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는 이미 아퀴나스 시절에 나타났다. 일찍이 9세기경에는 대상(隊商)이 출현해 봉건 영주나 공국의 영지로 활동 영역을 넓혀갔다. 그 즈음에는 대부분의 영지에 일주일에 한번씩 장이 서고, 상인들이 이탈리아나 더 먼 곳에서 가져온 물품을 팔았으며, 소작농들이 자신이 재배한 농산물이나 직물 또는 가내수공업품을 내다 팔았다.
아퀴나스는 당시 세태를 문답 형식으로 다루었다. 시장이 많이 늘어났다고는 하나, 본격적인 자본주의의 전신으로서 시장 <체제>의 양상을 띈 것은 17세기가 되어서였다. 그 시기에 영국, 프랑스 그리고 독일 같은 곳에서는 봉건제가 발전하여 국가의 형태가 되었고, 농노제는 자유 노동력으로 대체되었으며,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난 수천 개의 도시에서는 길드가 운영하는 소규모 공방(工房)들이 상업적 냄새를 물씬 풍겼다.
이렇게 급변하는 사회는 구조상 세 가지 측면에서 학자들의 흥미를 유발시켰다. 첫번째는 그 어느때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돈버는 일에 관여하게 된 사회에서 아퀴나스의 가르침이 보여준 기독교의 계율이 현실 생활에 쉽게 적용될 수 없다는 인식이 확대되었다는 점이다. 두번째는 과연 한 나라가 외국에 판매한 것보다 더 많이 사들일 수 있는가, 상인이 단지 물품을 사기 위해 자국의 금을 해외로 갖고 나갈 수 있는가 등 신생 국가에서 외국 무역이 중요 사항으로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생겨나기 시작한 문제들에 대하여 과거의 사상가들로부터는 답을 구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마지막은 외형적으로 무질서해 보이는 시장에도 어떤 형태로든 질서를 부여하는 체제가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 pp.29-30
...이러한 어휘들이 과격한 인상을 준다고 해서, 케인스가 정치적으로 좌익에 속한다고 생각했다면 큰 실수다. 그가 마르크스를 읽었다는 것은 거의 확실하지만 단지 우연이었다. 그러나 그가 베블런의 저서를 읽었다거나 또는 그의 이름을 들어본 것 같지는 않다. 그의 비판과 오만에서, 환멸을 느끼는 자의식 강한 지식인, 또 한 사람의 존 스튜어트 밀, 그러나 밀만큼 겸손하지 않은 지식인을 발견할 수 있다.
1925년 출판된 <나는 진보주의자인가?>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그는 자신을 반(反)보수주의자라고밝히면서, <그들은 나에게 빵이나 물은 물론 정신적 지적 위안도 주지 않는다>라고 쓰고 있다. <그러나 나는 노동당에 가입해야 하는가?>라고 자문을 하면서, <표면적으로는 더 매력적이지만, 자세히 보면, 큰 문제를 안고 있다. 우선 노동당은 계급 정당이고, 그 계급이라는 게 내가 속한 계급이 아니다...나는 내가 '정의롭고' 분별력 있다고 생각하는 것의 영향을 받을 수 있으나, '계급'전쟁이 일어난다면 나는 교육받은 부르주아 쪽에 설 것이다>라고 답하고 있다...
--- p.310
...이러한 어휘들이 과격한 인상을 준다고 해서, 케인스가 정치적으로 좌익에 속한다고 생각했다면 큰 실수다. 그가 마르크스를 읽었다는 것은 거의 확실하지만 단지 우연이었다. 그러나 그가 베블런의 저서를 읽었다거나 또는 그의 이름을 들어본 것 같지는 않다. 그의 비판과 오만에서, 환멸을 느끼는 자의식 강한 지식인, 또 한 사람의 존 스튜어트 밀, 그러나 밀만큼 겸손하지 않은 지식인을 발견할 수 있다.
1925년 출판된 <나는 진보주의자인가?>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그는 자신을 반(反)보수주의자라고밝히면서, <그들은 나에게 빵이나 물은 물론 정신적 지적 위안도 주지 않는다>라고 쓰고 있다. <그러나 나는 노동당에 가입해야 하는가?>라고 자문을 하면서, <표면적으로는 더 매력적이지만, 자세히 보면, 큰 문제를 안고 있다. 우선 노동당은 계급 정당이고, 그 계급이라는 게 내가 속한 계급이 아니다...나는 내가 '정의롭고' 분별력 있다고 생각하는 것의 영향을 받을 수 있으나, '계급'전쟁이 일어난다면 나는 교육받은 부르주아 쪽에 설 것이다>라고 답하고 있다...
--- p.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