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8: 이 책은 어린 여공의 체험을 통해 1970년대라는 지옥 같은 시기를 우리에게 잘 알려 줍니다. 그런데 4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기막힌 빈부 격차, 노동자계급에 대한 억압과 착취의 강화, 민주적 노동운동의 탄압, 남녀 노동자에 대한 차별, 정치권과 재벌 사이의 유착,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분할 통치, 부자층과 서민층의 세대적 계승 등등이 이 책의 묘사보다 더욱 나빠졌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라는 긴급한 과제에 부닥치게 됩니다. 우리 모두가 새로운 사회를 열기 위해 투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추천사, 김수행
· pp.13~14: 농토가 부실한 농민 아닌 농민들의 이농과 판자촌 생활, 막노동, 그 자녀들의 연소 노동자 생활……. 전형적인 조건을 고루 갖춘 신순애의 청계상가 진입, 전태일의 죽음, 그리고 서서히 투사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노동환경. 내가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당시 노동자들의 삶을 확대경으로 비추어 주는 이 책을 보면서, 나의 그런 자신감이 얼마나 허점 많은 것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쪽방에서 시작한 ‘한글교실’. 초등 3학년 중퇴의 여공 선생 신순애와 그의 여공 제자들. 가장 먼저 자기가 다니는 회사 이름과 옷에 붙이는 라벨의 사이즈 기호부터 가르치는 유능한 선생과, 꼭 필요한 것을 손에 쥐여 주는 한글교실에 재미 붙일 수밖에 없는 제자들의 공부 과정에 따뜻한 눈물이 흐르게 된다. ―추천사, 최영희
· p.39: 내 삶이 자랑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부끄럽지도 않기에 드러내려 한다. 평화시장 ‘여공’ 개인의 생활에 관한 기록을 찾아보기 어렵고, 당사자가 자신의 삶과 투쟁을 서술하고 해석한 작업은 더더욱 드물다. 따라서 내 기록은 여성 노동자 당사자가 직접 서술한 글이라는 점에서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한 여성 노동자의 ‘자기 서사’라는 형식을 띠고 있지만 비단 신순애라는 개인의 주관적 체험에만 국한되지 않는, 1960~1970년대 여성 노동자들의 ‘주체화 과정’에 관한 기록이기도 하다.
· p.60: 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도시로 이동이 가속화하던 흐름을 타고 우리 가족은 상경하여 판잣집을 전전했다. 그리고 나는 ‘여공’이 될 수밖에 없었다. 어린 소녀에게 평화시장 공장 생활은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이겨 내기에 너무 벅찬 노동강도와 조건이었지만, 어린 소녀가 끔찍한 공장 생활을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다.
· p.167: 나는 노조를 알고 난 뒤 달라지고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집보다 노동교실을 더 좋아했고, 노동교실에 드나드는 재미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퇴근하면 밥은 굶더라도 노동교실에는 꼭 갔다. 나는 노동교실 1기생이 된 것이 뿌듯하고 자랑스러웠으며, 노조 활동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 p.173: 6시에 미싱 모터 끄기 운동은 큰 용기가 필요했다. 더욱이, 오야 미싱사인 내가 먼저 끄는 것이 순서였다. 하지만 눈앞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공장장 시선을 피할 수 없었다. 나는 속으로 전태일 생각을 했다. ‘그래, 전태일 동지는 우리를 위해 목숨도 끊었는데, 해고되면 또 다른 싸움을 해 보지’ 하면서 가장 먼저 미싱 모터 스위치를 껐다. 이어서 뚝, 뚜둑, 뚜둑 소리가 연발했다. 함께했던 친구들은 훗날 나에게 “그때 순애 네가 모터를 끄는데 무섭기까지 했다”고 했다. 내가 두렵지 않기 때문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두렵지만 나서야 하기 때문에 나서는 것이었다. 그것이 참된 용기이며 그럴 때 아무리 약해도 강해진다는 진리를 나는 노조를 통해서 배웠다.
· pp.215~216: 그전에는 책을 몇 페이지만 읽으면 졸려서 집어던지곤 했다. 그리고 실은 피곤해서 책을 볼 여력도 없었다. 그런데 조영래가 사 준 책은 읽을수록 재미가 있었다. 내가 밤새 책을 읽는 것을 본 어머니는 “그렇게 공부가 하고 싶으냐?”고 물으시더니 “집주인 눈치가 보인다”고 하셨다. 전기 요금이 많이 나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그 뒤로 나는 공장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밤에 촛불을 켜고 책을 읽었다. 그때 읽었던 책을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죄와 벌』, 『마더 존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등은 지금도 기억난다. 교보문고에 갔을 때도 그는 수배 중이었다. 그런데도 나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서점에 갔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조영래를 통해 내게 맞는 책을 알게 되었고, 그 뒤로는 스스로 책을 사서 읽기도 했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