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라는 말이 애초에 민중의 지배를 가리키는데도 풀뿌리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는 그 민중에 포함되지 못한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고대에는 여성과 외국인, 청소년이 정치에서 배제됐다면, 근대에도 여성과 빈민, 이주 노동자, 아이들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있다. 따라서 풀뿌리민주주의는 이미 시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여전히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한 사람들이, 그래서 공적인 장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한 사람들이 시민권을 가지고 제 목소리를 내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한다. ― 33~34쪽
3·1운동은 이렇게 국가와 자본에 내몰리고 뿌리 뽑히는 사람들과 공동체들이 벌인 극렬한 저항이었다. …… 민중들은 자신이 이 땅의 주인이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권력이나 자본의 간섭 없이도 자신들이 잘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스스로 다스리고 스스로 마련하는 삶이야말로 올바른 대안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자치 공동체가 하던 일을 대신하던 면사무소가 공격을 받았을 뿐 아니라 심지어 전남 순천, 평안도 의주, 평안도 신미도 등지의 주민들이 면사무소를 접수하고 자치 업무를 본 사실에서 이런 점이 잘 드러난다. 다시는 헐벗은 삶으로 내몰리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국가의 폭력에 맞서 새로운 정치의 장을 열었다. ― 85~86쪽
인민위원회가 다수 민중의 지지를 받으며 각 지방에 확고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해방 직후 한국 사회는 무정부 사회였을지언정 질서 없는 혼란의 도가니는 아니었으며, ‘자치의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었다. 도와 군, 면 단위까지 인민위원회가 세워졌고, 농민조합과 더불어 자치 체제를 만들었다. 이런 자발적이고 자생적인 단체는 민주주의의 중요한 밑거름이다.
역설적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미군정은 자신의 ‘통치’를 위해 인민위원회를 강제로 해산해야 했다. …… 미군정은 한국에 들어온 뒤 거의 1년 동안 인민위원회를 무너뜨리는 일에만 매달렸다. 그 와중에 많은 풀뿌리 민중들이 고통을 받았음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더구나 미국은 이 과정에서 한국을 강력한 경찰국가로 만들었고, 공권력의 폭력성을 강화했다. ― 123~124쪽
한국의 국가는 모든 시민이 아니라 특정 시민들만을 중요한 논의 대상으로 여겨왔다. 이른바 ‘지역 토호’라 불리는 사람들만이 온전히 주권자 대접을 받으며 권한을 행사했다. 새마을운동협의회나 자유총연맹,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 등 관변 단체들은 지역사회에서 정책을 결정할 때 빠지지 않는 사람들이고, 상공회의소나 지방 언론, 개발업자 등도 핵심 참여자들이다. 민주주의나 지방자치를 이야기하지만 이렇게 지역사회의 의사 결정 구조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은 이미 정해져 있고, 이런 사람들에게만 정보가 제공된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정부의 결정을 무조건 따르거나 자기에게 이익이 될 개발 정책을 지지한다.
― 132~133쪽
아나키스트들의 지향은 다양했지만, 기본은 ‘자유로운 코뮌’ 또는 ‘자율적인 코뮌’이라고 할 수 있다. 지역 주민들이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스스로 만들고 구성원의 필요에 따라 소비하는 체계, 생산하고 교환하고 소비하는 체계가 사유화되지 않고 사회화된 체계, 그곳이 바로 코뮌이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소비하는’ 사회를 위해 아나키스트들은 사회혁명이 필요하다고 봤다. 아나키스트들은 ‘정치혁명’이 아니라 ‘사회혁명’을 주장했다. ― 139쪽
한국 사회 풀뿌리민주주의의 현실은 그동안 생활 영역의 변화에 제한됐다. …… 아나키즘은 이 틀을 넘어서는 일을 돕는다. 아나키즘의 관점에서 보면, 사회운동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던 협동조합이나 신용조합, 공제회, 우애조합 등도 주요한 사회운동이 된다. 예를 들어 18세기부터 공제조합은 질병과 사망에 대비해 상호보험을 제공하는 구실을 맡아왔다. 시간이 흐르면서 공제의 범위도 조금씩 넓어졌다. 자기 노동력을 활용해 비용을 줄이고 공동주택을 건설하려고 공동으로 자금을 모으는 사람들이 꾸린 주택금융공제조합은 추첨을 통해 누가 어느 집에 살지를 결정하고, 모든 이의 집이 완성되면 해산했다고 한다. 영국 버밍햄에서는 이런 조직이 연동집합주택의 약 30퍼센트 정도를 건축했다고 한다. 이런 식의 활동은 우리의 일상을 재구성하고 접촉면을 넓히는 공유지를 만든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