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쿠, 참 귀엽게도 생겼군!”
구리타 씨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배어났습니다.
멍석 위에 누워 있는 어미 개에게 강아지 네 마리가 달라붙어 힘차게 젖을 먹고 있었습니다.
“좋은 개입니다. 이 강아지들은 순수한 아키타견이지요. 작년 12월 중순에 태어났으니, 이제 딱 두 달이 되는군요. 이 정도면 기차 여행도 견딜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장님이 강아지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강아지 네 마리는 모두 통통하게 자라 있었습니다. 엷은 황색 털이 반질반질했습니다.
“흠, 그렇다면… 어떤 녀석이 좋을까…….”
구리타 씨는 강아지 머리를 번갈아 쓰다듬으면서 살펴보았습니다.
이윽고 구리타 씨가 강아지 한 마리를 번쩍 안아 올렸습니다.
1924년 1월 14일.
이렇게 해서 아키타 현 작은 마을의 수캉아지 한 마리가 몇 백 미터나 떨어진 도쿄로 머나먼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 pp.18-19
잔뜩 흐려 있던 하늘이 개면서 툇마루 가득 햇살이 들어찼습니다.
그때, 강아지가 조금 움직였습니다.
“어이쿠! 강아지야, 강아지야! 내 말이 들리느냐?”
교수님은 강아지 귓가에 대고 외쳤습니다. 그 말에 대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강아지는 목을 부르르 떨더니 동그란 눈을 반짝, 떴습니다.
“이럴 수가! 강아지가 눈을 떴어요! 강아지가 살아났어요! 역시나 우리 교수님이시로군. 만세!”
기쿠 씨는 소리를 지르면서 양손을 하늘 높이 쳐들었습니다.
강아지는 부스스 일어나더니 접시의 우유를 핥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구, 얘가 배가 많이 고팠나 봐요.”
사모님도 기쁜 얼굴로 강아지를 바라보았습니다.
“자, 더 먹으렴! 우리 강아지!”
교수님은 귀여운 듯 강아지 머리를 계속 쓰다듬었습니다. --- pp.28-29
강아지를 바라보며 교수님은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겼습니다.
“음… 뭐라고 하면 좋을까?”
“여보. 하치, 어때요?”
사모님이 눈을 빛내며 말했습니다.
“하치라…….”
“지금까지 개를 여러 마리 길렀는데, 이 강아지가 여덟 번째거든요.”
“음, 그렇게 되나?”
“네에. 그러니까 여덟 번째란 뜻의 하치, 좋지 않아요?”
“그래, 하치! 이렇게 조그만 녀석인데도 앞발을 여덟 팔 자로 해서 힘차게 서 있는 것도 그렇고, 또 여덟 팔 자는 아래쪽이 벌어지니까 운이 좋은 글자이기도 하지. 좋아요, 하치라고 합시다!”
정원에 내려선 교수님은 양 손을 뻗어서 강아지를 높이 치켜 올렸습니다. --- pp.33-34
“자, 하치! 도착했다!”
개찰구에서 교수님이 하치 등을 쓰다듬어주었습니다.
“그럼 다녀올 테니까 이제는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는 거다, 알았지?”
교수님이 손을 흔들었습니다. 개찰구 쪽에 반듯이 앉은 하치는 교수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대로 있었습니다.
‘에이, 나도 전철을 타고 따라가고 싶은데…….’
하치는 자신도 모르게 휙 뛰어들 것만 같았지만 간신히 참았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일어나 곁눈질도 하지 않고 왔던 길을 되돌아 집으로 갔습니다.
“어머나, 제대로 배웅하고 온 게로구나. 정말 훌륭하다, 하치!”
현관 쪽에서 사모님이 하치를 맞아주었습니다.
“저녁에도 교수님을 마중하러 나가렴.”
하치는 사모님을 향해, 네, 알았어요! 하는 듯 계속해서 꼬리를 흔들었습니다. --- pp.64-65
컹컹 컹컹컹 컹컹.
“하치, 오늘따라 왜 이리 시끄럽게 구니?”
툇마루로 달려온 사모님이 하치를 나무랐습니다. 툇마루에 발을 걸친 하치는 뭔가를 호소하듯 정신없이 짖어댔습니다.
컹컹 컹컹컹 컹컹컹컹.
또 하치가 짖기 시작했을 때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사모님, 대학에서 걸려온 전화예요. 급한 일이라고 합니다.”
아주머니가 툇마루로 급하게 달려왔습니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네? 네에? 뭐라구요? 남편이 쓰러졌다구요?”
수화기를 쥔 사모님 손이 떨렸습니다.
“어서, 자동차를 불러줘요! 어서요!”
그렇게 말하고 사모님은 당황해 안절부절못하며 거실 쪽으로 달려갔습니다.
‘하치는, 하치는 이것을 예감한 거야.’
그러더니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거실에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 p.96
계속해서 내리는 빗속에서 하치는 개찰구를 향해 앉아 뚫어질 듯 출구를 바라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개찰구에서 쏟아져 나옵니다. 순간, 하치의 눈이 번쩍 빛났습니다.
‘아, 교수님이다! 교수님이 돌아오셨어!’
휙 몸을 일으킨 하치는 연갈색 양복을 입은 신사에게로 달려갔습니다.
“어어? 이 개가 왜 이러는 거야?”
신사는 깜짝 놀라 뒤로 넘어졌습니다. 옷도 바지도 흙투성이가 되었습니다.
급히 달려온 역무원이 하치를 발로 걷어찼습니다.
“이 들개 녀석, 썩 꺼지지 못해! 꺼지라구!”
하치는 완전히 실망했습니다. 분명히 눈? 비친 것은 교수님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하치가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귀를 축 늘어뜨린 하치는 빗속을 혼자 쓸쓸히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 pp.121-122
개찰구에서 나온 한 여인이 하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습니다.
“참으로 대단하구나. 가엾게도 7년간이나 기다리고 있단 말이지. 쯧쯧, 가엾기도 하지. 그래, 그래. 이 과자 좀 먹으렴.”
하치 앞에 몸을 구부리고 앉은 할머니는 하치에게 먹을 것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젠 역무원이나 경찰관도 저녁 무렵 하치가 찾아오면 오른손을 들어 경례까지 하였습니다.
하치가 지나가면 ‘야 이 비루먹은 개야!’라며 막대기로 쫓았던 아이들도 하치, 하치, 하면서 음식을 주거나 일부러 보러 왔습니다.
그런 하치를 보기 위해 시부야 역 앞에는 저녁 무렵이면 점점 많은 사람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 p.142
이미 하치는 뒷발 한쪽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하치는 아픈 발을 질질 끌고 언덕을 내려왔습니다.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새벽 거리를 하치는 마지막 힘을 다해서 걸었습니다.
‘하치, 하치야. 여기, 이쪽이란다! 이리로 오렴.’
어딘가에서 우에노 교수님이 부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하치는 그 목소리에 이끌리듯 걸었습니다.
잠시 더 걸어가자 하치가 처음으로 보는 넓은 길이 나타났습니다. 몇 번이나 쉬면서도 하치는 있는 힘을 다해 걷고 또 걸었습니다.
그곳은 시부야 역에서 상당히 떨어진 아오야마라는 거리입니다.
‘옳지, 잘 왔다. 이제 조금만 더 오면 된다, 하치.’
하치 귓가에 속삭이는 교수님의 목소리가 또 들렸습니다.
---p.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