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현은 돌아가겠다는 말을 하기 위해 방문을 열었다는 것도 잊고 천천히 향주의 뒤로 다가갔다. 뛰어오르려던 향주가 석현의 몸을 감지하고 손을 뻗은 채 우뚝 멈춰 섰다. 석현은 그런 향주의 머리카락 위로 입술을 내리며 한 걸음 더 바싹 다가갔다.
숨죽이며 어깨를 움츠리는 향주의 몸이 생생하게 와 닿자 석현의 몸에 단단하게 힘이 들어갔다. 석현은 향주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숙제, 다 했어?”
“아, 숙제…….”
“나는, 다시 이을 거야.”
“…….”
“그때와 같은 감정일 필요 없어. 지금의 채향주건, 과거의 채향주건, 그저 네가 채향주이기만 하다면 다른 건 아무 상관없으니까.”
“석현 오빠…….”
당황한 듯 몸을 빼려는 향주의 어깨를 힘주어 누른 석현이 허리를 굽혀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12년 전에는 네가 먼저 용기 내어 고백했었지? 이번에는 내가 먼저 마음을 드러내 보일게.”
“아…….”
“너 아니면 안 돼. 네가 아닌 다른 여자한테는 설레지 않아. 안고 싶고 입 맞추고 싶어 갈증을 느끼지도 않아. 아마 네가 돌아오지 않았다면, 다시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바보처럼 모르고 살았을 거야. 평생을 무덤덤하게 그렇게 살았을 거야. 하지만 이제 그럴 일 없어졌어. 향주, 널 다시 만났으니까.”
“…….”
“대답해.”
석현은 대답을 망설이는 향주를 돌려 세워 저와 마주 보게 만들었다. 붙박이장에 등을 대고 선 향주가 고개를 돌리자 석현은 팔을 들어올려 시선을 피하려는 그녀를 막았다.
“오빠, 나는…….”
“제발 대답해, 향주야.”
향주의 턱을 잡아 제게로 고정시킨 석현이 대답을 재촉했다.
“모르겠어요.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말 모르겠어요.”
“후우…… 지금 네 입술에 키스할 거야.”
향주의 턱에서 떨어진 석현의 손이 붙박이장을 짚었다.
“넌 얼마든지 날 거절할 수 있어. 하지만 네가 피하지 않고 내 입술을 받아들인다면, 난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널 놓지 않을 거야.”
말을 마친 석현이 천천히 고개를 내려 향주의 입술 바로 위에서 속삭였다.
“망설이지 마. 그리고 물러서지도 마. 감정을 거스르려고 하지 말고, 그것이 흐르는 대로 널 맡겨버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생각해. 네가 정말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내게 오빠를 다시 사랑할 자격이 있을까요?”
“은석현이 원해. 다른 이유가 더 필요해?”
“하지만 나는…….”
“너 때문에 매일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어. 그리고 너를 안고 싶은 것을 참느라 죽을 것처럼 힘들어. 만의 하나 네가 다시 내 눈앞에서 사라진다면 지구를 샅샅이 뒤져서라도 반드시 찾아내고 말 거야. 아직도 부족해?”
흔들리던 향주의 눈빛에서 여러 가지 감정들이 휙휙 스쳐 지나갔고, 석현은 끈기 있게 그녀의 결정을 기다렸다. 억겁보다 길게 느껴지는 인고의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향주의 두 눈이 스르르 감기는 것과 동시에 석현의 입술이 꽃잎처럼 내려앉았다. 따뜻하게 맞닿은 향주의 입술을 느낀 석현이 붙박이장을 짚은 손에 힘을 주었다.
석현이 가만히 입술을 벌려 달큼한 입술을 베어 물자 향주의 가슴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가 내려앉았다. 그 모습에 석현이 두 팔을 내려 격하게 향주의 허리를 끌어당기며 요동치는 가슴 안에 가두었다.
“흡!”
강한 힘으로 석현에게 안긴 향주가 놀란 듯 숨을 들이마시는 것이 느껴지자, 석현의 혀가 그녀의 입술 사이를 가르고 들어갔다. 단번에 말캉거리는 혀를 찾아내 강하게 빨아들이는 석현의 두 뺨이 움푹하게 파였다.
수줍어하는 향주를 어르고 달래는 석현의 혀가 리드미컬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잘근잘근 이로 물었다가 혓바닥으로 스윽 쓸어내리고 휘감으며 향주의 혀뿌리를 흠빨며 공을 들였다. 석현이 혀끝을 세워 향주의 혀를 톡톡 건드리자 움찔거리던 그녀가 그의 것을 슬며시 빨아들였다가 놓았다. 그 감질나도록 짜릿한 느낌에 차오르는 벅참을 이기지 못한 석현의 목에서 깊은 신음이 비어져 올라왔다.
“으음…….”
그 순간 어중간하게 그의 가슴에 닿아 있던 향주의 가는 팔이 석현의 목을 휘감았다. 향주의 허리를 안고 있던 석현의 오른손이 넝쿨처럼 그녀의 등을 타고 올라갔고, 두 사람의 몸이 더 그럴 수 없이 밀착되었다.
부드러운 향주의 몸을 어루만지는 석현의 손바닥이 불꽃을 품은 것처럼 뜨거웠다. 탱탱한 향주의 엉덩이를 움켜쥐어 제 앞으로 바싹 들이밀고, 잘록한 허리를 조일 듯 바르쥐었다가 제 가슴과 맞닿은 부드러운 젖가슴을 쓸어내렸다.
한껏 목을 뒤로 젖힌 향주의 몸 위에서 노니는 석현의 손길이 점점 더 대담해졌고, 향주는 석현의 목에 매달린 채 잘게 몸을 떨었다. 입술을 탐하는 끈끈한 소리와 팽팽한 성적 긴장감이 가득 찬 드레스 룸 안에서 입술을 나누는 석현과 향주는 온전히 서로에게 몰입한 채 거친 숨소리를 내뿜었다.
어린 시절의 수줍던 입맞춤과는 달리 성인이 된 두 사람의 키스는 농밀하고 밀도 높았다. 절박하고 애틋한 손길로 탐하고 갈구하며 조금의 호흡도 놓칠 수 없다는 듯 무자비하게 향주를 몰아붙이는 석현의 모습이 흡사 전쟁의 신 아레스와 같았다.
얼마 후 오랜 시간 상대를 탐하던 부푼 입술이 살짝 떨어졌고 석현과 향주는 밭은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눈을 마주쳤다.
“헉헉…….”
“하아, 하아…….”
“잊지 마. 지금 이 순간부터 은석현이라는 남자가 채향주라는 여자의 애인이라는 걸…….”
향주를 향한 소유욕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거칠게 속삭인 석현이 또다시 고개를 숙였다. 다시 만난 입술이 같은 순간에 열렸고, 떨어졌던 몸이 열정적으로 달라붙었다.
툭툭, 노란 할로겐 불빛을 보고 달려든 부나비들이 두 사람을 시샘하기라도 하듯 향주의 방 유리창에 몸을 부딪쳐 왔다. 오랜 시간을 돌아 다시 연인으로 만난 두 사람의 키스는 까만 밤이 새벽을 향해 달리는 것을 모르는 듯 좀처럼 끝을 보지 못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