형을 이룰 때 독서가는 이익을 얻는다”고 했다. 곧장 책을 읽기 시작하면 책이 보여주는 세상으로 들어가 길을 잃기 쉽다. 한 권의 책으로 세상을 전부 볼 수도 있지만, 세상에 대해 말하는 수만 가지 책이 있다는 걸 알고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은 또다른 시각을 준다._103~104쪽
한 권의 책을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 여기에서 권하는 방법은 모든 책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책의 종류에 따라, 읽는 상황에 따라 어떤 방식을 취할 것인가는 순전히 각자의 몫이다. 여기서는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어떻게 수많은 책을 읽을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먼저 책의 제목을 찬찬히 살피고 이런 생각을 한다. ‘제목을 통해 연상되는 것이 있는가?’ ‘저자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는가?’ ‘부제가 붙어 있다면 제목의 어떤 부분을 강조하고 있는 걸까?’ ‘제목으로는 미처 어떤 부분이 드러나지 않았기에 부제를 단 걸까?’ ‘어떤 경우에 저자는 부제를 붙일까?’
그런 다음 차례를 펼친다. 차례에 적힌 제목을 보고 내용이 대략 어떨지 생각한다. 책을 끝까지 모두 읽을 필요는 없지만 그 책이 끝까지 견지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는 책을 읽을 때 전체적인 그림을 놓치지 않고 읽는 좋은 방법이다. 또 저자의 논점을 파악하면 책 읽는 속도를 높일 수 있다. 저자의 생각을 가늠하면서 읽는 게 책을 더디 읽게 만드는 것 같지만 사실은 반대다. 오히려 본문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읽는 속도가 빨라진다. 쓴 사람과 읽는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것이 책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길이다._109~110쪽
5장 통섭의 책읽기, 컬렉션
예일대학교가 오늘날처럼 아동문학 분야에 가치 있는 성과를 내게 된 배경은 남북전쟁 때 사용된 화승총(15세기 후반에 유럽에서 발명되어 17∼18세기까지 사용되었다)을 수집하고 제작하는 취미를 가진 뉴저지의 어느 중년 남성 덕분이었다. 작업실에서 화승총을 제작하는 일에 골몰하는 남편 때문에 그의 아내 벳시 셜리는 몹시 심심해했는데, 그러던 어느 날 화승총 삽화가 들어간 대니얼 분이나 데이브 크로켓의 그림책을 남편에게 찾아주려고 저스틴 서점에 갔다. 그녀는 그날이 미국 아동문학이 세계 아동문학계에서 주요한 반열에 오를 수 있도록 만든 역사적인 날인지 미처 알지 못했다.
서점을 다녀온 뒤부터 벳시는 아동문학에 관한 것을 보이는 대로 수집하기 시작했는데, 오직 미국 아동문학에 관련한 것만 모았다. 유럽의 책을 번역한 것이든 엮은 것이든 상관치 않았지만, 미국 내에서 출간된 것만 사 모은 것이다. 당시 미국 아동문학계는 영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했다. 대부분 영국이나 유럽 도서의 번역서거나 초기 미국 사회가 아동에 대해 경험한 소수의 것들을 바탕으로 조잡하게 구성된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만의 색깔이 분명 있었다. 수집해서 한곳에 모아두지 않은 상태에서는 파악하기 어려운 지점이었다._137~138쪽
벳시 셜리의 컬렉션에서 보듯이 컬렉션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수집한 사람이지 개별적인 책이 아니다. 컬렉션 생산자는 개별적인 책에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1차 생산자의 의도보다는 수집자의 목적과 분류가 더 중요해지는 것이다. 1차 생산물의 의미가 재해석된다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컬렉션은 수집 목적 혹은 동기가 중요하다.
‘메모에 관한 자기계발서’라는 컬렉션으로 책을 엮으면 《센스만점 오대리의 메모 전략》(북폴리오, 2005) 같은 책이 중심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즉 개별 책에 함몰되지 않는다. 2013년 베스트셀러라는 제목 아래 묶이는 책도 마찬가지다. 《해리 포터》의 경우를 살펴보자. 2013년에도 여전히 《해리 포터》는 잘 읽히는 책 가운데 하나였다. 출간 이래 늘 베스트셀러였으므로 예사로 넘길 수 있다. 그러나 그 해에 자기계발서가 유난히 많이 주목을 받았는데, 《해리 포터》가 여전히 잘 읽힌다면 그 해의 《해리 포터》는 맨 처음 발간된 해의 모험상상소설로서의 의미만 가진 것은 아니라고 봐야 한다. 자기계발서가 많이 팔리는 시대에 《해리 포터》가 여전히 잘 팔린다는 것은 《해리 포터》를 자기계발의 의미로도 읽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자기계발서 코너에 해리 포터 시리즈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편을 갖다 놓으면 실제로 그렇게 읽힌다. 즉 1차 생산물인 《해리 포터》를 어느 주제로 분류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재해석되고 재창조된다._140~141쪽
6장 다양한 컬렉션
아이 한 명을 키우는 데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마을만 있다고 해서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그 안에는 무엇이 존재해야 할까? 아마도 걸어서 갈 만한 거리에 도서관, 미술관, 박물관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아이들에게만 그 공간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어른들에게도 도서관, 미술관, 박물관은 삶을 풍요롭게 하는 중요한 부분일 수 있다. 그렇다면 ‘도서관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다’라는 주제로 이와 관련한 책을 찾아볼 수 있겠다.
《듀이: 세계를 감동시킨 도서관 고양이》(갤리온, 2009)의 작가 비키 마이런은 미국 아이오와 주 스펜서 시 근방에서 태어났다. 30대 초에 싱글 맘이 된 그녀는 그때부터 도서관에서 근무하기 시작했다. 어느 겨울날 그녀는 누군가가 도서반납함에 버리고 간 고양이를 발견하고 그 고양이에게 ‘듀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근대 도서관의 근간을 만든 사람의 이름이 바로 듀이였기 때문이다. 고양이 듀이는 비키 마이런의 삶의 동반자가 된다. 그리고 20여 년 동안 듀이는 그녀만이 아니라 도서관을 중심으로 한 마을의 일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마을 사람들은 고양이의 이름이 무엇인지, 어떻게 도서관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호기심에 묻기 시작했고, 이는 나중에 온 동네를 생기 있게 변화시킨다. 대공황 이후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사람들의 삶이 고단하던 시기에 듀이는 도서관을 찾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과 안식을 주었다. 실업자든, 노인이든, 장애인이든 고양이 듀이가 주는 사랑은 동일했다. 이를 발판 삼아 민주주의사회를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평등하게 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게 된 도서관은 시민을 위한 평생교육기관으로 변모해간다. 도서관이 우리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그리고 도서관의 어떤 점이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 잘 드러나 있는 실화다. ‘우리는 왜 도서관을 찾는가’ ‘도서관에서 무엇을 추구하는가’에 대한 깊은 통찰을 얻을 수 있다._157~158쪽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