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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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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8월 12일
쪽수, 무게, 크기 290쪽 | 128*188*20mm
ISBN13 9791198847881
ISBN10 1198847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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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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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195개의 나라, 그중 인구 15만 명이 넘는 4,416개의 도시 중에 하필 이 시점에서 프라하가 나올 확률은 몇 퍼센트일까. 순간 강한 펀치 한 방에 쓰러진 복서가 보였다. 숱한 잽을 요리조리 잘도 피했으나 마지막 라운드에 가서 깊고 날이 선 펀치를, 복서는 기어이 맞고 말았다. 마지막 종소리가 울리지만 복서는 일어나지 못했다. 딱 지금 내 감정이 그랬다. 죽을 만큼 숨을 헐떡이며 링 위에 쓰러진 복서의 마음처럼. 망연자실한 채 누워서 까만 천장을 바라보다 결국 눈을 감아버리는 복서의 시간을, 나는 천천히 더듬고 있었다.
--- p.38 「미나의 시간」중에서

우리는 방향을 잃고 정처 없이 떠도는 낙엽의 길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때 깨달았어야 했다. 우리가 어떤 목적지도 없는 공허한 시간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음을. 절벽으로 끝없이 낙하하는 자물쇠 열쇠 뒤로 그저 아득한 밤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 p.55 「미나의 시간」중에서

사람들은 종종걸음으로 횡단보도를 우르르 건너가고, 몰려왔다. 꼭 물결치는 큰 파도처럼 사람들이 밀려오고 쓸려가는 시간. 이 시간을 연속 촬영해 연결하면 우리는 머지않아 바다가 될 것이다.
--- p.69 「미나의 시간」중에서

바래진 시간 속에서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결정적 장면. 문득 그 애에게 썼던 부치지 못한 편지들을 떠올렸다. 일 년이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편지들을 갈기갈기 찢어서 버릴 시간은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 편지들을 수없이 어디론가 내던졌으나 조각난 잔상들은 여전히 내 안에서 나뒹굴었다. 그로부터 수많은 계절이 지났음에도 나는 여전히 여기, 한겨울에 살고 있었다. 한 줌의 빛을 받아 자라나고 시들기를 반복하는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거리며.

겨울잠을 자는 짐승들 옆에서 눈이 쌓이고 녹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땅바닥을 짚은 손바닥에 미약하게 꿈틀거리는 봄의 태동이 닿길 바라며 나는 계속 이곳에 머물러있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내가 한때 소유했던, 영원할 것만 같았던 장면들이 차츰 사라졌다. 언 땅바닥에 뺨을 대고 누웠다. 어떠한 미동도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삶 속에서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그 애의 장면들을 수집하는 것뿐. 그 애의 세계 속에서 여전히 살고 있었다. 나는.
--- pp.111-112 「미나의 시간」중에서

우리는 말없이 벤치에서 한강을 바라봤다. 물결은 갓 잡아 올린, 숨을 펄떡이는 생선처럼 출렁거렸다. 나는 한 손을 들어 허공에서 물결을 쓰다듬었다. 꼭 생선의 눈을 감겨주듯이, 그들의 마지막 순간을 추모하듯이.
“우리가 친구가 되어서 그런가 봐. 기분이 너무 좋아졌어.” 쥐가 눈을 반쯤 감으며 말했다.
“술 때문이야.” 나는 애써 그렇게 말했지만 술을 마시기 전부터 기분이 좋아진 것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잡히지 않았던 하루의 끝이 이제야 온전히 잡힌 것 같았다.
--- p.239 「고양이」중에서

하늘에는 학생의 흰 손목을 닮은 낮달이 구름에 가렸다가 나왔다가 했다. 꼭 심폐소생술 박자에 맞춘 것처럼.
--- p.247 「어떤, 진실 같은 것」중에서

우리 앞에 펼쳐진 한강은 조용했다. 나는 생각했다. 우리는 사실 파인애플 같은 사람들이라고. 그런 생각을 하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 p.257 「파인애플」중에서

소녀가 다녀간 다음, 또 며칠을 거기 있던 기억들을 주워 담아 간신히 살아갔어. 소녀를 생각하는 일, 춥고 어두운 밤 언저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었으니까.
--- p.268 「바다 Ⅱ」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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