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전능하다는 것이 사실은 환상이 아닐까 하는 우려는, 하나님의 능력과 기도 및 감사의 능력을 발견 혹은 재발견하기 위한 필수 전제 조건이다. 바울은 강력한 세력들을 만나 무력해짐으로써, 기도를 통해 그를 건지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철저하게 체험하게 되었다.
---「1장 하나님과 바울」중에서
바울은 그의 반대자들이 보여 주는 이미지, 곧 모든 것을 스스로 완전히 해결할 수 있다는 눈부신 이미지와는 반대되는 자신의 연약한 실상을 편지의 독자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렇게 드러내는 것일 수 있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있는 그대로 말하기를 원하며(12:6하), 그가 잘 된다면 그것은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 때문임을 알기 원한다(4:7; 12:9-10).
---「3장 왜 바울은 자신의 계획을 변경했는가?」중에서
복음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패배하여 죽은 한 남자에 대한 메시지일 뿐이다. 그들은 마치 부패하여 냄새가 나는 시체에서 뒷걸음치듯이 그 메시지를 거부한다. 이 사람들은 ‘망하는’ 자들로, 그리스도를 죽은 자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자신들이 죽은 자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 메시지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메시지이며, 이들은 좋은 향수의 향기를 기꺼이 받아들이듯이 이를 환영한다. 이 사람들은 구원을 받는다. 그들이 그리스도가 살아 계시다고 인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원칙적으로 살아 있는 자들이다. 비록 그들이 죄인으로 죽음을 향하여 가고 있기는 하지만, 그들 삶에 성령님이 임재하시기 때문에 그들은 죽음 이후의 삶을 기다린다.
---「4장 고린도 내의 반대」중에서
비그리스도인들의 적극적인 반대로 위협을 당하고 있는가? ‘이 세상 신’ 앞에서 무력함을 느끼는가?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입에 두신 강력한 복음을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메시지를 도구로 해서 우리 보통 사람들이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6:1)로서 하나님의 빛을 인간의 마음에 전달하고 새 창조를 이룰 수 있다. 사도 바울은 ‘이 직분’이라고 부르는 것을 감당하면서 이후의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겸손하게 또한 끊임없이 선포하는 모범이 된다.
---「6장 예수님의 얼굴」중에서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은 자기처럼 새롭고 높은 차원의 종교적 체험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인상적인 설교자들의 말에 열렬히 귀를 기울여 왔다. 이러한 희망을 품고 있는 사람들 중 일부는 그 소망들이 실현되기를 간절히 바란 나머지, 사소한 문제나 심지어 기분이 ‘가라앉는’ 것조차 용납할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바울은 정서적으로 솔직하다. 그는 자신의 어려움들을 감추지 않고, 자신이 ‘질그릇’임을 인식하는 자로서, 자신이 받은 고난과 역경들을 어느 정도 드러낸다.
---「7장 영원한 영광」중에서
어떻게 하면 주님에 대한 두려움과 그리스도의 사랑에 의해 동기가 유발될 수 있을까? 두려움과 사랑은 서로 모순된 것이 아닌가? 이것은 두려움과 사랑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달려 있다. 이 둘은 서로 반대가 아니라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다. 성경에서 ‘두려움’은 잔뜩 움츠린 공포가 아니라 거룩한 경외이며, ‘사랑’은 낭만적인 감정이 아니라 희생적인 보살핌이다. 그 두 단어는 양립할 수 있고 조화를 이룰 수 있다. 실로 주님을 경외하는 것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는 것은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기독교 사역에 대한 참된 동기를 제공한다.
---「9장 화목하게 하는 직책」중에서
한 사람이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자기 아들의 죽으심 안에서 제공하신 죄사함을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 ‘화목하는 것’은 해를 당한 쪽에게 용서를 구하고 그들의 용서를 받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하나님은 분명 용서하실 것이다. 거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구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야 함을 겸손하게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10장 하나님의 일꾼들」중에서
다른 사람을 후원하기 위해 관대하게 헌금하는 것이 ‘은사’라는 것을 알게 되면 많은 사람들은 분명 대단히 놀랄 것이다. 신자들이 이 은사를 받기 위해(!) 기도한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하지만 이것은 틀림없이 ‘은사’이며, 신약에 열거된 다른 은사들12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사랑으로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13장 디도가 고린도에서 가져온 소식: 연보」중에서
신비한 관점에서 보면, 우리의 현재 삶이 죄와 고난으로 얼룩져 있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러한 것들을 몹시 싫어하시고 미워하신다는 점에서 보면, 그분은 언젠가 그것들을 타도하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죄를 인식하도록 하여, 바로 우리 삶에서 죄사함을 받기 위해 그리스도 곁에 우리를 붙들고 계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또한 육체와 정신적인 고통 가운데서도 그와 동일한 은혜가 우리를 그리스도, 곧 우리에게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 말씀하시는 그분께 가까이 고정시켜 주는 것이 아닐까?
---「15장 약하고 어리석은 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