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 때문에 살아왔나요. 여자는 소리쳤다. 하늘에 있는 신이여, 부처여,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나요. 아이를 낳기 위해서인가요, 논밭을 갈기 위해서인가요, 굶기 위해서인가요, 사람을 먹기 위해서인가요.
개 한 마리가 여자의 배에서 튀어나온 내장에 달려들었다.
신이여, 부처여, 대답해달라. 나는 무엇 때문에 태어났는지. 나는 지금 사람인지…… 귀신인지…… 아아, 대답해달라.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여자는 머리카락이 거꾸로 곤두서는 걸 느꼈다.
그런가, 나는 귀신인가. 싫어, 싫어, 죽고 싶지 않아. 귀신이라면, 사람의 마음이 없다면 몇 번이고 다시 살아나서 사람을 먹어줄 테야. --- p.14
태워 죽인 검은 머리의 시녀가 애원하는 소리가 들린다. 외마디 비명이 귀에 달라붙어 떠나질 않는다. 귀를 막아도, 오리털 베개에 얼굴을 묻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계속 들린다.
용서해주십시오. 왕비님, 부디 용서를…….
비명만이 아니다. 불길이 소용돌이 치는 소리, 나무들이 타는 소리, 겁에 질린 새들의 울음소리, 그리고 물소리. 계속 들려온다.
찰, 찰, 찰.
시녀를 태워 죽인 숲에는 강도 호수도 없는데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몸속 저 깊은 곳에서 솟구쳐나와서 넘치는 듯한 물소리였다. --- p.47
“그대에게선 피 냄새가 나.”
어느 날 밤, 왕비의 몸을 힘껏 껴안으면서 왕이 신음하듯 말했다.
“피 냄새라니…… 어찌 그리 무서운 말씀을…….”
“아냐, 냄새가 나. 그대의 몸엔 피 냄새가 배어 있어. 그러나 그것이 그대의 아름다움을 더욱…….”
국왕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 순간, 왕비는 이 남자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 pp.66~67
“난 정말로 아무것도 몰랐어. 성 안에 있으면 바깥세상의 일 따위 하나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아. 내가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백성이 굶어 죽어가고 있으리라곤 생각도 못 했다.”
쓰루의 눈에 희미하게 주름이 졌다.
“볼 마음이 없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을 마음이 없으면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생각하려고 하지 않으면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 법.”
그것은 너무나 작은 중얼거림이어서 왕비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 pp.83~84
지인을 포함하여 사람을 다섯 명이나 죽인 남자가 있었어요. 그 남자가 말하기를 살인이란 건 익숙해지는 거래요. 처음 사람을 죽일 때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이 떨리지만, 두 명째, 세 명째가 되면 익숙해져서 예사로워진대요. 아무것도 느끼지 않게 된대요.
형편없는 남자였죠. 물론 사형당했어요. 다른 사람은 예사로 죽이면서 자기가 죽는 건 무서웠던가 봐요. 제멋대로죠. 다만, 억울해 하긴 했어요. 자기는 사람을 죽이지 않고는 살 수가 없었다고요. --- pp.94~95
나는 아까 말했지만 좀 별난 능력이 있어요. 그래서 반 년 전에 죽은 부인의 모습도 볼 수 있는 거예요. 죽은 사람은요, 말을 할 수도 호소를 할 수도 의사를 전달할 수도 없잖아요.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은 되도록 힘이 되어주고 싶어서, 죽은 사람의 생각을 대변하려고 노력해요. 물론 모르는 게 더 많죠. 나 같은 사람은 희미하게 느끼는 정도니까 죽은 사람의 생각을 정확하게 전하지 못할지도……. --- p.130
인면창. 들은 적 있어요? 처음에는 조그만 종기처럼 생기죠. 그래서 아무도 신경 쓰지 않지만, 아주 천천히 커져가요. 천천히, 아주 천천히요. 그리고 어느 정도 커지면 처음에 눈이 생기고, 다음에 입이 생기면서 사람의 얼굴과 똑같아지죠. 귀와 코는 없지만 어째선지 사람 목소리는 잘 듣는 것 같아요. 전부는 아니지만 개중에는 성질이 나쁜 녀석도 있어서요. 자기가 들러붙은 상대를 지배하려고 해요. 그러니까 자기가 그 인간이 되려고 하는 거죠. 여기까지 말하면 알겠죠? 이시하라 씨는 이시하라 씨 몸에 들러붙은 인면창에게 지배당하고 있습니다. 예, 나는 알고 있었어요. 오른쪽 어깨 있는 곳에 빨간 얼굴의 인면창이 생겼더군요. 아주 거칠고 포악한 것으로. 그놈은 생고기를 아주 좋아해서 마구 큰 소리를 지르며 아우성을 치고 있죠. --- pp.148~149
남자가 도끼를 들어올렸다. 머리를 짓눌린 채 공작이 입을 크게 벌렸다. 피로 물든 새빨간 입이었다.
“꺄아아아아악!”
비명이 터지고, 관중 가운데 몇 명이 쓰러졌다. 도끼날이 희미하게 빛나고, 공작의 목이 돌 위로 뎅구르르 굴렀다. 공작 부인이 맥없이 주저앉았다. 짧게 깎은 머리가 점점 하얗게 변해갔다. 공작 부인은 그대로 흙바닥 위를 뒹굴었다. 누가 봐도 미친 게 틀림없었다. 처형인이 당나귀의 엉덩이를 채찍으로 내리쳤다. 당나귀는 공작 부인을 질질 끌면서 장내를 뛰어다녔다. 공작 부인은 고개를 비틀고 흰자위를 드러내며 숨을 헐떡였다. --- pp.158~159
쓰루가 천천히 돌아보았다. 입이 새빨갛게 물들? 있었다. 그녀가 새빨간 입으로 히죽 웃었다.
“겨우 다 먹었어. 얼마나 먹고 싶었는지……. 맛있다, 맛있다.”
쓰루의 손에서 왕자가 흔들렸다. 아니, 그것은 이미 왕자가 아니었다. 물어뜯다 만 고깃덩어리였다. 배도 다 물어뜯기고, 눈알도, 한쪽 팔도 없어진 상태였다. 쓰루의 입이 왕자의 고기를 먹는다. 소리내어 피를 들이마신다.
“아아, 맛있다. 너무너무 먹고 싶었는데.”
--- pp.21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