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의미를 찾으려 고군분투하는 나의 친구들에게, 글쓰기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궁금한 초심자들에게, 무엇보다 자신의 인생에 밝은 햇살을 선물하려는 당신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수려한 문장력을 키워주는 작법 기술이 아니라 부담 덩어리인 줄로만 알았던 ‘글쓰기’라는 행위가 사실은 무척 친근한 녀석이었다는 알아차림이다. 글쓰기는 어렵지 않다. 부담스럽지도 않다. 무엇보다 즐겁게 쓸 수 있다. 지극히 평범한 나도 했으니, 여러분은 더 잘할 거다. 쓰기와 일상을 버무린 이야기를 따라가며 ‘이 정도면 나도 쓰겠다’라는 용기를 한껏 받아 가길 바란다.
특별함이라고는 일도 없던, 유튜브와 웹툰에 빠져 살던 한 인간이 쓰는 사람이 되기로 하고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의 ‘쓰기’를 돌아보니 알겠다. 일과 육아에 시달리면서 짬을 내고, 자주 점심을 거르고, 꿀 같은 주말 새벽에도 벌떡 일어나 무인 카페로 향했던 이유는 그저 행복해지고 싶었을 뿐이다. 이제 나는 라이트라이팅을 감히 ‘행복을 시도하는 행위’라고 부른다. 이 책을 읽고 여러분 중 단 한 사람이라도 라이트라이팅을 시작한다면, 그래서 전에는 볼 수 없던 행복을 마주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 「프롤로그」 중에서
지난날의 나는 참 부정적인 사람이었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뭐랄까, 마음속에 빅사이즈의 피해 의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내 의도는 이게 아닌데, 왜 사람들이 싫어하지? 왜 나를 시기하지?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실제로 그랬는지와는 상관없이 오랜 시간 동안 쌓여 온 부정적인 생각은 나를 우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사람이 싫었고, 세상이 싫었고, 나 자신도 싫었다.
하지만 이런 찌질한 생각들은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조금씩 변해갔다. 물론 여전히 모자라고 쭈글쭈글한 인간이지만, 그래도 그때에 비하면 상전벽해 괄목상대 신장개업 수준이다. 이 모든 변화는 다름 아닌 ‘글쓰기’ 덕분이다.
--- p.20
누군가 내게 물었다. 일상에서 글쓰기 소재를 건져 올리는 특별한 방법이 있느냐고. 그럴 때마다 나는 일관되게 말한다. 보라고. 그냥 보지 말고 무엇이든 자세히 보라고. 즉, ‘관찰’이다.
주변을 관찰하고, 풍경을 관찰하고, 사람을 관찰하고, 나의 경험과 생각도 관찰하는 것이다. 글감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계속해서 보고, 또 보고, 다시 봐야 생기는 법.
그런데 오늘 글을 쓰면서 여기에 반드시 하나가 추가되어야 함을 깨달았다. 자세히 들여다본다고 해서 보이지 않던 의미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건 아니니까. 물론 라이트라이팅에서 관찰의 힘은 굉장히 중요하지만, 핵심은 다음의 문장에 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말 것.
--- p.33∼34
나의 글쓰기 루틴인 ‘점심 밥굶글’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밥을 왜 안 먹느냐는 동료들의 핀잔에 1일 1식, 다이어트, 몸매 관리 등의 거창한 사유로 응수했다. 사람들은 식당으로, 나는 카페로. 한 시간 남짓인 점심시간은 나에게는 굉장히 어메이징한 시간이 된다. 오케이, 지금부터 시작이다.
오늘 목표는 짧은 글 한 꼭지다. 어제 아파트 야시장에서 국화빵을 보며 아버지를 생각했던 것을 써야겠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면을 사정없이 적어 내려간다. 내용이 좀 이상해도, 문맥이 안 맞는 기분이 들어도 개의치 않는다. 쓰면서 퇴고까지 하기엔 시간이 부족하다. 조금 있으면 다시 회사로 들어가야 하니까.
나는 이것을 ‘타임 어택 글쓰기’ 혹은 ‘리미티드 글쓰기’라 부른다. 제한 시간 내에 목표 분량을 채우려면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다. 글과 관련된 생각만이 머릿속을 채운다. 한 글자 한 글자 타이핑하며 초집중을 이어간다. 한 줄, 한 문단, 아주 거칠고 모난 글, 날 것 그대로의 초고가 가까스로 완성된다.
퇴고는 필요 없다. 어차피 지금 못 하니 다음 기회로 미룬다. 메모장에 적힌 글을 쓱 읽고 노트북 뚜껑을 덮는다. 그러고는 부지런히 회사로 발걸음을 옮긴다.
--- p.50∼51
라이트라이팅은 ‘어둠’을 바라보는 시각이 미래지향적임을 의미한다. 나쁜 일이 생기더라도, 거기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보다는 한 발짝 물러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이다. 괴로움으로 끝나지 않고,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라이트라이팅의 핵심이다.
부정적인 이야기를 글로 풀어낼 때 쓰기의 마법은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덩어리를 꺼내 활자로 옮기는 순간, 뜨겁게 달궈져 여기저기 생채기를 내던 마음이 서서히 식어 간다. 부정적인 감정에 휩쓸리지 않을 힘을 비로소 얻게 되는 셈이다. 이제 ‘다음’을 생각할 수 있다. 부정이 긍정이 되는, 빛나는 순간이다.
항상 행복할 수 없다. 하지만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할 수는 있다. 행복을 찾으려면 시간과 노력을 투입해야 한다. 라이트라이팅은 효과적인 툴이다. 어둠을 밝음으로 바꾸는 연습을 반복한다면, 결국 ‘시커먼 어둠’도 ‘밝음 속에 있는 어둠’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면 게임 끝이다. 우리 모두 어둠을 품은 밝음이니까 가능한 일이다.
--- p.76∼77
글을 쓴다는 것에 너무 큰 부담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글쓰기는 변주곡이다. 빨라져도 느려져도 괜찮다. 여전히 나의 노래는 재생 중이니까. 비록 연주 실력이 뛰어나지 못해 속도 조절이 잘 안되고 중간중간 틀리기도 하지만, 어차피 이 노래는 스스로 끝내기 전에는 절대로 끝나지 않는다. 연주자로 나선 내가 이번 생에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완벽하게 소화할 수는 없겠지만, 피아노를 배우고, 두드리고, 연주하고, 듣는 과정이 즐겁다면 중간에 틀리고 음이 어긋나고 어설퍼도 괜찮은 거 아니겠나. 그러니까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어차피 건너야 할 호수이고 강이고 바다라면, 열심히 건너면서 이 ‘쉬어도불안해병’을 정복해 볼 테다. 언젠가는 내 귀에도 매끄러운 피아노 소리가 들려오길 희망하면서.
--- p.88
인생은 고통과 권태의 반복이 아니다. 힘든 일, 슬픈 일, 짜증 나는 일을 어찌어찌 감당하고 버티고 슬쩍 비켜 가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건, 가끔 만나는 즐거운 경험과 아름다운 존재와 기쁨의 시간이다. 상처와 괴로움을 영원히 지워버릴 수 없다고 해도, 작은 행복을 쌓아 큼지막한 아픔의 공간을 채워가는 것. 어쩌면 이 험한 세상을 살아내는 꽤 괜찮은 방법일지도 모른다. 행복을 찾아 삶의 곳간을 채우는 일. 그것은 쓰는 사람만이 받을 수 있는 특권이자 선물이다.
나는 몇 개의 단어로 독자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문장가는 아니다. 가슴이 울리는 표현도,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멋들어진 비유와 은유도 어렵기만 하다. 하지만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글쓰기를 이어 오며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쓰지 않던 사람’을 쓰기의 세계로 초대하고자 한다. 글쓰기가 즐겁고 자기 자신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훌륭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에게 전파하고 싶다.
--- 「에필로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