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야가 제일 아끼는 보물 중의 하나가 방 뒤쪽에 있는 액자에 담겨 걸려 있었다. 그것은 전 세계 아메리카 제국의 쓰레기 처리장 어느 곳에서나 발견되곤 하는 얇은 은색의 금속이었다. 종잇장처럼 얇든 그 금속을 고대인들은 '알루미늄 포일'이라고 불렀다. 프레야는 톰과 나란히 서서 함께 그 금속판을 쳐다봤다. 잔물결처럼 주름진 표면에 비친 두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녀가 말했다. "정말 풍요로웠던 것 같아요, 고대인들은." "정말 대단해요." 톰이 속삭였다. 액자에 담겨 있는 물건이 너무나 오래되고 소중한 것이어서 성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치 역사의 여신의 손길이 직접 닿은 물건이기라도 한 듯…. "저런 물건을 그냥 버릴 수 있을 정도로 잘살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만 해도! 그 시절에는 제일 가난한 사람들마저도 시장처럼 살았던 것 같아요." 둘은 다음 전시물로 옮겨 갔다. 고대 쓰레기장에서 자주 나오는 이상한 금속 반지 모양의 물건들이었다. 어떤 것들은 아직도 눈물방울 모양의 펜던트가 달려 있었고 거기에 '당기시오'라고 씌여 있었다. "페니로얄 교수는 이 물건들이 버려진 것이라는 이론에 동의하지 않아요." 프레야가 말했다. "교수는 현대 고고학자들이 쓰레기 처리장이라고 부르는 곳들이 사실은 종교적 의식을 치루던 곳이라고 주장하죠. 고대인들이 소비의 신에게 소중한 물건을 제물로 바치던 장소 말이에요. 그 책 안 읽었어요? 『쓰레기라고? 쓰레기 같은 소리!』라는 책인데. 안 읽었으면 내 책을 빌려 봐도 되요." "감사합니다." 톰이 말했다. --- p.116
사티야는 땅 위에서 태어났다. 인디아 남쪽, 견인 도시가 할퀴고 지나간 후 생긴 깊은 바큇자국의 벽에 동굴을 파고 겨우 커튼으로 입구를 가린 난민촌이 그녀의 고향이었다. 건기가 되면 '치다나가람'이나 '구탁' 혹은 '저거노트푸르' 같은 견인 도시들을 피해 몇 달에 한 번씩 거처를 옮겨야만 했다. 비가 오면 신발도 신지 않은 맨발 밑으로 세상은 진흙이 되어 녹아내렸다. 모두 언젠가 때가 되면 고원 지대의 정착촌에 가서 살 거라고 말하곤 했지만 사티야는 나이가 들면서 그런 날은 영원히 오지 않을 거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저 하루하루 목숨을 부지하는 데만도 모든 시간과 에너지가 소모됐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비행선이 왔다. 키 크고, 친절하고, 아름다운 여비행사가 모는 빨간 비행선이 팔라우 피낭으로 가던 길에 정비를 위해 사티야가 살던 곳 근처로 내려왔다. 난민촌 아이들은 그녀를 둘러싸고 그녀가 해 주는 반 견인 도시 연맹의 모험담을 눈을 반짝이며 들었다. 안나 팽은 다도해를 위협하던 뗏목 도시 전체를 침몰시킨 적도 있고, 파리와 시타모토레의 공군들과 싸워 이기기도 했으며, 배고픈 사냥꾼 도시들의 엔진실에 폭탄을 장착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모여든 아이들 맨 뒤에 수줍게 서 있던 사티야는 난생 처음으로 자기가 일생을 구더기처럼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았다. 저항해서 싸우는 방법이 있었던 것이다.
시리즈의 제2권 격인 『사냥꾼의 현상금』의 시대적 배경은 전작 『모털 엔진』에서 지표면을 달리며 작고 약한 도시들을 집어삼키던 견인 도시 런던이 '반 견인 도시' 세력을 무릎 꿇리려다 멸망하고 약 2년 후다. 대 파국의 소용돌이 속에서 비행선 제니 하니버를 타고 가까스로 살아남은 두 주인공 톰과 헤스터가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곳은 '앵커리지'라는 썰매 도시. 그곳은 프레야라는 십 대 여왕이 시장 노릇을 하고 있는 도시로, 한때 부유하고 융성했으나 전염병이 돌아 현재는 몰락한 상태다. 앵커리지에서 손님 대접을 받으며 머물게 된 톰은 매사에 냉소적이고 까칠한 헤스터와 달리, 함께 있으면 편하고 말도 잘 통하는 소녀 프레야에게 잠시 마음이 흔들린다. 그런 톰의 행동에 상처받은 헤스터는 다른 도시들이 있는 장소를 발설하면 현상금을 주는 '아크에인절'이라는 사냥꾼 도시로 제니 하니버를 타고 혼자 날아가 앵커리지가 있는 곳을 밀고한다. 그리고 아크에인절이 앵커리지를 잡아먹고 나면 현상금 대신 톰을 자신에게 넘기라고 요구한다. 톰을 다시 차지하기 위해 자신을 손님으로 받아들여 보살펴 준 앵커리지와 그곳의 무고한 사람들을 팔아넘긴 헤스터는 죄책감으로 고통받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