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편 신기독(愼其獨)
3편은 오행이론의 기초와 방법론에 관하여 상(上:天)에서 하(下:人)로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저자는 오행의 내외문제를 두 가지 각도에서 논한다. 하나는 오행이 내적으로 형성된 경우와 형성되지 않은 경우로 나눈 점이고, 다른 하나는 오행의 본질을 내외로 나누어 본 점이다.
聖?智?仁은 내적인 것으로 보고, 義?禮는 외적인 것으로 보았다. 옛 사상가들은 내적인 것을 옥진(玉振)이라 하고, 외적인 것을 금성(金聲)이라 했다. 聖?智?仁 모두가 덕의 성품인데, 聖은 옥음이고, 智?仁은 옥색이라 했다. 聖이 오행의 최고위 핵심이고 그 다음에 智, 그 아래에 仁이 위치한다.
義?禮는 德의 외적 성품으로 오행 중에서 하위 개념이다. 義를 맹자는 내적[心]으로 보고, 순자는 외적[行]으로 보았다. 이편에서는 내외문제에 중점을 두고 논한다. 넓게 보면 내와 외는 떨어져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관통되어 연결된 하나이다.
제10장 신기독(愼其獨)-1 죽간번호 16
“淑人君子, 其儀一也.”
“정숙한 군자님, 그 모습 한결같아요.”
能爲一,
然後能爲君子,
언제나 변함없는 德人의 모습으로
한결같아야지만
능히 군자라 할 수 있으니,
愼其獨也.
(군자는 외로운 수행을 통하여)
혼자서 그것[오행:德]을 습득함에 대해서 경외(敬畏)의 마음을 지니는 것이다.
[정약용의 신독]
“淑人君子, 其儀一也”는 《시경》조풍(曹風)?시구(?鳩)에 나온다.
백서본에는 ‘愼其獨也’ 앞에 ‘君子’라는 두 자가 있다. ‘신기독(愼其獨)’은 《천명》 제1편 제2장과 《대학》 하편 제3장에도 나오는데, 역대 유가들이 아주 중요시한 용어다.
지금까지는 ‘신기독(愼其獨)’에서 ‘其’자를 뺀 ‘신독(愼獨)’만으로 해석해왔다. ‘다른 사람이 보거나 듣는 사람이 없는 곳에 홀로 있는 때에도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이나 생각을 하지 않는 마음과 태도’라고 풀이해왔다. 그리고 유가들은 이를 가장 중요한 수양방법으로 여겨온 것이다.
정약용(丁若鏞:1762~1836)은 “天, 즉 상제와 귀신은 형상도 소리도 없는 존재이나 또한 강림하여 항상 인간들을 낱낱이 굽어보고 있으니, 바로 이러한 사실을 알아 암실이나 혼자 있을 때에도 계신공구(戒愼恐懼)하는 것이 바로 ‘신독(愼獨)’인 것이다.”라고 ‘天’과 ‘귀신’과 관련하여 신독을 설명하고 있다.
또 “요즘 사람들은 귀신에 대해 과연 그것이 있는 것인가 의심하면서 아득히 알 수 없는 곳에다 버려둔 까닭에 인주(人主)의 경외(敬畏)하는 공부와 학자의 신독의 의의가 모두 성실하지 못한 데로 귀결되고 말았던 것이다”라고 하면서 “신독의 공부는 귀신의 덕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라고 귀신의 덕에 대한 이해를 강조하고 있다.
정약용의 설명은 ‘수양을 위한 심득사항’으로는 새겨 볼만한 내용이지만, 귀신의 존재를 전제로 하여 신독을 설명함으로써 본뜻을 왜곡하고 있다. 귀신에 관한 내용은 선진(先秦)유가의 사상과는 거리가 먼 개념이기 때문이다. 또한 정약용은 ‘신기독(愼其獨)’ 중의 ‘其’자의 의미를 간과한 설명이다.
‘신기독(愼其獨)’에 관한 곽기교수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첫째, 군자는 누가 보거나 듣는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에서 왜 계신공구(戒愼恐懼)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유가들은 모든 것을 자신 속에서 찾기 때문에 자아수양(自我修養)과 자아실현(自我實現)을 강조한다. 군자는 누가 보거나 말거나, 듣거나 말거나 관계없이 언제 어디에서든지 변함없이 성심(誠心)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계신공구 할 필요성이 없다는 말이다.
솔성(率性)의 道는 노력하거나 생각하지 않아도 마음에 저절로 내재되어 있기에 잠시도 떨어질 수 없는 것이라 하였다. 그래서 성찰(省察)이라는 과정도 불필요하고, 신독의 공부도 불필요하다. 홀로 있을 때 계신공구를 해야 하는 사람은 군자의 수준에 오르지 못한 사람이다.
둘째, 군자의 道는 비이은(費而隱:작용은 무궁하나 모습은 은미함)의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성인(聖人)도 모르는 부분이 있고, 실행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하물며 군자는 道에 관하여 모르거나 실행하지 못하는 부분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
*《천명》 제4장
즉, 보이지 않는 道가 있고 또 들리지 않는 道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군자는 이러한 道에 대하여 겸허하게 계신공구를 해야 하며, 道를 경외(敬畏)하는 마음으로 대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