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가르쳐 줄까?” “…….” “너 여기 있으면 죽어.” 바닥을 향하였던 초록색 눈동자가 다시 여자를 바라보았다. 방금의 당혹은 깨끗이 사라지고 잔잔하게 가라앉은 생쥐의 그 눈빛에, 여자의 미소가 일순 흐려졌다. 그녀가 재차 말했다. “못 알아들었어? 죽는다고.” “네.” “네?” 네라고? 이번에는 여자가 당황해버렸다. 죽는다는데, 네라고? “너 혹시 죽는다는 말 몰라? 바보야?” “아뇨.” 지식의 수준은 바닥이지만 일상적인 대화까지 못 할 정도는 아니었다. 생쥐는 천천히 고개를 젓고는 대답했다. “알아요.” “그런데 왜…….” “저는 여기서 죽을 거예요.” 생쥐는 활짝 미소 지었다. 달콤한 이야기였다. 그녀는 문 너머에 멈추어 있던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그러고는 느릿하게 고개를 움직여 자신의 침실을 바라보았다. 깨끗하고 부드러운 이불이 깔린 푹신한 침대, 새하얗게 칠해진 예쁜 테이블, 금빛 햇살이 스며들어오는 창문과 하늘거리는 얇은 커튼, 섬세한 조각이 들어간 장식장과 옷장. 얼룩도 곰팡이도 없는 벽에는 풍경화도 한 점 걸려 있었다. 이런 곳에서 죽는다. 물론 생쥐라고 하여 살고 싶다는 본능적인 욕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미래는 절망에 빠지기 충분할 정도로 어두웠다. 이곳에서 쫓겨나면 이내 다시 뒷골목으로 끌려가고 만다. 깨끗해진 모습으론 당연히 여자라는 사실이 들통 날 터이고, 당장 사내들의 욕망에 짓밟히는 결말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서른 살은 더 많은 남자에게 강간당하고, 식당의 창녀로서 거칠기 그지없는 사내들에게 유린당하다가 늙어 쓸모없어지면 더러운 길거리로 내몰려 이내 차디찬 시체가 되어 구덩이에 버려지는 미래가. 희망 따윈 일말도 없었다. 죽고 싶지 않다. 허나 사는 것이 더 무섭고 끔찍하다. 생쥐는 방 가운데 서서 빙그르 맴을 돌았다. 프릴이 치렁한 드레스 자락이 몸짓을 따라 풍성하게 흔들렸다. 원래대로라면 꿈조차 꾸지 못한 것들이었다. 앞으로 길어야 30년, 짧으면 20년. 늙어빠진 창녀가 되어 버림받을 때까지의 그 세월을 모두 바친대도 좋을 것들. 이렇게 살 수 있다면 내일 죽는대도 행복해. “여기서 죽을 거예요.” 다시 한 번 반복되는 또렷한 목소리에 여자의 눈가가 잔뜩 찌푸려졌다. “……미친년 아냐.” 생쥐는 흠칫 그녀를 바라보았다. 밀레즈가 귀족 아가씨는 항상 고운 말만 써야 한다고 했었는데. “저기, 그런데 누구세요?” 뒤늦은 생쥐의 물음에 여자가 등을 곧게 당당히 펴며 대답했다. “아리에스 살타토르. 진짜 살타토르 영애다. 그리고 너는 내 대신 죽는 거야.” “……대신?” “그래. 그러니까…….” 아리에스는 잠시 단어를 고르다가 입꼬리를 스윽 올리며 말했다. “용에게 잡아먹히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