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그렇고 난 여기서 잘 지내고 있네. 고독은 낙원 같은 이 고장에서 내 마음에 값진 진정제가 되고 있어. 그리고 청춘의 이 계절은 자꾸만 움츠러드는 내 마음을 온갖 풍요로움으로 따뜻하게 해준다네. 나무 한 그루, 울타리 하나하나가 활짝 핀 꽃다발 같아. 그러니 풍뎅이가 되어, 향기의 바닷속을 떠다니며 온갖 양분을 얻고 싶은 심정이라네 p12-p13
그래, 그의 외모에서 풍기는 분위기, 목소리의 조화로움, 눈빛에 담긴 은밀한 열정을 생생히 묘사하려면 가장 위대한 시인의 재능을 지녀야 할 것 같아. 아니, 그의 존재 전체와 표정에서 풍기는 사랑스러운 분위기는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어. 그러니 내가 다시 글로 옮길 수 있는 것은 모두 어설프기 짝이 없어. 그는 여주인과의 관계를 내가 짝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또 그녀의 행실을 나쁘게 보지나 않을까 우려했는데, 특히 그 모습에 내 마음이 움직였어. 그는 그녀의 자태와 몸매에 대해 말했어. 젊은 매력은 없지만 그 몸매가 자기를 강하게 끌어당기고 사로잡는다고 했어. 그렇게 말하는 그의 모습이 얼마나 매력적인지는 내 영혼의 깊디깊은 곳에서만 재현할 수 있을 따름이야.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처럼 절실한 욕망과 뜨겁고 간절한 갈망이 이토록 순수하게 표현되는 것을 본 것은 처음이야. 아니, 어쩌면 이처럼 순수하게 표현되리라고는 생각해본 적도, 꿈을 꿔본 적도 없다고 말할 수 있어. 이러한 순진무구함과 진실함을 기억에 떠올리자니 내 영혼의 깊디깊은 곳까지 뜨겁게 달아오르고, 어디를 가든 이 충실하고 애정 어린 모습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아. 나 자신에게도 그 불길이 옮겨 붙은 듯 애간장이 타며 못 견딜 것 같아. 이런 말을 한다고 나를 책망하지는 말게. p29-p30
빌헬름, 나는 자신을 확장하고 새로운 발견을 하며 세상 곳을 돌아다니고 싶어 하는 인간의 내부에 깃든 욕망에 대해 갖가지 생각을 해보았네. 그런가 하면 제한된 환경에 기꺼이 순응하고 정해진 관습을 따라가며 좌우 어느 쪽에도 신경 쓰지 않으려는 내적인 충동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어 p45-p46
인간은 아무리 기상천외한 것이라도 자꾸 설득하면 믿게 되어 있어. 하지만 또한 믿는 것은 곧장 단단히 붙어버리지. 그러니 그것을 다시 긁어내거나 지워버리려고 하다간 혼이 나게 마련이지!
p82
사랑하는 로테, 이렇게 심란한 상태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내 모습을 그대가 본다면! 내 감각이 얼마나 메말라 버렸는지! 한 순간도 마음이 충만한 적이 없고, 한 순간도 행복한 적이 없습니다! 아무것도, 전혀 아무것도 느낄 수 없습니다! 마치 요지경 앞에 선 기분입니다. 난쟁이 인형과 말이 눈앞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헛것을 보고 있지 않나 스스로에게 묻기도 합니다. 나는 함께 놀이에 끼어듭니다. 오히려 꼭두각시처럼 조종을 당하지요. p107
베르터는 그녀에게서 눈길을 돌리고 방 안을 왔다 갔다 하면서 이 사이에서 나오는 소리로 중얼거렸습니다. "언제까지나 이런 식으로 지낼 수는 없다!" 자신의 말로 베르터가 끔찍한 상황에 빠진 것을 감지한 로테는 온갖 질문을 하며 그의 생각을 다른 데로 돌리려고
애썼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알겠어요, 로테!" 이윽고 베르터가 소리쳤습니다. "다시는 당신을 보지 않을 겁니다!" p170
"당신은 내가 찾아가리라고 기대하지 않겠지요! 내가 당신 말에 따라 크리스마스이브에나 다시 당신을 보리라고 생각하겠지요. 오, 로테! 오늘 아니면 영영 다시 보지 못합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당신은 이 편지를 손에 들고, 덜덜 떨면서 사랑스러운 눈물로 이 종이를 적시겠지요. 나는 하려고 하고, 해야만 합니다! 아, 결심을 하고 나니 얼마나 속이 후련한지 모르겠어요." p175
오, 날 용서해줘요! 날 용서해줘요! 어제 일 말이오! 내 생애의 마지막 순간이 되었어야 했는데요! 오, 그대 천사여! 처음으로, 난생처음으로 전혀 의심의 여지없이 크나큰 희열이 나의 마음 깊디깊은 곳까지 타올랐습니다. 그녀가 나를 사랑하다니! 그녀가 나를 사랑하다니! 그대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성스러운 불꽃이 아직 내 입술에서 불타고 있습니다. 새로운 따뜻한 희열이 내 가슴속에 있습니다. 그러니 날 용서해줘요! 날 용서해줘요! p193
"알베르트, 나는 당신의 우정을 악으로 갚았습니다. 나를 용서해주십시오. 나는 당신 가정의 평화를 깨뜨렸고, 부부 사이의 불신을 키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나는 끝을 내려고 합니다. 아, 내가 죽어 당신들이 행복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알베르트! 알베르트! 천사 같은 부인을 행복하게 해줘요! 하느님의 축복이 당신과 함께하길 빕니다!" p200-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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