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이전 10년 동안, 프리미어리그의 새물결이 영국 축구를 발칵 뒤집어 놓고 아마추어리즘에 뿌리내린 경기를 21세기형 오락물로 바꾸려고 노력하는 동안, NFL은 딘, 스콜라, 에드워즈에게 일종의 경영 사례 연구 역할을 해 주었다. NFL은 이 3인방에게 기업 브랜드화부터 조직의 지배 구조까지, 큰 그림에 대한 아이디어부터 경기복 상의에 이름을 새기는 것과 같이 세부적인 사항까지, 모든 것에 대한 사고방식을 가르쳐 주었다. 100년 묵은 스포츠에 NFL의 상업적 전문성과 교란 전법을 불어넣으려는 여정에서 아이디어를 슬쩍하기를 꺼리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대서양 건너에서 배운 온갖 것들 중에 두드러지는 교훈이 하나 있었다. 축구단 보유로 돈을 벌 거면 텔레비전으로 벌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 p. 60
결국 스카이 사람들은 혁신 중 잘 정착되는 것들은 새로운 시도를 해 보려는 취지에서 도입된 혁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반 대중에게 그들이 이미 알 만큼 알고 있다고 생각하던 축구를 가르치기 위해 고안한 변화들이었다. 그것은 할머니도 축구를 좋아하시게 만들어 주겠다던 샘 치좀의 약속이었다. 이제 다각도에서 찍은 즉시 리플레이, 현장 인터뷰, 주체 못할 정도로 더 긴 방송 시간이 생겼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난생 처음 보는, 끝도 없이 이어지는 대화의 소재가 되어 주었다.
스카이는 축구 팬이 텔레비전 시청 경험에서 여태 아쉬워해 오던 것 한 가지를 포착해 냈고 그 한 가지를 가지고 90분짜리 생방송을 가까스로 채웠다. 그 한 가지는 바로 술집에서 나누는 오랜 수다였다.
--- pp. 97-98
첼시 구단주로 맞이한 첫 여름에, 아브라모비치는 신규 영입 선수 열네 명에 대한 1억 1,000만 파운드 지출을 감독했다. 그다음 해에는 라니에리를 자르고 선수 아홉 명에 9,000만 파운드를 추가로 지출했으며, 아브라모비치가 그토록 갈망하던 챔피언스리그를 막 우승시켜 자신감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젊은 감독을 고용했다. 그의 이름은 다름 아닌 조제 무리뉴였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이지만 아브라모비치도 잭 아저씨가 깨달았던 교훈을 깨닫고 있었다. 프리미어리그의 기존 질서 뒤집어엎으려면 막강한 재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 p. 176
맨 처음 나선 것은 퍼거슨이 전년도 여름 웨스트햄에서 빼온 아르헨티나 출신 공격수, 카를로스 테베스(Carlos Tevez)였다. 테베스가 유나이티드 응원단 관람석 끝, 패널티킥 위치로 의기양양하게 걸어갈 때, 퍼거슨은 벤치로 물러나 자리에 앉았다. 케이로스는 그 자리에 계속 서 있었다. “저는 알렉스 경(Sir Alex)처럼 강심장이 못 됩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어차피 두 사람이 달리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결승전은 그들의 손을 떠났다.
하지만 유나이티드나 첼시, 둘 중 어느 팀이 이기든, 고국에서 2,500여 킬로미터 떨어진 루즈니키에서는 뭔가 다른 일이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대세는 이미 정해졌다. 유럽 최고의 팀과 영국 최고의 팀 사이의 경계선은 완전히 모호해졌다. 이제 더 이상의문의 여지는 없었다. 2008년, 프리미어리그는 지상 최대의 축구 쇼였다.
바로 지금이 최절정이었다.
--- p. 234
셰이크 만수르와 연줄이 닿는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 에이전트들과 브로커들로 이루어진 복잡한 인맥을 통해, 맨체스터 시티 이사진 모두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아르헨티나 출신 스트라이커와의 계약을 확정했다. 그 선수는 지난 두 시즌 동안 맨체스터 반대쪽에서 골을 빵빵 터뜨렸던 사나이, 카를로스 테베즈였다. 그와의 계약을 요구하는 내부 서류는 그때까지만 해도 없었다. 테베즈를 데려오는 게 가능하다고 확신한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4,700만 파운드라는 최고가로 테베즈를 구단 선수 명단에 올리고 나자, 시티는 이를 최대한 활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때가 바로 그 대형 광고판이 맨체스터 최대 쇼핑 번화가에 걸렸던 때다. 하늘색 이미지의 테베즈가 ‘진짜 맨체스터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커다란 흰색 철자 위에서 골을 넣고 환호하는 모습이 인쇄되어 있는 광고판이었다.
--- pp. 284-285
레비는 『선데이 타임즈』에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영국 스타일 감독은 들어오고 나면 선수들 절반을 내보내고 자기가 데리고 있던 선수들을 영입하고 싶어 하더군요. 그래서 구단은 손해 보고 판 다음 다시 사들이면서 수백 만 파운드만 날려요.” 그래서 레비는 2단계 경영 구조를 채택했다. 헤드코치를 고용해서 팀 훈련을 시키고 기술이사(sporting director)를 고용해서 구단의 이적 업무를 맡겼다. 이는 유럽 다른 나라에서는 보편적인 방식이었지만 영국 축구에서는 비웃음을 사고 있던 방식이었다. 처음엔 PSV 아인트호벤(PSV Eindhoven) 전 중역 프랑크 아르네센(Frank Arnesen) 이 첫 기술이사에 취임했고, 그 뒤를 프랑스의 스카우트 다미앙 코몰리(Damien Comolli)가, 코몰리 이후는 이탈리아의 프랑코 발디니 (Franco Baldini)가 거쳐 갔다.
--- p. 327
미국에 기반을 둔 구단주 다수가 프리미어리그 구단 시장에 진입하거나 거기서 퇴장하면서 보고한 이상한 현상이 하나 있다. 미국인을 짝퉁으로 보지만 자기들 스쿼드에 돈을 펑펑 써 주는 슈가대디는 사양하지 않으려는 인지부조화가 바로 그것이다. 한 미국인이 잠깐 들러 둘러볼 때 받는 대접은 한 가지다. 하지만 중국이나 걸프 지역 또는 러시아에서 투자자가 오면, 영국 구단들은 이상하게도 레드카펫을 못 깔아줘 안달인 것처럼 보인다. 뭔가 스위치가 켜지면서 사람들한테 얼마 동안 미친 듯이 돈을 쓸 준비가 된 구단주가 있는 차기 첼시나 맨체스터 시티에 대한 환상이 생기는 모양이다. 차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꿈꾸는 이는 없다. 왜냐하면 서포터들의 마음속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한 마디로 이렇게 요약되기 때문이다. 차입매수와 부채, 그리고 대출 상환을 포함하는 쪼들리는 재정 계획에 따라 운영되는 구단은 그닥 재미가 없다.
--- p. 395
스쿠다모어는 구단주들한테 해외 중계권을 지역별 패키지로 쪼갠 다음 텔레비전 방송국과 직접 거래를 하면 마침내 제 값을 받을 가능성이 더 커진다고 알렸다. 그의 영업 쪽 이력에 납득당한 구단주들은 그 제안에 동의했다. 그들은 스쿠다모어 방식을시도하기로 했다.
그 계획은 곧바로 성과를 올렸다. 2004년, 리그의 해외 중계권은 3억 2,500만 파운드에 팔렸는데, 그전 계약 기간에 비해 83% 오른 금액이었다. 2007년 총액은 6억 2,500만 파운드로 껑충 뛰어올랐고 2010년, 프리미어리그의 해외 중계권은 14억 파운드에 팔리면서 사상 처음으로 10억 파운드대를 찍었다. 겨우 9년만에, 스쿠다모어는 해외 중계권 수익 687% 증가라는 압도적 업적을 이룬 것이다. 리그가 해외 중계권에 대해 맺었던 단일 거래는 급속한 성장을 이뤄 211개 국가 및 지역을 포괄하는 80개 계약으로 늘었다.
--- p. 40
평화적 수단을 통한 좀 더 합리적인 수익 분배를 확보할 수 없다면 리그 소속 상위 구단들한테 남은 선택지는 무엇일까? 그 자리에 참석한 그 누구도 ‘유러피안 슈퍼리그(European Super League)’라는 말을 내뱉지는 않았지만, 그럴 필요도 없었다. 겨우 몇 시간 전, 글레이저 형제들과 아스날의 스탠 크뢴케가 NFL 구단주 미팅에서 뉴욕의 부동산 개발업자이자 마이애미 돌핀스 구단주, 인터내셔널 챔피언스컵 창시자인 스티븐 로스와 사담을 나누고 왔기 때문이다.
--- p. 488
축구 팬이 예민한 걸로 유명하진 않지만 웸블리 안에 있는 9만 쌍의 눈은 그 팬이 무슨 얘길 하려는 건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스퍼스는 최근 새 스타디움의 시즌 티켓 가격을 최저 795파운드부터 프리미엄 좌석 대부분은 2,200파운드로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스퍼스 좌석 값은 프리미어리그에서 최고가가 되었다. 프리미어리그의 첫 시즌, 화이트 하트 레인의 시즌 티켓 가격이 250파운드 정도였으니, 자기가 응원하는 팀의 경기를 관전하기 위해 팬이 내야 할 돈이 800% 가까이 뛰어올랐단 얘기가 된다.
구석에 있던 그 팬은 본격적인 시위를 하기도 전에 오렌지색 조끼를 입은 안전 요원들한테 둘러싸였다. 여기는 축구의 고향이었는데 고향의 분위기는 전혀 풍기지 않았다. 그 팬은 대략 침대보 크기 만한 배너를 2분 내내 번쩍 쳐들고 있었다.
--- pp. 541-5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