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포장하기
동전 하나와 종이 한 장을 준비한다.
그리고 종이로 동전을 대충 싸보자. 그런 다음, 눈에 보이는 대로 볼펜, 셔츠, 접시, 책, 신발, 통조림 등 여러 사물을 하나씩 종이로 싸보자. 물론 사물에 따라 종이의 크기나 포장 방법, 포장의 난이도가 각기 다를 것이다. 포장된 사물의 모양 역시 천차만별일 것이다.
이처럼 쓸모없고, 엉뚱하고, 모양도 각기 다른 포장을 계속 만들다 보면, 한 가지 변함없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즉, 당신이 포장에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 이유 없이 종이로 운동화를 싸다 보면, 평소에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어떤 낯선 감정이 가슴속에서 서서히 고개를 드는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어떤 사물을 포장하는 목적은 그 사물을 충격이나, 먼지나, 타인의 시선 등에서 보호하자는 데 있다. 우리는 사물을 포장함으로써 위험을 방지하고, 정돈하고, 때가 타거나 닳지 않게 한다. 이런 실용적인 결과들은 포장이 존재의 핵심에 일으키는 기이한 동요를 감추고 있다. 포장된 사물은 여전히 거기에 있지만, 동시에 없기도 하다. 사물이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직접 접근할 수 없게 됐다. 포장된 사물은 분명히 저기 있지만, 추상적으로 변했고, 자취를 감추었고, 뒤로 물러났다. 색깔도, 정확한 윤곽도, 세부적인 특징도 알아볼 수 없다. 단지 포장에 가려져 막연하고 알아보기 어려운 형태, 지각하기보다는 짐작하고 추정해야 할 대상만이 남았을 뿐이다.
그러나 익숙한 사물 자체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거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종이만 벗기면 볼펜이든, 운동화든, 접시든 변함없이 안정적이고 익숙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하지만 다른 의미에서 보자면, 이 익숙한 사물은 단지 시선에서 사라졌다는 이유만으로 평소의 통상적인 가치를 상실한다.
이 간단한 체험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세상을 흔들어놓고, 낯설게 보이게 하고, 부분적으로 접근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놓는 데에는 그리 큰 것이 필요하지 않다. 종이 한 장, 얇은 포장지, 간단한 감추기, 가리기만으로 충분하다.
우리가 확고하다고 믿는 증거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처럼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신념에 달렸을 뿐이다. 같은 일도 때와 기분에 따라 불안한 것이 될 수 있고, 재미있는 것이 될 수도 있다. 「1. 포장하기」, 17~18쪽.
2. 우주 여행하기
화성인들의 실종은 인간에게 큰 불행이다.
이들은 한때 미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최상의 해법을 제시하지 않았던가? 우리가 사는 세상과 근본적으로 다른 세상, 장엄한 신비의 세계, ‘완벽하게 다른 어떤 것’을 꿈꾸고 싶을 때 화성인들만 한 것이 없었다. 그들은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며, 전혀 다른 세상이 아찔할 정도로 무궁무진하게 존재한다는 달콤한 믿음을 심어줬다. 그런 세상에서는 인간의 지능과는 비교할 수 없는 능력이 존재하고, 상상을 초월하는 형태와 신비스러운 힘이 지배하리라고 믿으며 우리는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폈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도 그런 상상 따위는 하지 않는다. 게다가 모든 외계인은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 거대한 천체망원경으로 우주를 아무리 샅샅이 뒤져도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막강한 기능을 자랑하는 수신 장치를 아무리 작동해도 우주에서는 숨소리 하나 들려오지 않는다. 그야말로 완벽한 침묵뿐이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이 정적이 바로 외계인의 존재에 대한 확고부동한 증거라고 주장한다. 월등하게 우월한 외계의 존재들은 저열한 지구인들과 교류하기를 원치 않기에 기침 소리도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어떠한 생명체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는 우주는 침울하기만 하다. 누가 아무런 놀라움도 없는 우주를 탐험하고 싶겠는가? 꿈꾸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관심이 사라진 우주는 썰렁하고 서글프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시라! 이 문제를 해결할 좋은 방책이 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도달할 수 없는 은하계나 까마득히 먼 항성들은 이제 귀찮게 하지 말고 내버려두자. 우리가 사는 이 세계와 완벽하게 다른 우주를 체험하고 싶다면 더 좋고 강력한 방법이 있다. 게다가 엄청나게 쉽기까지 하다.
거리로 나서라. 당신이 사지가 멀쩡하다면 전신이 마비된 사람을 찾아가라. 당신에게 집이 있다면 노숙자를 찾아가라. 당신이 건강하다면 환자를 찾아가라. 당신이 한 번도 부유하게 살아본 적도 없고, 부자들은 대체 어떻게 사는지 감조차 잡을 수 없다면 소위 ‘슈퍼 리치’라고 불리는 사람을 찾아가 보라. 당신이 그럭저럭 먹고살 만하다면, 무료급식소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거리에서 추위를 견디며, 남이 버린 옷을 주워 입고, 자기 몸을 돌보지도 못하는 사람을 찾아가라.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