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적 타락(Total Depravity)
칼빈주의의 5대 교리 가운데 첫 번째 교리는 “전적 타락” 혹은 “전적 부패”라고 하는 교리이다. 이 교리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죄와 허물로 죽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 동안 여러 상황에 처해 있는 수십 명의 칼빈주의자들과 극단적 칼빈주의자들을 상대해 온 필자는 이 책의 어느 곳에서도 그들의 입장을 곡해하여 그릇되게 제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들은 그들 자신이 박해를 받는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다. 만일 이런 문제들에 관해 당신이 이야기를 꺼내게 되면 그들은 “아, 아닙니다. 우리는 그런 것을 믿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그들과 30분 동안만 이야기해 보면 그들은 당신이 말했던 바로 그것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예컨대, 모든 거듭난 그리스도인과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해 주실 만큼 영적으로 선한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 것이다. 이런 사실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구원을 받기 위해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라고 말씀하신 것을 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우리가 비성경적이라고 말하는 전적 타락에 대한 가르침은 말 그대로 비성경적인 이단의 가르침이다. 어떤 사람이 “전적 타락”이라고 말할 때에 그는 그 타락이 의지에까지 미친다고 말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죄인이 허물과 죄(그의 주장대로라면 에베소서 2:1-4에 근거한다) 가운데 죽었기 때문에 비록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라고 명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없다.
벌콥, 질, 댑니, 핫지, 그리고 그 외 청교도들은 한결같이 주장하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계명을 지키라고 명령하셨으나, 그들은 계명을 지킬 수 없었다.”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계명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선생일 뿐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지키지 못할 것을 아시면서도 율법을 주셨다는 말이 된다. 또 그 율법이 우리를 우리의 죄와 허물로 죽게 하고, 부패되며 희망도 없고 법을 지킬 수도 없다는 (육신적인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율법을 지킬 수도 없기 때문에) 깨달음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다.
요한은 그의 서신서에서 계명이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구절 때문에 칼빈주의자들은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또 하나의 계명(행위)으로 만들어 아무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다고 가르친다. 칼빈은 이처럼 한 걸음 더 나아가 이것이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기는 하지만, 우리가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게 될 때가 되어도,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없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물론 칼빈주의자는 자신의 말을 완전히 번복해서 “아니오, 그것은 우리가 가르치는 바가 아닙니다.”라고 발뺌하며 다른 성경 구절을 인용해서 자신을 변호할 것이다. 자, 이제 이 작은 책에서 그들이 즐겨 사용하는 그 모든 구절들을 천천히 토론해 나가기로 하자.
극단적 칼빈주의자는 극단적 세대주의자나 여호와의 증인, 그리고 그리스도의 교회 등과 마찬가지로 이른바 순환논법(circular pattern of reasoning)을 사용한다. 즉 성경을 대하기는 하지만 그 성경 말씀 안에 머물지를 못한 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적 타락을 증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구절은 에베소서 2:1-4까지이며, 특히 『허물과 죄들로 죽었던 너희를...』(1절)이라는 구절을 가지고 그들이 말하고 싶어하는 것은 분명하다. 인간이 영적으로 죽었기 때문에 그의 자발적인 의지나 선택의 행위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그들의 입장이다.
당신이 칼빈주의 신학을 공부해 본 사람이라면 그 신학의 공식, 즉 구원의 순서가 첫째, 하나님께서 죄인을 그의 의지에 상관없이 살리시고 그 다음에 그의 내면에 새 생명의 씨앗을 심으시며 두 번째, 그 사람이 확신 아래 거하게 되고 회개하여 “그리스도를 믿게 된다”고 알고 있을 것이다. 어떤 칼빈주의자는 “우리는 그렇게 믿지 않습니다”라고 말할지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그는 정직하지 못하거나 어리석거나 혹은 그 둘 다인 것이 분명하다. 만일 당신이 극단적 칼빈주의자라면 그것이야말로 당신이 정확히 믿고 있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칼빈주의자라고 하면서도 그것을 믿지 않는다면 당신은 극단적 칼빈주의자가 무엇을 믿는지 조차 알지 못하는 것이며, 존 칼빈을 공부해 본 적도 없는 사람일 것이다. 그것이 바로 칼빈과 벌콥, 댑니, 질, 핫지, 핑크가 가르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타락이 의지까지 확장되어 있다는 “전적 타락”은 성경을 배격하는 것이요, 사탄적인 가르침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먼저 “자유의지”(freewill)라는 용어는 성경에 있지만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용어는 성경에서 발견되지 않는데 있다. “자유의지”라는 단어는 에스라 7:13에서 발견된다(레 22:18,21,23; 23:38, 민 15:3; 29:39, 신 12:6,17; 16:10; 23:23, 대하 31:14, 에 1:4; 3:5; 7:13,16; 8:28, 시 119:108). 하지만 “하나님의 주권”이나 “저항할 수 없는 은혜”등의 표현은 하나님의 말씀 어디서도 발견할 수 없다. 에스라 7:16에서도 “자유의지”라는 단어가 나온다.
이에 반해 성경이 주권적인 은혜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는 근거는 전혀 없다. 그런 표현은 성경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우리는 출애굽기 35:5,21,29에서 “자원하는 마음”, “자원하는 예물”이란 표현을 본다. 당신은 지금 구약에서 인용한 구절들에서 어떤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하지 못했는가? 그것은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거듭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 안에 있지도”,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되지도” 않았으며, 어느 한 사람도 성령에 의해 살리심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원하여, 즉 자유의지를 사용해서 하나님께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전적 타락”을 비성경적인 가르침이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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