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디자인이란 무엇일까? 첫 문장
이 책은 인간 중심의 건축 디자인을 ‘빛, 자연, 물질성, 색, 공동체’ 이렇게 다섯 가지 본질적 분류로 나누어 설명한다. 전 세계 25곳이 넘는 주택과 숙소, 상점, 미술관, 학교 등의 사례로 햅틱(촉각) 디자인이 인간의 감각을 얼마나 섬세하게 만들고 풍부한 경험을 하게 만드는지 보여줄 것이다. 서문
“구조물은 은은하게 빛나는 흰 벽에서 뒤로 물로나 있다. 마치 투명한 회색 그림자의 틀에 매달려 있는 듯하다. 빛으로 된 새장이 거대한 콘크리트를 가둔 꼴이다.”(대한민국 서울, 아크네 스튜디오) --- p.15
“자연광은 소중하고 아름다운 빛이다. 낮에는 자연광을 흠뻑 흡수하고, 늦은 오후와 저녁에는 빛을 최소화한다. 유리창으로 들어온 햇빛이 계절의 변화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시각각 다르게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을 보는 일은 참으로 근사하다.”(일본 도쿄, 야쿠모 사료) --- p.26
디자이너들은 그림자를 이용해 빛의 아름다움을 강조하곤 한다. 나무를 심어 잔디밭과 길에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고, 나무의 그림자로 거친 건물 외벽에 글자를 휘갈겨 쓴 것 같은 효과를 내기도 한다. --- p.29
우리 프로젝트의 기본적인 요소는 단순함, 질서, 감성이다. 자연광이든 인공광이든 빛은 가장 중요한 요소다. 낮 동안에는 자연광에 의존하는데, 이는 이 공간이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이야기이자 그 안에 마법이 숨어 있다는 뜻이다.(에스파냐 발렌시아, 리카르 카마레나 레스토랑) --- p.45
똑같은 방에서 여러 사람이 각각 사진을 찍으면 저마다 그 방을 다르게 해석하죠. 똑같은 카메라, 똑같은 위치에서 찍어도 다 달라요. 건축가 역시 선택한 재료를 사용하는 방법이 다 다릅니다. 차갑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것을 에디팅editing이라고 합니다. --- p. 47
초현실적인 걸작. 집. 바르셀로나 가장자리에 울리는 미완성 교향곡. 조각가 자비에르 코르베로의 카탈루냐 사유지를 통과하는 논리적인 길은 없으며 물리적인 법칙이 적용되는 것들 외에는 그 기이함에 한계가 없다.(에스파냐 바르셀로나, 코르베로 레지던스) --- p.50
바위와 나무로 뒤덮인 푸른 산자락 교외의 집. 거의 모든 면이 거울로 되어 있어 주변의 작은 풀들까지 비춘다. 미풍에 나뭇잎들이 흔들리거나 하늘의 구름이 바뀔 때마다 집의 모습도 시시각각 달라진다.(멕시코 몬테레이, 로스 테레노스) --- p.70
현대의 휘황찬란한 미술관 건축은 그 안에 담긴 작품들을 가리거나 그 맥락을 급격하게 변화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루이지애나 미술관은 그 대안을 제시한다. 이 공간은 매우 인간적이며 또한 실재적이다. 물리적으로나 손에 만져지는 명백함으로나 진정성으로나, 디지털이 지배하는 이런 시대일수록 이런 건축물은 더욱 귀중하다.(덴마크 훔레벡, 루이지애나 미술관) --- p.93
건축이란 건물을 짓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때론 무언가를 없애는 것도 건축이 될 수 있다.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데 코티스 레지던스도 그런 프로젝트다. 이 공간은 18세기 공간이 지닌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에 대한 오마주이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낡아 가는 것에 매료된 건축가의 정서가 잘 반영되어 있다.(이탈리아 밀라노, 데 코티스 레지던스) --- p.110
각 방에서 눈을 옆으로 돌리면 자작나무들 사이로 언뜻언뜻 호수가 펼쳐지는 바깥 풍경이 보인다. 가족에게, 자연에게, 집에게 느껴지는 이 유대감은 놈 아키텍츠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다. 놈 아키텍츠는 보기 좋은 공간뿐 아니라 느낌이 좋은 공간을 만든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며, 인간의 감각을 끌어올려 행복이 깃드는 공간을 만들고자 한다. 이곳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편안한 모습이 되고, 숲과 호수, 눈과 어우러져 더욱 고요해질 것이다.(노르웨이 예비크, 예비크 하우스) --- p.127
어둠은 오명을 쓰곤 한다. 인테리어에서는 어둠이 공간을 작고, 좁아 보이고, 답답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우리가 어둠에 대해 잘 모르는 게 있다. 때론 어둠도 인간의 의식이 열망하는 환경이다. 둥지는 어둡다. 동굴도, 자궁도 어둡다.(브라질 상파울루, 플랫 #5) --- p.134
프랑스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이 모로코를 유독 사랑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생 로랑은 휴식과 영감을 위해 마라케시를 즐겨 찾았다. 그의 연인이자 사업 파트너였던 피에르 베르제는 그를 기리기 위해 그의 유골이 있는 자르댕 마조렐 옆에 이 박물관을 지었다.(모로코 마라케시, 이브 생 로랑 박물관) 142
르코르뷔지에는 ‘새로운 건축의 5원칙’에 집착했다. 기둥들이 에메랄드색과 회색으로 뒤덮인 도시 위로 건물을 밀어 올렸다. 이렇게 떠 있는 구조는 자유롭고, 공기가 통하고, 탁 트인 설계를 가능하게 했다. 이 자유로움은 45개의 혁신적인 방들을 만들었다. 건축 비용을 줄이고 학생들의 불안을 누그러트리는 급진적인 설계였다. 각 방마다 수납공간, 화장실, 파노라마식 학습 공간을 결합했다. 면적이 16제곱센티미터에 불과하기에 기능적이어야 했다. 노닥거리고, 연애하고, 알베르 카뮈를 읽을 정도의 공간이면 충분했다.(프랑스 파리, 파밀리온 스위스) --- p.206
한국의 문화유산이 과거에만 머물지 않게 하기 위해 아름지기 재단은 한국의 5,000년 디자인 역사의 정수를 추출해 빛이 가득한 서울 본부에 담았다. 전통 한옥부터 한복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재해석해 현대에 접목하고 있다.(대한민국 서울, 아름지기 재단) --- p.213
‘공동체’라는 말은 원래 지리적 의미만을 지녔었다. 하지만 이제는 공유하는 관심사, 정치적 신념, 성별, 종교, 윤리적 기원 등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진화했다. 건축가들의 고민은 깊어졌다. 공동체라는 개념이 이토록 유연하고 소속감이라는 개념이 공간과 분리된 이 시기에 어떻게 공동체가 활발한 공간을 계획할 수 있을까? --- p.231
칸딘스키는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이 색을 보는 것은 두 가지 효과를 유발한다고 했다. 첫 번째는 물리적인 효과다. 맛있는 것을 먹을 때와 마찬가지로 눈에 즐거움을 주는 것. 하지만 물리적 효과보다 더 오래 지속되는 것은 색의 심리적 효과다. 그는 “색은 그에 상응하는 영혼의 떨림을 향해 나아가는 단계일 뿐이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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