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는 신체만 공격하는 게 아니라 마음도 공격한다. 이 분야 전문가 리차드 브로디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결정짓는데 마음 바이러스(Virus of the mind)가 큰 영향을 준다고 했다. 마음 바이러스는 사람들을 감염시킴으로써 부정의 마음을 먹게 되면 어두운 바이러스가, 긍정의 마음을 먹으면 희망의 바이러스가 전염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과 행복에 대해서 한 번 되돌아보고 향후 미래방향을 전환해보는데 이 책이 작은 거울이 되고, 각자가 ‘생각근육,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데 조그마한 보탬이 된다면 큰 보람이 아닐 수 없다.
---「발간사: 멈춰 서서 보니 소중한 것들」중에서
인류가 겪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도 모기의 역할과 비슷하다는생각이 든다. 인간은 신이 부여한 재능으로 찬란한 문명과 물질적 풍요를 일구었다. 바야흐로 세계 어느 곳이든 여행하고 서로 만날 수 있는 초연결 시대가 열렸다. 하지만 인간은 만남과 소통의 가치를 망각한 채 서로 편을 갈라 헐뜯고 싸우기에 바쁘다. 이런 불행을 멈춰 세우기 위해 신께서 내리신 극약처방이 코로나이다. 잠시 일상의 선물을 거두어 각자의 삶을 돌아보게 하려는 신의 원려가 숨어있다는 이야기다.
---「신은 왜 모기를 창조하셨을까」중에서
수백 명을 웃돌던 하루 확진자 수가 4월 되자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지역에서 한 사람의 확진자도 발생하지 않았던 날, ‘0‘이라는 숫자를 보면서 가슴이 뭉클하였다. 하지만, 바로 다음 날에 또 이어지는 숫자를 보면서 그래도 날마다 살얼음판을 걷듯이, 불이 나고 난 뒤 잔불이 다시 일어날까 봐 조심스레 뒤돌아보면서 살피고 또 살피면서 ‘꺼진 불도 다시 보자.’ 하는 마음으로 보내야겠구나, 생각을 가다듬는다.
---「코로나19와 전쟁을 겪으며」중에서
갇힌 생활이 갑갑할 때면 드넓은 센트럴파크를 산책하던 날을 떠올린다. …… 공원이 하도 넓어 구글 맵을 보며 찾아간 그곳. 바닥에 흰색과 회색의 수많은 작은 타일을 사용해서 만든 큰 원이 있고, 원 한가운데에는 ‘IMAGINE’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그 글자 위에 누군가 바치고 간 붉은 장미 한 송이, 생각보다 소박했다. 그래서 더 좋았다. 존 레넌이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며 만든 곡을 버스커가 기타를 치며 노래하고 사람들은 따라 불렀다.
---「코로나19 다이어리 in 뉴욕」중에서
예상치 못했던 세상과의 단절은 또 다른 단합을 불러온 셈이다. 밖에서 찾던 행복은 내 안으로 시선을 돌리게 했고, 좀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애썼던 모든 활동은 이제 살아남기 위한 전략으로 바뀌었다. 위대한 건축물이나 웅대한 자연경관을 선망하며 그토록 여행 가방을 자주 쌌는데,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우리 동네 벚꽃길이 이토록 아름답다는 것을 발견한 지금은 그러한 욕망이 사라지고 없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인간의 생존양식이 소유에서 존재의 축으로 저울추가 기우는 현장을 목격한 셈이다.
---「단절 속에서 찾은 행복」중에서
개인주의가 확산되면서 1인 미디어, 커피숍, 배달문화, 화상 미팅, 원격의료가 비즈니스 흐름으로 정착되고 제4차 산업혁명의 본격화로 기존 산업의 구조조정, 재편, 새로운 일자리 출현이 예상된다. 당연하게 1인 기업의 증가로 프리랜서, 크라우드워커, 긱워커가 늘어난다. 당연하게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면서, 놀이와 공부, 놀이와 일, 일과 쉼, 집과 사무실을 통합하는 공간인 홉시와 이러한 삶을 즐기는 홉시언스족이 확산될 것이다.
---「새로운 신인류 호모 홉시언스」중에서
등교 일수를 지금의 반으로 줄이고, 반은 원격수업을 하게 하면 어떨까? 날씨가 춥거나 더운 날은 6개월 이상 원격수업을 하고, 날씨 좋은 봄가을은 방학으로 마음껏 뛰놀고 즐기게 하면 어떨까? 교육 경비도 훨씬 적게 들고 학생들도 자기계발의 기회를 많이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일부 특권층이나 누리는 강남 고액과외도 잘하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강남 스타강사의 강의를 전국에서 누구나, 산골 학생도 화면을 통해 듣고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학교도 안 가고 출근도 아니하고… 아니 즐거울 수가!」중에서
코로나 이후의 삶은 또 다른 기술발달로 새로운 디지털 문화를 다양하게 생산해낼 것이다. 특히 비대면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하는 것을 보고 따라하기 마련이라 세상의 변화를 부정하지 말고 빨리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정확히 파악하여 아이들에게도 올바른 정보를 전달해줄 수 있는 부모가 되려면 코로나 이후에 부모가 할 일이 또 하나 생긴 게 틀림없다. 일본 속담에 “아이들은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는 말이 이번 기회에 실감나기도 하지만 무섭게 들리는 이유다.
---「아이들은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중에서
20여 년 전 레이 커즈와일이 ‘특이점(Singulality)’이 온다고 한 2040년 새해가 밝았다. 그가 인공지능 기계가 인류의 역량을 비로소 뛰어넘는다고 호언장담한 날이다. 이른바 AI 르네상스가 드디어 만개했다. 지난 세월 동안 수많은 사회 변혁과 삶의 변화가 있었다. 2020년대의 코로나 사태 이후 지구촌은 여러 차례 변형 바이러스의 침공을 받으며 쪼그라들었다. 글 쓰는 작가란 직업 세계도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어 코쿤(Cocoon)화 되었다. 그때는 글쓰기 작가 동호인 대면 모임도 왕성했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사이버 세계로 비대면 네트워크화 되었다.
---「AI 르네상스- 인공지능 책쓰기 책봇 이야기」중에서
그러나 일상 회복을 꼭 기뻐해야 할까? 종교적 의미를 떠나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으면’ 얼마나 지겨울까? 인류 역사가 바이러스와의 싸움으로 창출되는 것이라면 ‘내일은 다시 내일의 바이러스’가 떠오르지 않을까? 그래서 일상은 지키는 것이 아니라 바꿔나가는 것이라고 하는가? 앞에서 인용한 ‘맨주먹 붉은 피’ 노랫말은 이렇게 이어진다. ‘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무엇을 숨기랴, 지금은 거의 부르지 않는 6·25 노래다. 코로나 이후를 바라보는 지금은 이런 기개로 ‘내일의 바이러스’와 맞설 각오를 다녀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일상을 우리 뜻대로 바꾸고 지키기 위해서는.
---「내일은 ‘내일의 바이러스’가 뜬다」중에서
미생물에 지나지 않는 코로나는 철학자도 아닌 주제에 부자든, 가난뱅이든,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많은 것을 생각하도록 시련을 던져 주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고통의 힘든 시간이겠지만 누구에게는 선물일 수도 있다. 위기(危機)의 한자를 쪼개보면 위험도 있지만 기회가 같이 있다. 그렇지만 기회는 미리 준비된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법이다. 나는 이번 코로나가 멈추게 한 이 상황을 하던 일의 중단이나 고난이 아니라 새로운 삶이나 미래를 어떻게 바꾸고 준비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삶의 쉼표’가 되는 기회로 삼기로 했다.
---「삶에도 쉼표가 필요하다」중에서
필자에게 코로나19와 언택트가 큰 선물을 안겨주었다. 필자는 언택트를 실행하여 공자가 말한 ‘고난을 통해 배우는 사람(곤이학지자)’이 되었다. 성공한 사람의 삶은 대부분이 배워서 알지만, 때로는 고난을 통해서 알게 된다. 두 달 동안 재택을 하는 동안 필자는 의식과 생각에 변화가 일어났다. 이번 기회에 가사 즉 주방에 관한 일을 반이라도 하여 아내의 부담을 덜어주기로 하였다. 마트에 함께 가고, 식사를 준비하고, 설거지를 하고, 집안 청소를 하고, 세탁기로 세탁을 하는 등 가사의 반을 해보았다. 코로나19가 아내의 집안일을 이해하게 해주고 몸소 실행해보니 아내 존재의 고마움을 새삼 느끼게 해주었다. 아내 역시 가사 일의 부담을 조금 덜어서인지 코로나19가 고맙다는 농담을 한다.
---「언택트(Untact)는 기회다」중에서
인간만이 아니라 코로나 바이러스도 우리 삶의 일원이라는 것을 가슴으로 느낀다면 무서워할 존재가 아니라 살살 달래서 함께 살도록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남 탓 아닌 내 탓에서 자기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는 방법은 육하원칙(5W1H)에 있다. 고통스럽게 존재하는 지금(When), 여기(Where), 자기 자신(Who)은 무엇인가? 고통의 근본 원인(Why)은 무엇인가? 고통이 사라진 바람직한 행복(What)은 어떤 것인가? 고통에서 행복으로 가려면 어떻게(How) 해야 하나? 창조는 물음표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덕분입니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