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목적과 성격」에서
메트로폴리스metropolis, 메가폴리스megapolis, 메갈로폴리스megalo-polis 등 대략 지난 200년간 진행된 도시의 급격한 변천과 21세기에 접어들어 나타난 전대미문의 도시 현상들의 이질성과 파격성을 이해하는 데 사용되는 용어 역시 다양하나, 이들 용어의 한 가지 공통점은 새로운 현상이 불러온 불균형, 복합성, 혼잡성, 이질성을 아우르려는, 일종의 가치 판단의 욕망이 담겨 있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종류의 도시 공간은 매혹적인 대상인 동시에 혐오와 공포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모종의 기형성을 함축한다. 하지만 현대 도시가 개인의 존엄성을 파괴하고 인간다운 삶의 온기와 잠재력을 앗아가는 차가운 기계라며 맹목적으로 단죄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오늘날 도시는 우리에게 정치적, 윤리적, 생태학적 물음과 더불어 인문적 성찰을 요구하고 있으며 적절한 문제 제기를 정식화할 수 있는 새로운 인식의 틀을 시급히 요청한다. 따라서 우리의 지성은 복잡하고 다양한 문제의 실타래를 풀어내야 할 총체적 과제에 직면했다. 우리는 도시 간의 다면성과 복잡성을 인식하면서도 섣부른 일반적 진술을 지양하고 동시에 일방적인 심미적, 윤리적 판단을 자제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도시 기호학은 도시 공간의 의미 작용을 다원적이며 입체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 도시는 인간 사회가 생산한 특별한 종류의 공간 형식으로, 오늘날 도시 공간과 그 조직은 과거의 그것과는 비교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새로운 양식을 취하고 있다.
필자는 위와 같은 첨예한 문제의식 속에서 통합 기호학의 시각으로 시적이며 심미적인 도시, 과거의 기억과 흔적이 공존하는 서사적인 도시, 아울러 건강한 생태계를 갖춘 지속 가능한 도시를 사유하는 동시에 도시 시학, 도시 서사학, 도시 생태학을 도시 인간학의 주춧돌로 삼고자 했다.
「근현대 도시 사상 담론의 계보와 지형」(110쪽)에서
필자는 근현대 도시 사상사의 계보와 지형을 크게 세 개의 축으로 나누어 설정했다. 첫 번째 축에는 도시계획의 이론과 실천을 담당했던 근현대 ‘어버니즘urbanism’의 설립자들이 포함된다. 이 주체들은 근대 도시 공간을 창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맡았으며, 이미 만들어진 도시를 하나의 텍스트로 읽는 학자들과는 달리, 도시 텍스트의 생산자이며 이론가의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두 번째 축과 세 번째 축에는 각각 사회과학과 인문학 영역에서 도시와 관련하여 쌓아놓은 이론, 사유, 비평들의 오랜 전통의 궤적이 포함된다. 이 두 범주는 서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 늘 확연한 구별이 이뤄진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지리학, 인류학, 사회학, 경제학, 역사학 등을 중심으로 이뤄진 담론이 첫 번째 범주에 속한다면, 짐멜, 벤야민,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 바르트, 세르토 등을 도시 인문학의 범주로 묶어낼 수 있을 것이다.
「텍스트 모델: 개념과 문화적 맥락」(166쪽)에서
예컨대 서울이라는 도시 공간을 하나의 텍스트로 상정하고 한국 문학에서 나타나는 서울이라는 공간 텍스트를 상세하게 분석할 수 있다. 오늘날 서울의 도시 공간뿐만 아니라 과거 서울의 도시 공간을 각각 공시태와 통시태의 관점에서 분석해내는 시도가 가능하다. 물론 서울이라는 도시의 공간 언어는 문학이라는 언어 텍스트로 한정되지 않으며 시각, 후각, 미각 등 의 다양한 감각적 텍스트들로 이뤄진 이질적 텍스트라 할 수 있다. 자신의 고유한 기호학적 언어를 갖는 공간적 대상인 서울과, 서울을 기술하는 상이한 텍스트 사이에는 늘 상호작용이 존재한다. 또한 서울이라는 신화 공간을 생성하는 지속적인 약호를 구별해낼 수 있을 것이다. 서울이라는 공간 텍스트의 저변에 존재하는 핵 구조들은 서울의 내면적 상태의 양가적 진화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고통, 병든 상태, 권태, 고갈 대對 향유, 건 강, 생명력, 몽상 등의 정신적 신체적 이분법을 포함해 서로 모순적인 감동을 촉발시키는 자연 현상들, 이를테면 어둠, 밝음, 안개, 홍수, 비, 눈, 열기, 태양, 황혼, 큰 강, 신선함 등의 요소를 적용해 서울의 상태 변화를 기술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며, 전통, 현대, 초현대, 아방가르드, 젠더, 권력, 사회적 갈등과 긴장 등의 문화적 속성으로 골목길, 대로, 달동네, 전통 한옥, 한옥의 문턱, 자물쇠, 계단, 초현대식 빌딩, 학교 복도, 청와대, 압구정동, 신촌 등을 기술할 수 있을 것이다.
보들레르는 만보객의 전범적 형상으로서 알레고리의 시인이며 폐허가 된 세계와 대면하는 시인이다. 만약 부스러기 조각들밖에 없다면, 나머지와 흔적들밖에 없다면, 시인에게는 그것을 하나로 모으는 것 이상의 일이 남지 않으며 만보객에게는 수집가 또는 넝마주이가 되는 것 밖에 없다. 실제로 넝마주이라는 형상은 보들레르를 매료시켰다. 특히 벤야민은 보들레르를 매료시킨 군중이라는 형상에 주목한 바 있다. “보들레르에게 군중, 이들은 산책자 앞에 베일처럼 드리워져 있다. 군중은 도시의 고독한 개인이 찾는 마취제이며 개인의 모든 흔적을 지워버린다. 그것은 추방된 자의 마지막 은신처로서 마침내 도시의 미궁 속에서 가장 새롭고 가장 불가사의한 미궁이 된다.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지하 세계의 모습이 군중에 의해 도시의 이미지 속에 새겨진다.” 포스트메트로폴리스로 특징지어진 21세기의 오늘날에도 ‘만보와 소요’는 살아 있다. (…) 새로운 만보객은 최대한 느리게 걷는 사람이고, 진정한 만보객은 장소의 기능성에 저항하는 사람이며, 또한 장소의 기억 상실과 일체의 시뮬라크르에 저항하고, 기계적 리듬에 저항하는 주체로서 대중 소비의 허위적 유토피아 세계를 문제 삼는다. 이를테면 모든 사람이 자동차와 비행기를 탈 때,
자신의 두 다리 맨발로 걷는 사람이며 도심 거리의 변화를 여유롭게 관조하는 사람이다. 그는 관습적 공간 사용을 전복하고 장소와 기능성의 방향을 변형시키고 기존의 리듬을 바꾸어놓는다. 현대의 만보객은 바로 이 같은 의미 전환의 경험, 표류의 경험, 전복의 경험에서 새로운 알레고리의 형상으로서 모습을 드러낸다.
---「만보객의 계보학」(391쪽)에서